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SF8 스페셜] 지금 한국영화는 왜 SF를 주목하는가
2020-08-26
글 : 이주현
제작 들어간 SF영화들, 그리고 향후 성장 가능성에 대하여
<승리호>

"SF는 글로벌 IP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만 아니었다면 조성희 감독의 SF영화 <승리호>와 크리스토퍼 놀란의 SF영화 <테넷>이 여름 시장에서 경쟁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두 영화 모두 개봉이 연기됐다. 가정법의 재미는 가정법의 세계에서만 유효한 법이지만 그럼에도 이런 비교가 흥분을 자아내는 건 <승리호>가 한국에서 처음 시도되는 정통 SF 우주영화이고,미래의 우주로 향한 한국 SF영화에 관객이 어떻게 화답할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2092년의 우주 쓰레기 청소선 ‘승리호’에 배우 송중기, 김태리, 진선규, 유해진이 승선했을 때부터 <승리호>는 영화계 안팎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 올해 초 투자·배급사 관계자들에게 올해 가장 기대되는 한국영화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도 많은 이들이 <승리호>를 언급했다.

이용주, 최동훈, 김태용, 김용화 감독 차기작도 SF

<간호중>

<승리호>가 쏘아올린 우주선은 어쩌면 시작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이른바 약속이나 한듯 흥행 감독들이 차기작으로 SF영화를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건축학개론>의 이용주 감독은 8년 만의 차기작으로 복제인간을 소재로 한 영화 <서복>을 올해 선보일 계획이다. 배우 박보검이 비밀리에 개발된 인류 최초의 복제인간 역을 맡았고, 공유가 복제인간을 지켜야 하는 정보국 요원을 연기한다. <암살> <도둑들> <타짜>의 최동훈 감독은 현재 류준열, 김태리, 김우빈, 소지섭 배우와 함께 외계인을 소재로 한 SF 범죄물 <외계인>을 촬영 중이고, <만추> <가족의 탄생>의 김태용 감독은 죽음으로 소중한 이를 떠나보낸 이와 AI로 복원된 망자가 영상통화로 다시 만나는 이야기 <원더랜드>를 촬영 중이다. <신과 함께> 시리즈의 김용화 감독 또한 우주에 홀로 남겨진 남자를 무사히 귀환시키는 내용의 SF영화 <더 문>의 시나리오 작업에 한창이다. 물과 식량이 부족해진 미래의 지구를 배경으로 한, 달에 버려진 연구기지로 향하는 대원들의 이야기인 SF 스릴러 <고요의 바다>도 배우 정우성이 제작자로 참여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제작 중이다. 더불어 김의석, 노덕, 민규동, 안국진, 오기환, 이윤정, 장철수, 한가람 등 8명의 감독이 참여한 SF 앤솔러지 <SF8>은 7월10일 OTT 플랫폼 웨이브에서 선공개된 뒤 8월 중 MBC에서도 방영될 예정이다.

한국에서 SF를 만드는 게 여의치 않던 시절도 있었는데 왜 지금 한국영화는 부지런히 SF를 호명하는 것일까. 이는 새롭고 재밌는 것을 향해 촉수를 뻗는 창작자와 감상자의 욕망, 시장의 상황 변화가 맞아떨어진 결과로 보인다. 우선 창작자의 욕망과 입장을 살펴보자. <더 문>을 준비 중인 김용화 감독은 “창작자는 늘 새로운 것을 동경한다”면서 “적어도 한국에서 SF는 개척되지않은 새로운 길이기 때문에 동기부여가 된다”고 말했다. <미스터 고>와 <신과 함께> 시리즈를 만들면서 축적한 기술 역시 SF로 가는 징검다리가 되었다. “SF의 이야기나 감정의 측면은 다른 장르와 다르지 않다. 다만 SF는 극장에서 체험할 때 감상이 극대화되는 장르고 영화감독으로선 그런 점 때문에 SF를 더 갈망하게 되는 것 같다. SF에선 표현의 리얼리티가 전부라 해도 무방한데, 이제는 기술의 진보로 표현의 한계가 사라졌다.”

