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조현나 기자의 '#살아있다' 리뷰 - 디지털 세대가 재난을 극복하는 법
2020-06-23
글 : 조현나

핸드폰 우측 상단에 뜨는 ‘신호 없음’. 세상과의 단절을 알리는 이 사인에 당황하지 않을 이가 있을까. 2018년 KT 아현지사 건물에 불이 나면서 일부 지역에 통신 장애가 발생했다. 모두의 핸드폰이 일제히 멈추자 지하철 내의 승객들이 웅성대며 동요하던 순간을 기억한다. 인터넷도, 전화도 사용할 수 없는 답답한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른 채 그저 통신망이 복구되기를 기다려야 했다. ‘지금의 나는 세상에서 잠시 지워진 사람이겠구나.’ 묘한 불안감이 안개처럼 깔린 길고 고요한 하루였다. 준우(유아인)와 <#살아있다> 속 생존자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SNS에 구조 요청 메시지와 함께 자신의 현 위치를 포스팅하는 것이다. 좀비로 둘러싸여 이동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SNS는 자신의 생존을 증명할 유일한 수단이다. 베란다 난간에 아슬하게 매달려 어떻게든 핸드폰의 신호를 잡아보려 애쓰는 준우의 행동이 무모함보단 절박함으로 읽히는 이유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온라인 세계의 비중이 증폭된 현재와 오버랩되기 때문일 것이다.

오직 ‘살아야 한다’는 목표 하나로

언제나 그렇듯 재난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가족이 여행을 떠난 빈집에서 게임을 하던 준우는 채팅창에서 이상한 기류를 감지한다. 기다렸단 듯 그의 핸드폰으로 재난 문자가 요란스럽게 날아들고, 뉴스 속보 영상과 베란다 창밖으로 믿기 힘든 광경이 펼쳐진다. 건물 밖으로 뛰쳐나오는 사람들과 그들을 물어뜯는 좀비떼가 어지럽게 얽힌다. 곧이어 인터넷이 끊기고 가족의 생사는 확인할 길이 없다. 혼자 남은 준우는 집에 남은 식량으로 근근이 버티며 외부 상황을 가늠한다. 세상과 단절된 지 20여일째, 한계에 다다른 준우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 하자 붉은 레이저가 그에게‘No’라는 사인을 보낸다. 그 레이저의 시작점에는 또 다른 생존자 유빈(박신혜)이 서있다. <#살아있다>는 좀비로 뒤덮인 세상에서 오직 ‘살아야 한다’는 목표 하나로 버티는 준우와 유빈의 생존기를 그린다.

<#살아있다>의 주요 인물은 준우와 유빈이다. 그러나 유빈이 등장하기 전, 영화는 준우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된다. 준우를 쫓는 초반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가상현실이 익숙한 게임 스트리머 준우가 어떻게 실세계로 소환되는지를 담아내기 때문이다. 처음 모든 외부 상황은 핸드폰과 TV 화면을 통해 전달되고, 카메라는 집 안에서 밖을 살피는 준우의 시선을 따른다. 남 일처럼 생경한 상황이 눈앞의 현실로 자각되는 계기는 옆집 남자가 준우의 집으로 비집고 들어오면서부터다. 좀비에게 물린 남자는 괴기스럽게 몸을 비틀며 준우에게로 돌진하고, 다시 문밖으로 밀려난 남자는 또 다른 좀비의 습격을 받는다. 현관문 틈으로 스며드는 진득한 피를 보며 준우는 자신이 목도한 것이 게임 캐릭터가 아닌 실제 인간의 죽음임을, 그 죽음이 언제든지 다시 자신에게 달려들 수 있음을 실감한다. 혼자 남겨진 준우는 아버지의 메시지대로 ‘살아야 한다’고 의지를 불태우지만 암울한 현실에서 결국 좌절한다.

