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강철비2: 정상회담' 양우석 감독…‘밀덕’의 힘
2021-06-24
글 : 이주현
사진 : 백종헌
잠수함영화 최대치의 액션과 리얼리티…극장 찾는 관객에 대한 예의

<강철비2>는 <변호인> <강철비>에 이어 양우석 감독이 세 번째로 선보이는 영화다. <강철비>와는 전혀 다른 장르적 재미를 구축한 이번 영화는 자칭 ‘밀리터리 덕후’인 양우석 감독이 ‘밀덕’의 힘을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국제정치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잠수함전 연출에 대한 이유 있는 자신감을 보여준 양우석 감독과 영화 안팎의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변호인>과 <강철비>를 연이어 만든 양우석 감독은 기존의 진보와 보수의 프레임으로 규정하기 힘든 사람이라 말하기도 한다. 한국이 핵보유국이 되는 <강철비>의 결말이 단지 영화적 주장으로만 받아들여지지 않아서일 텐데.

=1993년 1차 북핵 위기 이후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날 뻔했다. 이후 드라마틱하게 대화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사건은 내 20대를 사로잡은 큰 트라우마로 자리 잡았다. 당시 외국의 외교 석학들은 1차 북핵 위기 이후 한반도가 갈 길은 4가지 중 하나라고 했다. 첫째는 전쟁, 두 번째는 북한의 비핵화에 의한 평화 체제 구축, 세 번째는 북한의 붕괴, 네 번째는 한국의 핵무장이다. 전쟁이든 정치든 점점 시뮬레이션이 중요해지고 있고, 코로나19 사태로 다시 한번 시뮬레이션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강철비> 1편과 2편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것 역시 이런 시뮬레이션이다. 영화를 통해 네 가지의 가능성을 상상하고 제시하는 거다. 1편에선 북한의 정권 붕괴와 남한의 핵무장을 다뤘는데, 외교안보수석 곽철우(곽도원)는 직업상 그 길을 갈 수밖에 없는 캐릭터라 생각했다. 2편에선 결코 쉽지 않은 길이지만 평화 체제 구축의 시뮬레이션을 보여준다. 영화는 현상을 충실히 보도하는 뉴스와 달리 통사적 시뮬레이션을 시도할 수 있는 매체다. 정파적으로 사안을 바라볼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외교·안보와 교육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그러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강철비> 이후 영화를 복기하면서 스스로 반성을 했다고도 말했는데, 그 반성은 남한의 핵무장이라는 결말의 의도가 관객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기 때문인가.

=2017년에도 북한과 미국의 군사적 긴장이 절정에 달해 전쟁에 버금가는 위기가 있었다. 그래서 부랴부랴 <강철비>를 찍은 면도 있다. 그때 생각한 건 대한민국이 한반도 문제의 결정권을 쥔다면 어떻게 될까였고, 북한1호를 우리가 데리고 있다면 가능한 시나리오가 나오겠다고 생각했다. 반성했다는 건, 실제로는 북핵 문제의 당사자인 대한민국이 영화와는 달리 주도권을 가질 수 없는 현실 때문이었다. 1편은 대한민국에 너무 많은 결정권이 있는 것처럼 그렸다. 1편의 상호보완적 속편인 2편에선 우리에게 결정권이 없다는 것을 처음부터 이야기하고 시작한다. 우리의 국력, 우리의 맷집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그렇게 2편은 현실을 제시하고 시작한다.

-센카쿠열도와 독도 분쟁을 이야기의 중심 소재로 끌고 왔다. 중국과 일본, 한국과 일본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영토 분쟁 사안이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고 본 것인가.

=중국과 일본의 센카쿠열도 분쟁이 다시 가열된 건 2010년이다. 2010년 센카쿠 인근 해상에서 일본의 순시선과 중국 어선이 충돌했고, 이때 일본이 중국인 선장을 구금했다. 그때부터 최근까지 분쟁이 뜨겁게 진행되고 있다. 독도 문제 또한 한일 사이에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사안이고.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과, 각 동맹국들의 이익이 정치 지형학적으로 얽혀 있는 곳들이다. 앞서 언급했듯 각국은 비상사태에 대비해 모두 군사적, 정치적 시뮬레이션을 한다. 만약 센카쿠에서 전쟁이 발생했을 때, 독도에서 양국이 충돌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고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시뮬레이션 결과가 있다. <강철비> 시리즈는 그러한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일어날 법한 일을 영화로 시뮬레이션하는 셈이다.

-영화 초반 한반도를 둘러싼 각국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파악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관객이 이 문턱을 어렵지 않게 넘을 수 있는 방법 또한 고민했을 텐데.

