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영화제는 멈추지 않는다③] “소수자들의 삶을 가시화해야 한다”
2020-10-08
글 : 조현나
사진 : 백종헌
이혁상 디아스포라영화제 프로그래머

올해로 8회를 맞은 디아스포라영화제에는 몇 가지 변화가 있었다. 코로나19 여파로 예년과 같은 5월이 아닌 9월 18일부터 22일까지, 인천 아트 플랫폼 대신 CGV인천연수점에서 영화제가 진행된 것이다. 이혁상 프로그래머는 “영화제가 열린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일주일 전만 해도 개최가 불투명한 상황이었으나 철저한 방역 속에 영화 상영만 진행하는 방식으로 영화제를 열게 됐다.” 영화관 입구에 전신 소독기를 배치하고 좌석간 거리두기 방침을 꼼꼼히 지키는 등 관객이 안전한 공간에서 영화를 즐길 수 있도록 관계자 모두 심혈을 기울였다.

“뉴노멀 시대에 어떤 형식으로 영화제를 개최해야 할까.” 온라인, 오프라인 등 다양한 방식으로 앞서 개최한 영화제들을 보며 이혁상 프로그래머는 영화제의 역할과 의미에 관해 다시 생각해봤다. “대중이 함께 영화를 보며 감상을 나누는 것이 시네마의 본질적인 의미라 생각한다. 또한 여전히 그런 장이 형성되기를 바라는 관객을 보며 오프라인 공간에서 영화를 상영해야겠다는 뜻을 굳혔다.” 더불어 질병에 대한 공포가 이주 난민, 외국인과 같은 사회적 소수자에게 혐오와 차별이란 화살로 겨눠지는 상황에서 ‘소수자들의 삶을 가시화해야 한다’는 영화제의 지향 또한 되새겼다. 팬데믹으로 인해 영화제의 많은 부분들이 달라졌지만 이 불안정한 환경이 도리어 관객과 영화, 그리고 이들이 공존하는 디아스포라영화제의 지향을 다시금 단단히 다지는 계기가 되어준 셈이다.

<정말 먼 곳> 감독 박근영 / 상영시간 115분 / 제작연도 2020년

이러한 고민과 다짐은 올해의 상영작 선정에도 영향을 줬다. 특히 ‘코리안 플로우’라는 주제 아래, 한국 출신 이민자와 입양 이슈를 다룬 작품들 그리고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영화인들의 작품에 주목한 ‘디아스포라 인 포커스’ 섹션이 눈길을 끈다. 추천작을 묻자 이혁상 프로그래머는 고민 끝에 세 작품을 소개했다. 먼저 폐막작으로 선정된 박근영 감독의 <정말 먼 곳>은 성소수자 차별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왜 굳이 게이 영화를 만들어야 하나?”라는 질문들을 뚫고 꿋꿋하게 목소리를 냈다는 점에서 많은 응원을 받았다. 그 밖에도 미국 사회 속 한인 성소수자의 초상을 그린 <드라이브웨이>, 노예해방운동에 앞장선 흑인 여성 해리엇 터브먼의 삶을 묘사한 <해리엇> 등 추천작 모두 소수자들의 삶을 섬세하게 다뤘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서신 교환 프로젝트’에선 디아스포라영화제 자문위원 4명이 주고받은 편지를 확인할 수 있는데, 이들 사이로 오간 디아스포라에 관한 사유들이 큰 울림을 준다.

<공동정범> <종로의 기적> 등 여러 편의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이혁상 감독이 디아스포라영화제 프로그래머로 활동한 지 올해로 5년째다. 작품을 볼 때 감독과 프로그래머의 시선이 어떻게 다르냐고 질문하자 “다르다기보다 서로 영향을 준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동안 선명한 메시지를 전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었고 그 메시지를 어떻게 관객에게 잘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해왔다. 그런 시선과 태도가 프로그래밍을 할 때도 영항을 미친다. 관객에게 메시지를 남기는 영화를 되도록 많이 선보이고 싶고 그런 작품과 관객이 만날 수 있는 장 역시 잘 형성하고 싶다.” 영화제 폐막 후엔 내년 행사를 어떻게 구성해야 할지 논의할 예정이라는 이혁상 프로그래머의 말에서 디아스포라영화제에 대한 깊은 애정이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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