인터넷이 끊긴 후에도 준우는 모니터를 바라보며 영상 일기를 남긴다. 자신이 매일같이 해온, 스크린을 통한 세상과의 소통 방식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유빈은 그런 준우로 하여금 자기 세계에서 벗어나 면대면의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두 사람은 함께 음식을 나눠먹고 서로의 과거를 공유하며 잠시나마 재난 이전의 소소한 일상을 상기한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준우와 유빈의 남다른 생존 방식이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좀비를 소재로 한 기존의 영화, 드라마 속 인물들과 다른 생존 방식이다. 두 사람은 <킹덤>의 서비(배두나)처럼 좀비의 발생 원인을 찾아 나서거나 <워킹 데드>의 릭(앤드루 링컨)처럼 홀로 좀비들을 피해 갇힌 공간을 빠져나오려 시도하지 않는다. <부산행>의 상화(마동석)처럼 맨주먹으로 좀비를 치고 나가는 화려한 액션도 없다. 배우 박신혜가 여러 차례 강조한 것처럼, 유빈과 준우는 “현실에 맞서기보다 순응하며 생존을 도모하는” 인물들이다. 조일형 감독은 ‘장르를 비트는 요소들’을 <#살아있다>의 매력으로 꼽는다. 말하자면 <#살아있다>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인물들이 좀비라는 재난을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아니라, 그 속에서 어떻게 죽지 않고 살아남느냐는 것이다. 평범한 개인들의 지극히 현실적인 목표는 기존의 좀비영화와 <#살아있다>를 차별화하는 요소다.

아파트라는 배경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익숙한 공간인 아파트는 한순간에 좀비와 시체, 핏자국으로 뒤덮인 공포스러운 공간으로 변모한다. 그 속에서 준우와 유빈은 드론이나 루프, 아이스픽 등 자신들이 가진 소품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하루하루를 버틴다. 좁은 공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제작진은 3개월에 걸쳐 대규모 아파트 세트를 구성했고 준우와 유빈의 방을 각자의 개성에 맞는, 호신용품으로 활용 가능한 생활 소품들로 채웠다. 손원호 촬영감독은 준우와 유빈의 공간은 따뜻하게, 외부는 차갑고 어두운 톤의 조명을 설치하고 철저하게 계산된 동선을 따라 이들의 움직임을 정교하게 촬영했다. <#살아있다>는 익숙한 공간에서 주변의 흔한 물건을 사용하는 두 사람을 통해 관객이 자신이라면 어떻게 대처했을지 생각하게끔 유도한다.

혼자가 아닌 둘이, 함께

“우리 살 수 있죠?” “그건 모르겠고… 살아남으면 그때 희망이 보인대요. 그러니까 먼저 살고 봐요.” 몰려드는 좀비떼로 더이상 숨어 있을 수 없는 준우와 유빈이 각자 집 밖으로 도망치며 나누는 대화다. 짧게 오가는 대화 속에서 생존에 대한 불확신은‘살고 싶다’는 의지 표명으로, 그리고 ‘살아야 한다’는 목표로 변한다. 이들의 대화가 모니터를 앞에 둔 독백으로 끝났다면, 그저 미래에 대한 부정적인 예견으로 그치지 않았을까. 단 한명이라도 대화를 이어갈 상대가 존재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어주는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살아있다>가 공간을 압축하고 인물을 둘로 좁혀 그들의 생존기에 주목한 이유도 이와 같은 두 사람의 연대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살아있다>는 여러 재난이 겹친 영화다. 밖에는 좀비가 들끓고 컴퓨터와 노트북에는 ‘신호 없음’ 표시만 반짝인다. <#살아있다>는 인물들의 공간을 집 내부로 좁히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한 단계 더 나아가 온라인 세계까지 무너트린다. 자신의 모든 기반이 무너진 디지털 세대가 어떻게 눈앞의 재난을 극복하는지, 영화는 준우와 유빈의 행보를 집요하게 쫓는다. 겪어본 적 없는 극한의 고독 속에서 준우를 구원하는 것은 존재도 모르던 건너편 아파트의 주민, 유빈이다. 영화는 암울한 현실을 마주했을 때 시선의 방향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명확히 가리키고 있다.

영화의 원제는 <Alone>이었으나 후에 <#살아있다>로 바뀌었다. 조일형 감독이 “혼자가 아닌 둘이 함께 생존해야 한다”는 것이 영화의 주요 메시지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준우와 유빈의 생존기를 그저 단순한 오락거리로 소비하기 어려운 이유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발묶인 우리의 현재 상황과 너무나도 닮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혼자가 아니라 함께”라는 조일형 감독의 메시지가 가슴 깊이 와닿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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