=<강철비2>는 크게는 분단물이고, 서브 장르로 잠수함 액션과 밀리터리 스릴러 장르를 차용한다. 초반부에 충분히 사건의 단서를 제공하는 스릴러적 문법이 사용되고, 중후반부에는 이 단서들을 꿰맞출 수 있게끔 시나리오 구조를 짰다. 어렵다고 느낀다면 그건 익숙하지 않은 팩트가 많아서가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이건 우리가 알아야 할 이야기라 생각해서 정보를 충분히 전달하기로 선택했다.

-캐릭터를 묘사할 때 현실의 디테일을 끌어들인 장면들이 눈에 띈다. 가령 한경재 대통령(정우성)이 관료들과 남포면옥에서 점심을 먹는 장면은 극의 전개상 다른 공간이어도 무방해 보인다. 그럼에도 남포면옥이라는 간판을 노출해 자연스럽게 이 식당을 찾은 적 있는 현직 대통령을 연상시킨다.

=통사적으로 이야기를 만들었다는 것은 각각의 캐릭터에도 역사가 압축됐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미국 대통령의 이름이 스무트인 것은 1930년대 ‘스무트 홀리 관세법’을 주도한 스무트 의원의 이름에서 가져온 것이다. 상원의원 스무트와 하원의원 홀리는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를 강하게 표방한 정치인이다. 북한 위원장의 이름은 조선사인데, 조선의 역사라고 직접적으로 이름 붙인 것은 역사란 민중, 인민, 국민의 역사이지 한 개인의 역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북한의 주민들 역시 최소 30년 이상 평화 체제를 갈망했을 것이고, 평화 체제를 갈망하는 북한 사람들을 대변하는 의미에서 위원장의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 한경재 대통령의 경우는 좀더 심플하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지지율과 평가는 경제 성장률과 비례하지 않나. 한국에선 경제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웃음) 역사와 현실에 기반한 이야기가 너무 다큐멘터리처럼 흘러가면 재미없으니까 곳곳에 풍자를 넣었다.

-캐릭터를 통한 현실 풍자가 진지하게 흘러가는 이야기에 숨통을 틔워주길 기대했나.

=풍자와 해학의 역할이 그런 것 같다. 그리고 풍자는 현실을 기반으로 한다. 현실의 요소를 가져오다 보니 자연스럽게 은유, 직유, 대유와 같은 수사법과 비유법을 활용하게 됐다. 조선사가 실내에서 피우는 담배는 일종의 핵에 대한 은유이고, 담배 피우는 조선사 앞에서 방귀를 뀌는 스무트의 모습은 북한에 제재를 가하는 미국의 모습을 빗댄 거다. 잠수함 내부에서 대원들이 대치하는 상황도 분단된 한반도의 모습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모든 상황을 말로 설명하면 재미가 없으니 틈만 나면 은유와 환유를 활용해 보여주고자 했다.

-유독 미국 대통령을 풍자적으로 그린 느낌이다. 스무트가 등장하는 거의 모든 장면이 코미디다. 핵잠수함 함장실에 세명의 정상이 갇혔을 땐 말 그대로 화장실 유머도 등장한다.

=그건 배우의 해석이 적극적이었던 측면도 있다. 스무트를 연기한 앵거스 맥페이든 배우는 스코틀랜드 출신인데, 서구인의 해학과 풍자는 직설적인 면이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은근한 풍자가 많고. 그런 온도차는 있을 수 있다고 본다. 그렇다고 목소리나 말투를 트럼프 대통령의 것을 참고해서 연기한 것은 아니다. 이분은 셰익스피어극에 정통한 배우인데, 셰익스피어 연극과 역대 미국 대통령의 모습을 두루 참고해서 연기했다고 한다. 스무트라는 이름만 보고도 이 스무트가 ‘스무트 홀리 관세법’의 그 스무트인 것을 캐치할 정도로 미국 사회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화장실 장면은, 나도 그렇고 배우도 그렇고 화장실 유머로 그리려 했던 것은 아니다. 미국의 협상법을 비유한 것에 가깝다. 네(북한)가 심하게 나오면 나(미국)는 더 심하게 나가서 내가 원하는 걸 성취하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그 과정에서 북에도 치이고 미국에도 치이고, 모든 상황에 난처하게 낀 한경재 대통령의 심정도 보여주고 싶었다.

-<강철비>는 곽철우와 엄철우 두명의 캐릭터에 집중해 이야기를 풀어갔고, 이번엔 한경재 대통령을 중심으로 북한 위원장, 미국 대통령, 호위총국장과 부함장까지 다양한 인물들이 다양한 관계를 형성한다. 그중 케미스트리가 가장 좋았던 조합은 한경재와 백두호 부함장 장기석(신정근)이었다.

