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살아있다' 조일형 감독 - 미래가 불투명해 보일 때 타인을 통해 희망을 꿈꾼다는 것
2020-06-23
글 : 조현나
사진제공 퍼스트룩

-<#살아있다>가 첫 장편 연출작이다. 어떤 계기로 메가폰을 잡게 됐나.

=본래 대학교 전공은 디자인이지만 항상 영상과 스토리에 관심이 많았다. 대학원에서 영화 연출을 전공한 후 틈틈이 대본을 썼고 2011년에 단편 <진>을 연출했다. 이후로 영화나 IFC 미드나이트, 드림웍스TV, 스포티파이, 올 데프 디지털 TV 등의 TV 프로덕션에서 조연출과 제작부 일을 했다. 한국어가 모국어라는 장점을 이용해 미국에서 촬영을 진행한 작품들, 이재용 감독의 <뒷담화: 감독이 미쳤어요>, 원신연 감독의 <용의자>, 이정범 감독의 <우는 남자>에 참여했다. <#살아있다>의 경우 처음에는 연출이 아닌 영화의 원작인 맷 네일러의 각본 <Alone>을 각색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각본을 수정하는 과정에서 연출을 맡지 않겠냐는 권유를 받았고 이후 본격적으로 촬영에 임하게 됐다.

-맷 네일러의 각본 중 어떤 부분이 매력적이었나.

=읽으면 읽을수록 장르물의 공식을 깨는 요소들이 눈에 들어왔다. 주인공들이 슈퍼히어로가 아니라 우리와 같은 평범한 인물들이란 점, 또 한정된 공간에서 생존을 도모하는 그들의 감정이 다양하게 담긴 부분들이 좋았다. 다만 각색 과정에서 제목을 <Alone>에서 <#살아있다>로 수정했는데, 혼자보다는 두 사람이 함께 살아남아야 한다는 점이 영화의 중요한 메시지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준우가 SNS를 구조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설정이 포함되면서 제목에 해시태그도 추가됐다.

-아파트라는 한정된 공간의 구석구석까지 효율적으로 활용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아파트 단지라는 익숙한 공간, 평범한 일상이 주는 평온함이 공포로 변화하는 과정을 극대화하려고 노력했다. 같은 공간이더라도 어떻게 하면 다양하게 보여줄 수 있을지 손원호 촬영감독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1인칭 시점의 촬영숏들을 최대한 활용했다. 전재형 무술감독과도 여러 차례 리허설을 반복하며 어떻게 동선을 짜야 더 역동적으로 인물들을 따라갈 수 있을지 연구했다.

-유아인, 박신혜 배우의 어떤 점이 준우와 유빈 역에 어울린다고 생각했나.

=유아인 배우의 경우 폭넓은 감정 표현력이 캐스팅의 가장 큰 이유였다. 유아인 배우는 준우의 의상, 말투, 몸동작 등 준우가 현실적인 인물로 느껴지게끔 하는 디테일들을 세심하게 잘 준비해왔다. 박신혜 배우는 유빈을 통해 그가 가진 전형성을 깨고 의외의 면모들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봤다. 유빈은 준우를 통해 삶의 희망을 발견하고, 기존의 방어적인 태도를 버리고 적극적으로 변화하는 인물이다. 이러한 변화를 드러내는 데에는 감정 표현 외에도 액션이 큰 부분을 차지하는데, 박신혜 배우가 열정적으로 임해준 덕에 유빈이란 인물이 무척 풍부하게 표현됐다. 촬영을 진행할 때마다 두 배우가 수많은 아이디어들을 가져왔고 그 아이디어들을 바탕으로 준우와 유빈 캐릭터를 새롭게 그려내곤 했다.

-두 배우는 상대와 대화 중이라고 상상하며 연기하는 신들이 재밌으면서도 어려웠다고 밝혔다. 촬영 과정에서 따로 조언해준 부분이 있나.

=나 역시 그 부분이 가장 어려웠다. 롱테이크로 촬영하며 생동감을 유지하려 노력했고, 조언을 주기보다는 배우들과 여러 의견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호흡을 조절했다. 박신혜 배우는 과거 비슷한 상황에서 연기한 경험이 있고 유아인 배우도 워낙 집중력이 좋아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준우는 얼리어답터이며 게임 스트리머라는 점, 가족의 행방까지 주어진 정보가 많은 데 반해 유빈은 정보가 거의 없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준우보다 한참 뒤에 등장하는 유빈은 영화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풀어가는 열쇠와 같은 인물이다. 한편으론 스스로를 감추고 가두는 자물쇠 같은 인물이기도 하고. 그런 유빈의 특성을 대놓고 보여주기보다 그의 행동, 감정선 등을 통해 자연스레 드러내고 싶었다. 앞서 말했듯 유빈은 짧은 시간 안에 큰 변화를 보이는 인물이다. 활동성이 두드러지는 신들을 통해 유빈의 변화를 빠르게, 직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준우에 비해 유빈은 차분하고 훨씬 계획적인 인물이다. 그 밖에도 준우는 디지털 기기들을 주로 사용하지만 유빈은 루프, 아이스픽 같은 아날로그적인 도구들을 다룬다는 차이가 있다.

