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영화제 국제경쟁 부문 작품상을 수상한 <천 명 중의 단 한 사람>은 아르헨티나 북부 코리엔테스 지방의 라스밀 마을을 배경으로 10대 소녀 이리스와 레나타의 사랑과 우정, 그 밖의 다양한 갈등을 담아낸 영화다. 19살 때 첫 다큐멘터리영화를 제작했고 대학에서 오디오비주얼아트와 연출을 전공한 클라리사 나바스 감독은 “내 경험에서 출발해 <천 명 중의 단 한 사람>을 제작”했다. “나의 10대는 한없이 취약하면서도 무척 개방적인 시기였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이 가능했던 시절이다. 정말 강렬하게 그 시기를 지나왔다.” 때문에 클라리사 나바스 감독은 전작 <오후 세 시 축구경기>에 이어 <천 명 중의 단 한 사람>에서도 다시 한번 10대를 극의 중심에 세운다. 영화가 보여준 이리스와 레나타의 삶도 감독의 개인적인 경험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천 명 중의 단 한 사람>에는 성소수자와 에이즈 환자 등 다양한 구성원이 등장한다. 클라리사 나바스 감독은 “이들에 관한 담론의 장을 형성하기보다 낙인 찍힌 구성원들이 서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일종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과정”을 보여주고자 했다. 실제로 영화는 10대 성소수자와 에이즈 환자에 대한 사이버불링과 괴롭힘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이들이 그 속에서 어떻게 연대하는지 세밀하게 묘사한다. 클라리사 나바스 감독은 이같은 사랑과 연대가 “방치된 채 무너져가는 현실에 저항하는 강력한 힘”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이리스와 레나타의 사랑을 “대사보다는 이미지를 통해” 전달한다. “사랑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고, 결국 남는 것은 두 사람간의 몸짓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랑의 몸짓을 섬세하게 연기한 아나 카롤리나 가르시아와 소피아 카브레라는 클라리사 나바스 감독의 절친한 동료들이다. 감독은 이들과 함께 “세상에 없던 것을 새롭게 창조해내는 순간을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라 덧붙였다.
레나타의 행방이 묘연해진 후, 이리스는 갑작스레 뛰쳐나가는 말의 무리를 따라간다. 감독은 이 장면을 두고 “라스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이라며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장면인데 항상 특정 사건의 징조라 느껴지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도 말들은 혼란과 현혹의 순간에 나타난다. 그들의 힘에 밀려 뒤처진 이리스는 곧 그들 뒤를 전력으로 따라간다”고 덧붙였다. 클라리사 나바스 감독은 이러한 결말이 “불가피한 상실 앞에 남겨진 본능과 감정”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클라리사 나바스 감독이 현재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 라스밀을 영화의 배경지로 결정한 데에는 정치적 의미가 담겨 있다. 나바스 감독은 “그동안 영화가 보여주지 않은 아르헨티나의 면면을 드러내고자 했다. 인물들 뒤로 펼쳐지는 폐허와 다름없는 건물들은 해를 거듭할수록 위태로워지는 아르헨티나 지방 중산층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무너져가는 건물들과 공공장소에서 “경찰은 오직 총소리나 사이렌 소리로만 등장”한다. 나바사 감독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평소 자신이 눈여겨봐왔던 공권력이 부재하는 세태”도 함께 짚어내고자 했다. “정부는 시스템의 문제로 무너진 사람들을 제압하고 벌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영화 속 인물들은 황폐한 건물 사이사이를 계속해서 이동하고, 카메라는 관찰자의 시선으로 거리를 두고 인물들을 바라본다. “주변 공간이나 상대를 대상화하지 않겠다는 선제 규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카메라는 인물들을 따라가며 그들의 감정과 그들이 보는 것 자체에 주목할 뿐, 그 이상을 꿰뚫어보는 척하지 않는다.”
클라리사 나바스 감독은 현재는 아르헨티나 국립실험영화학교 및 노스이스트국립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다. 차기작은 두편이며 “극영화 한편과 파라과이와 아르헨티나의 국경에 있는 10대 남자아이에 관한 논픽션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