=1편이 분단 문학 <단독강화>를 비롯해 다수의 분단물처럼 남북의 두 주인공을 중심으로 내세웠다면, 이번엔 한반도를 둘러싼 모든 세력이 등장하고 한경재 대통령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다. 그리고 영화 중후반부엔 북한 해군 전단장 출신이지만 강경파의 반대편에 서서 남한 대통령과 뜻을 같이하며 움직이는 부함장 캐릭터가 활약한다. 호위총국장과 함장을 중심으로 한 강경파와 그 반대편에 선 선원들로 잠수함 내부가 양분되는데, 부함장은 마치 우리 편인 것처럼 느끼게 되는 북한 캐릭터다. 아무래도 관객은 자신이 응원할 수 있는 캐릭터에 정을 주기 마련이고, 그래서 신정근 배우의 활약이 눈에 띄지 않았나 싶다.

-잠수함 내부 장면과 심해 전투 장면 모두 높은 완성도와 인상적인 디테일을 자랑한다. 잠수함 세트 제작에만 20억원의 예산이 들었다던데, 확실히 리얼리티에 신경 쓴 흔적이 보인다.

=리얼리티가 중요했다. <팬텀: 라스트 커맨더>처럼 실제 잠수함 내부에서 찍은 영화도 있다고 하던데, 우리는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무조건 세트를 지어야 했다. 참고할 수 있는 북한 핵잠수함이 없었지만, 북한이라면 러시아의 잠수함을 모티브로 했을 거라 생각하고 잠수함을 설계했다. 수중 잠수함전의 경우 동해 심해의 지형부터 심해에 배치된 각국 잠수함의 모델까지 사실에 근접하게 표현하려 했다. 내가 밀덕이라 그런 쪽으로는 오랫동안 쌓인 지식이 있었고(웃음), 시나리오를 쓴 뒤 전문가들에게 자문과 검토를 받았다. 실제로 동해는 전세계 최고급 잠수함들이 득시글대는 곳이다. 미국, 러시아, 일본, 중국 잠수함이 다 모인,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

-참고한 잠수함영화들이 있다면.

=잠수함영화의 명작들, <특전 유보트> <크림슨 타이드> <붉은 10월> 같은 영화들은 기본적으로 챙겨봤다. 그중에서도 잠수함에 대한 이해도가 가장 높고 고증이 잘됐다고 느낀 건 <크림슨 타이드>였다. <변호인>을 만들 때는 법정영화로 최고의 완성도를 보여줘야지 하는 마음이 있었고, <강철비>는 밀리터리 액션과 특수전으로 보여줄 수 있는 최고치를 보여주려 했다. 이번엔 잠수함영화로서 최대치의 액션과 리얼리티와 스케일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게 명백한 목표였다. 그래서 거액을 들여 잠수함 세트를 제작했고, 심해 장면의 CG도 공들여 만들었다. 영화관에 영화를 보러 오는 관객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여성 캐릭터의 활약과 비중을 고민한 흔적이 엿보이지만 그럼에도 아쉬움은 남는다. 염정아 배우가 연기하는 영부인이나, 미국 부통령과 한국 총리(김용림) 등이 여성 캐릭터로 설정됐지만 이들이 영화에서 활약할 공간이 많지는 않다.

=방법을 찾기가 참 어려웠던 게, 전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잠수함에 여자 대원은 없다. 대한민국 장보고급 잠수함의 사이즈가 25평 아파트 사이즈와 비슷하다. 그곳에 남자 40여명이 생활한다. 공간이 좁고 열악해 함장만 유일하게 혼자 침대를 쓰고 나머지 대원은 침대를 공유한다. 구축함의 경우 여자 대원들이 승선해 활동하지만 아직 잠수함에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최근 확장판 작업을 마무리했는데, 확장판에선 여성 캐릭터들의 활약을 좀더 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문재인 대통령, 김정은 위원장, 트럼프 대통령이 <강철비2>를 본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 것 같나. 누구의 반응이 기대되나.

=미국 대통령은 배우의 풍자적 해석이 강하게 들어간 캐릭터고, 북한 위원장은 유연석과 곽도원 두명의 배우에게 강경한 입장과 평화적 입장을 나눠 담아서 어찌보면 유사성이 가장 떨어지는 캐릭터다. 문재인 대통령의 경우 2017년의 전쟁 위기를 직접 목도했기 때문에 영화를 보고 나면 현실은 더 엄혹하고 냉정하다고 평하지 않을까. (웃음)

-차기작은 가족 이야기라고 들었다.

=나라 바깥으로 눈을 돌렸을 때 가장 큰 문제가 북한 문제와 미중 갈등이라면, 대내적으로는 가족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짧은 기간 안에 대가족 중심이 핵가족으로, 핵가족이 다시 1인 가족 중심으로 변했다. 그 과정에서 가족의 의미, 형태, 정체성 등이 어마어마하게 바뀌었다. 아이들에게 어른은 어떤 존재인지, 어른에게 아이들은 어떤 존재인지, 가족에 관한 다양한 생각을 담은 따뜻하고 가벼운 가족 이야기를 하고 싶다. 지금까지 계속해서 힘들게 영화를 찍어와서 다음 작품은 웃으며 가볍게 찍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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