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불확실함이 창의력을 돋운다. <인셉션>(2010), <덩케르크>(2017)에 이어 <테넷>으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과 세 번째 협업을 한 의상감독 제프리 커랜드는 2019년 1월 처음 <테넷> 시나리오를 읽고 “시간과 장소가 불명확한 미래적 공간”을 떠올렸다. “언제 어디서 벌어지는 이야기라 특정해 기성복에 의지하기보다 오직 캐릭터를 생각하며 각자에게 어울리는 옷을 디자인했다.”
1970년대에 영화 의상 일을 시작해 90년대까지 우디 앨런 감독의 오랜 파트너로, 2000년대에는 <에린 브로코비치>(2000), <오션스 일레븐>(2001), <고스트버스터즈>(2016) 등의 대표작으로 커리어를 공고히 한 제프리 커랜드는 연륜에서 나오는 직관을 믿었다. 그가 본 주도자는 “앞으로 벌어질 일에 완벽히 준비된, 언제나 침착함을 유지하는 사람”이다. 마이클 케인이 분한 크로스비 경으로부터 고급 슈트를 맞출 수 있는 신용카드를 받은 이후, “주도자는 비로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줄 수 있게 된다. 슈트가 그에게 걸쳐져 있는 모습이 아니라 그가 슈트를 제대로 갖춰 입은 그림을 원했다”.
커랜드는 같은 정장 차림이어도 닐에게는 다른 느낌을 원했다. 그는 닐이 <조용한 미국인> <권력과 영광> 등의 소설을 썼으며 MI6 첩보원으로 활동한 경력이 있는 영국 작가 그레이엄 그린과 그가 쓴 작품 속 인물들을 닮길 바랐다. “어디든지 돌아다닐 수 있고, 어디서도 살아갈 수 있는” 닐에게 각 잡힌 옷보다 리넨과 스카프를 매치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