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전주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①] 국제경쟁 대상작 '습한 계절' 가오밍 감독 -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연을 영화로
2020-07-30
글 : 김성훈
사진제공 가오밍 감독

<습한 계절>은 동과 주안, 권태기에 빠진 오랜 연인이 새로운 관계에 각각 눈뜨는 과정을 그려내는 이야기다. 마지못해 일상과 관계를 유지하는 동과 주안이 새로운 욕망에 이끌려가는 과정이 꽤 섬세하게 묘사된다. 모호하고 찌뿌듯한 둘의 관계는 중국 선전의 고온다습한 날씨를 닮았다. 국제경쟁 부문 대상을 수상한 이 영화는 장편다큐멘터리 <파이구>를 연출한 가오밍 감독의 첫 장편 극영화다. 서면으로 인터뷰에 응한 가오밍 감독은 “<습한 계절>은 첫 장편영화인 동시에 소중한 경험이었다. 이 영화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고, 창조적인 작업은 자기 성찰의 기회가 되었다. 이 상은 그러한 자기반성이 무의미하거나 쓸모없는 일이 아님을 알려주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습한 계절>은 어떻게 구상하게 된 이야기인가.

=2009년부터 2014년까지는 내 경력에서 매우 힘든 시간이었다. 창작자로서 목표에서 점점 멀어지는 내 모습을 마주하면서 극도로 우울해졌다. 내 경험은 다른 사람들이 겪거나 들은 딜레마나 어려움과 크게 다르지 않고, 그렇게 느낀 감정들을 카메라를 통해 시각적으로 표현하려고 했다. 그러면서 우울증으로부터 빠져나올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어떤 일을 겪었는지 물어봐도 될까.

=첫 장편다큐멘터리 <파이 구>를 만든 뒤 차기작으로 돈을 벌겠다는 목표를 갖고 2009년 사업을 시작했다. 그 결과 돈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우울증이 온 것도 그래서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낚시를 배웠다. 낚시를 하기 위해 오랫동안 호숫가에 앉아 있었는데 하늘이 내 위로 유리 덮개가 되는 걸 느끼며 일종의 환상을 품었다. 내 신세가, 호수에서 헤엄쳐가고 싶었지만 빠져나갈 길을 찾지 못한 물고기 같았다. 그러면서 그간 만났던 많은 사람들, 과거에 겪었던 일들을 반성했다. 이 영화는 내게 실패에 대한 새로운 반성과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주었다. 글을 쓰고, 그것을 영화로 만드는 것을 떠올리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영화는 동과 주안, 오래된 연인의 일상을 세심하게 담아낸다.

=이 영화에는 동과 주안뿐만 아니라 그들이 만나는 여성 유안과 중년 남자 롱까지 4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들의 인생을 꽃피우는 과정에 비유하면 동은 아직 꽃이 피지 않았고, 주안은 꽃이 피었으며, 유안은 꽃이 지고 있는 데다가 롱은 꽃이 졌다. 이 네 단계는 삶의 과정과 같다. 동과 주안은 이 과정의 시작점에 있기 때문에 그들이 땅 위에 머물러야 하고, 그러한 질감을 형성하기 위해 그들의 삶을 가능한 한 자세히 보여주려고 했다. 둘의 행동이 구체적일수록 유안과 롱, 다른 두 사람의 삶이 더욱 이상하고 불규칙해 보인다.

-동과 주안은 좀처럼 말을 주고받지 않아 답답해 보인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영화 속 인물들이 말을 많이 하지 않는 건 내가 사람들을 이해하는 방식과 관련 있다. 세상의 많은 것들이 설명할 수 없고,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 비밀을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 모든 사람은 말을 해야 하는 동시에 말하지 못하는 사연을 안고 있다. 말 이면에 있는 것이 무언가를 탐구하는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또 다른 이유는 생활환경과도 관련 있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선전은 중국에서 무척 빠르게 발전하는 도시다. 어촌에서 세계적인 도시로 발전한 지 40년이 채 되지않는다. 이곳 사람들은 매일 많은 양의 일,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생활과 감정 그리고 사소한 일상과 정보들로 둘러싸여 있다. 기진맥진한 사람들은 독립적이면서도 상대방에 대해 무관심하다. 그들은 가까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멀리 떨어져 있다.

-고온다습한 선전의 날씨가 권태기에 빠진 동, 주안 커플과 무척 잘 어울린다.

=한랭전선과 온난전선이 만나 쌓인 선전의 습기는 주변 세상이 우는 느낌이고 매우 불쾌하다. 이 불편한 느낌은 말로 정확하게 표현하기 어려운데, 그것은 인생에서 부딪히는 여러 사람들의 설명할 수 없는 심리 상태 같다. 선전은 인구의 95% 이상이 중국 전역에서 이주해온 이민 도시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급속한 도시 건설과 경제 발전에 휩쓸려온 것 같아 뿌리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판타지 같은 마지막 장면은 씁쓸하기도 하고 자유롭기도 해서 인상적이었다.

=누구나 날고 싶은 꿈이 있지만 현실은 언제나 지상에서 당신을 압박하지 않나.

-개인적인 질문도 하고 싶다.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나는 이상주의자다. 살면서 망연자실하거나 실수하려고 할 때마다 주변사람이 나를 영화관으로 끌어당겼다. 나는 내 속의 ‘또 다른 나’를 알고 싶었다. 또 다른 나와 소통하는 방법이 나에겐 바로 영화다.

사진제공 가오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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