=준우를 드론과 같은 기기에 익숙한, 디지털 세대를 대표하는 인물로 삼고 보니 유빈은 아날로그적인 도구를 사용하는 인물로 자연스레 설정하게 됐다. 성격도, 사용하는 도구도 무척 다른 두 사람은 어떤 부분에서는 잘 맞지 않을 수 있지만, 그럼에도 지옥 같은 상황에서 서로를 믿고 생존이라는 공통된 목표를 향해 함께 달려나간다. 그 과정에서 준우와 유빈이 서로에게 없는 지점들을 잘 보완해줄 수 있는 관계이길 원했다.

-또 다른 생존자가 존재함을 깨달은 후, 희망을 잃어가던 준우와 유빈은 삶의 의미를 되찾는다. 얼마 없는 식량을 서로에게 나눠주고 잠시나마 일상을 공유하는 부분들이 마음에 와닿았다.

=준우는 주로 온라인을 통해 세상과 소통해온 인물이라서 모든 것이 차단된 후엔 어찌할 바를 모른다. 이를테면 그를 지지해주던 버팀목이 한순간에 사라진 거다. 다양한 감정 변화를 겪던 준우가 벼랑 끝으로 몰렸을 때 등장하는 인물이 유빈이다. 준우는 유빈을 통해 온라인이 아닌 실제 세계와 연결되는 새로운 통로를 발견한다. 모니터 화면을 통하지 않는 인간 대 인간의 소통 방식을.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타인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로 위안을 얻고 다시금 생존 의지를 다지는 과정을 잘 그려내고 싶었다.

-레퍼런스로 삼은 작품이 있나.

=기본 설정이 ‘홀로 남겨진 채 생존을 위해 노력하는 인물’이어서, 계속해서 현대판 <로빈슨 크루소>에 관한 생각을 했다. <127시간> <캐스트 어웨이>를 보며 혼자 갇혀 있는 사람의 심리에 관해 연구했고, 그 밖에 <더 테러 라이브>처럼 혼자서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인물이 등장하는 작품들도 많이 봤다. 극중 준우가 게임 스트리머라서 여러 유튜버와 게임 스트리머의 영상도 참고했다.

-촬영하며 가장 기억에 남은 순간을 이야기해준다면.

=신인감독으로서 장면 하나하나가 다 어렵고 기억에 남지만, 그래도 준우의 비디오로그를 촬영하던 순간이 강하게 남아 있다. 해당 장면을 촬영할 때 유아인 배우가 절망적인 준우의 감정을 생각보다 간결하면서도 직접적으로 표현해줬다. 극중 준우의 독백은 불특정 다수를 향하지만, 사실상 관객을 향해 외치는 것이지 않나. 그 외침을 통해 실제 준우의 감정을 그대로 전달받은 느낌이 들었고 현재까지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언급한 준우의 독백 신을 포함해 영화 곳곳에 디지털 세대의 고독, 상실감이 잘 드러나있다.

=우리 곁에 항상 존재해왔기 때문에 소중함이나 감사함을 잊고 지내는 것들이 많다. 인터넷과 같은 테크놀로지도 마찬가지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특히 그렇지 않나 싶다. 평소 의지하던 대상들이 사라지고 미래가 불투명해 보이는 상황에서, 자기 세상에 갇혀 있던 두 인물이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새로운 희망을 꿈꾸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렇게 둘 다 ‘살아야 한다’고 다짐하게 되는 것처럼.

-<#살아있다> 속 상황은 코로나19로 모든 것이 뒤바뀌어버린 현재와 여러모로 많이 닮았다. 영화를 통해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영화 기획부터 촬영까지, 현재의 상황을 전혀 예측할 수 없던 시기에 진행했음에도 코로나19 팬데믹 상황과 연결되는 부분들이 존재한다. 특히 집에 상주하는 시간이 길어졌기 때문에 준우와 유빈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관객이 많을 것 같다. 힘든 시기이지만, 준우와 유빈의 강한 생존 의지가 관객에게 큰 희망으로 다가왔으면 한다. 혼자가 아닌, 함께 생존한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사진제공 퍼스트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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