<SF8>에 참여한 여러 감독들도 SF가 새로운 이야기를 제시하기에 매력적인 장르라고 말한다. “인간은 호기심의 동물이고, 아직 경험하지 않은 미래를 자꾸만 들여다보려고 하는 근원적인 욕망을 가지고 있다. 새로운 것을 보고 싶어 하는 본성이 SF의 창작과 감상에도 관여가 되는 것 같다.”(오기환 감독) “SF는 이야기의 종류가 아니라 세계의 종류라고 생각한다. 세계관만 통과하고 나면 보편적인 드라마로 들어가기 용이한 장르고, 거기에 장르적인 볼거리까지 즐길 수 있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항상 SF를 좋아해왔는데 관객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를 좀 두려워했던 것 같다.” (이윤정 감독)“SF는 미래의 기술과 세계관을 차용하지만 결국 우리의 현실을 이야기한다. 그게 편안하게 받아들여진 시기가 온 것 같다. 예산 문제로 특별한 장르로 취급해왔는데, 이제는 점점 자연스럽고 친숙한 장르가 될 것 같다.” (안국진 감독) <SF8>을 총괄기획한 민규동 감독은 SF 장르 내에서도 다양한 시도가 가능함을 시사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SF영화를 스펙터클로 사유할 수밖에 없는 습관화된 경험, 할리우드가 독점해버린 비주얼의 맥락이 있지만, 한국의 공간에서 한국의 인물을 데리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풀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문학의 경우 1980~90년대에 태어난 세대 중 SF를 쓰지 않는 작가가 거의 없을 만큼 SF가 새로운 이야기의 출구이자 한국적인 삶을 새롭게 바라보는 매력적인 윈도가 되고 있다.”

비용의 문제이지 기술의 문제는 아니다

<우주인 조안>

SF가 한국 창작자들에겐 미개척의 영역일지 몰라도 관객은 할리우드의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다양한 SF 문법에 익숙해진 상황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SF영화는 관객의 눈높이를 맞출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은 우선 기술 문제와 직결되는데, 영화인들은 한결같이 한국영화의 기술이 이미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다고 말한다. <승리호> 투자·배급사인 메리크리스마스의 김동현 본부장은 “과거엔 기술적 완성도가 장르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있었지만 지금은 기술적 완성도가 상당 수준에 이르렀다”면서 “기술의 진보와 새로운 장르 개척 때문에라도 SF영화 제작은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결과로 보인다”고 말했다. <원더랜드>의 투자·배급사인 정현주 에이스메이커 대표 역시 “CG 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덧붙이길, “지금 SF를 만드는 감독들은 모두 이야기꾼으로 유명한 분들이다. 첫 번째로 시나리오가 검증됐고, 두 번째로 독특한 세계관을 구현할 기술력이 담보됐다. 그런 상황이라면 SF이기 때문에 투자를 주저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현시점에선 기술의 문제가 아닌 시장의 규모가 중요해 보인다. 윤제균 감독과 <해운대> <국제시장> 등을 함께했고 SF영화를 개발하다 잠정 중단한 JK필름의 길영민 대표는 “한국 SF영화의 경우 비용의 문제이지 기술의 문제는 아니”라는 점을 언급한 뒤“스포츠, 괴수, 재난, SF는 글로벌 IP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 “넷플릭스 같은 OTT 플랫폼이 들어와 오리지널 시리즈가 다양하게 제작되고 있어 앞으로도 SF영화 제작은 활발히 이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동현 본부장 또한 “제작비가 상승하면 로컬 시장뿐만이 아닌 글로벌 시장에서 소비되는 콘텐츠로서의 가능성을 고민하게 되는데, SF는 기본적으로 문화의 장벽을 상쇄할 수 있는 장르”라고 말했다. <승리호> 역시 글로벌 IP로서의 매력과 IP 영속성을 고려한 작품이다. 마찬가지로 김용화 감독은 “우리가 체감하는 것보다 K 콘텐츠의 위상과 경쟁력은 꽤 높아졌고, 그 말은 시장이 넓어지고 있다는 신호”라며 한국 SF영화의 미래를 낙관했다.

SF가 돈이 드는 장르인 것은 분명하지만, 방송사와 OTT와 영화제가 손을 잡고 선보이는 <SF8>의 경우처럼 SF 장르에 대한 편견을 깨는 신선한 시도들을 팔 벌려 환영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 더 대담하고 더 문제적이고 더 흥미로운 SF적 상상력이 한국영화를 풍요롭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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