김봉곤의 첫 소설집 <여름, 스피드>를 읽고 썼던 리뷰를 다시 찾아봤다. 여름의 감각, 끈적한 공기, 남의 연애를 훔쳐보는 듯… 책을 읽을 때의 ‘기분’ 같은 것이 요란하게 남아 있다. <여름, 스피드>가 사랑에 이르는 달뜬 계절을 기록했다면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 <시절과 기분>은 우연히 마주친 과거와 비로소 이별하는 풍경을 그린다. 그러니까 전작이 늦봄부터 초여름의, 괜히 들뜨는데 그게 싫지만은 않은 멜랑콜리의 시간이었다면, <시절과 기분>은 모든 게 서툴렀지만 분명 그때는 좋았을, 그러나 끝나서 다행인 흑역사를 정신 차리고 들여다보는 과정인 셈이다. 지나간 연애의 흔적을 되짚어보는 일에는 어쩔 수 없이 다소의 비감이 동반된다. 연애의 뒤끝은 절망적이고 씁쓸하다. “이거 니 책 맞제?”(<시절과 기분>) 7년 만에 받은 문자 속에서, 졸업 후 오랜만에 찾은 대학 교정에서(<데이 포 나이트>), 내가 쓴 소설 속에서(<엔드 게임>), 구 연인들은 갑자기 툭 튀어나와 여진을 남긴다.
어쩌면 그렇게 사랑에 열심일 수 있을까. 인생에 오직 연애! 연애! 삶의 목적이란 오로지 연애!밖에 없는 듯 절실히 내달리고 감정을 복기하는 소설을 연달아 읽으며 감탄했다. 소설집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화자들의 연애담이고 이들은 언제나 진심이다. 물론 삶에는 자아실현도, 취미 생활도, 먹고사는 일도 있을 것이나 김봉곤 소설에서는 연애가 곧 사는 일이다. 모호한 상대의 언어를 해석하려 끙끙대고, 평범한 연인의 외모에서 애써 귀여움을 찾아내는 일. 이들은 자기 감정에 일말의 의심도 없이 천진하게 내달린다. 데이팅앱에서 만난 ‘썸남’과 주고받는 문자들은 부끄러우리만큼 생생하고, 거리에는 촌스러운 유행가가 흘러나온다. “나 그리고 우리의 목소리에 피로를 느끼는 사람이 있다는 걸 잘 안다. (중략) 혐오를 이기는 것도, 이겨내게 하는 것도 내겐 사랑 외엔 없다”라고 작가의 말에 김봉곤은 썼다. 나에겐 진작 사라진 설렘을 되감기하며 <시절과 기분>을 읽는다. 왠지 서글픈 기분이다.
바라는 건 오직 사랑
나는 덜컥 너무 좋아져서 필요 이상으로 괴로워지는 상상마저 하고 있었다. 더 좋아할 일이 남았을까? 아니면 실망만 잔뜩 안고 돌아오게될까? 그게 어느 쪽이든 까무러칠 정도로 강렬했으면, 나는 바랐다.(<나의 여름 사람에게>, 9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