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종말을 앞두고도 꼬박꼬박 출근하는 경찰 남우(이다윗)와 재앙을 막을 초능력자를 찾아다니는 혜화(신은수)는 <일주일 만에 사랑할 순 없다>는 전제 혹은 오해 앞에서 다른 상상을 한다. 미세먼지가 점령한 세상에서 상이한 계급으로 살아가는 이오(최성은)와 조안(김보라)도 마찬가지다. <우주인 조안>을 만나, 이오는 보다 자유로운 삶을 꿈꾸기 시작한다. 각각 김동식, 김효인 작가가 쓴 동명 소설이 원작인 안국진 감독의 <일주일 만에 사랑할 순 없다>, 이윤정 감독의 <우주인 조안>은 극한상황에 처한 두 청년이 맺는 관계에 주목한다. SF의 렌즈를 빌려와 지금 20대가 겪고 있는 감정적 재난을 들여다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살아갈 수 있는 이유를 묻는다.
-<일주일 만에 사랑할 순 없다>와 <우주인 조안> 모두 취업 전후의 청년세대가 주인공이다. 근미래의 재난을 끌어와 20대가 겪는 불안과 위화감을 드러냈다.
안국진 소설 <일주일 만에 사랑할 순 없다>는 종말을 앞둔 남녀의 로맨스 성격이 강하다. 나는 지금 세대가 가진 감성을 더 표현해보고 싶어 원작을 많이 비틀었다. 나의 존재뿐 아니라 모두가 사라지는 종말이 과연 슬프기만 할까, 진짜 슬픈 건 따로 있지 않을까를 반문하며 종말과 초능력이라는 소재, 주인공의 직업, 동선 정도를 제외하고 거의 다 각색했다.
이윤정 <우주인 조안>에서 가장 SF적인 특성을 지닌 설정이 청정복이다. 미세먼지에 대응하는 청정복을 일종의 부동산이라고생각했다. 이야기 속 세계를 낯설지 않게 그리고자 원작에 비해 계급도 세분화했다. 다른 것을 갖추고 있어 청정복을 필요로 하지 않는 계급, 청정복이라도 얻으려 허덕이는 계급, 결코 가질 수 없는 계급으로.
-<우주인 조안>만의 세계관을 보여주기 위해 시각적으로 공을 들였을 텐데.
이윤정 원작에서 반복적으로 표현된 우주의 이미지가 직관적으로 와닿았다. 더 넓은 곳으로 가고 싶어 하는, 삶의 유한성과 영원의 간극에 대해 생각하는 청춘의 특성을 은유적으로 보여주기에도 적합하다 생각해 청정복을 동그란 헤드커버가 달린 우주복처럼 만들었다.
-<일주일 만에 사랑할 순 없다>의 결말은 반전 아닌 반전처럼 보인다. 종말을 맞은 인물들이 어디로 가는 걸까 궁금해하다가 ‘이들은 여기에 있구나’ 하고 끄덕이게 된다.
안국진 바로 그런 부분을 보여주고 싶었다. 바깥 상황과 상관없이 이들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게 중요했다. SF는 미래의 기술, 세계관을 차용하지만 결국 우리의 현실, 삶의 근본을 이야기하지 않나. 짓궂은 농담 같을지라도 이 결말이 각자의 존재가치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상상력을 자극하기를 바란다. 거기서 오는 쾌감이 있을 테니.
-참고한 레퍼런스가 있다면.
안국진 TV에서도 극장에서도 보기 힘든, <환상특급>처럼 곱씹게하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비주얼적으로는 홍주희 미술감독이 제안해서 심규동 작가의 사진집 <고시텔>을 많이 참고했다.
이윤정 인물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만추>의 먼지를 레퍼런스로 삼았다. (웃음) 마리 로랑생의 색감을 비주얼 레퍼런스로 삼고 의상팀, 미술팀, 촬영감독과 공유하기도 했다. 세계관을 설명하기보다 바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편을 택했는데, 세계관을 놓쳐도 즐길 수 있는 이야기니 재밌게 봐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