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원작을 리메이크한다는 건 애초에 이길 수 없는 게임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리메이크가 원작을 뛰어넘기 힘든 이유야 갖다 붙이는 만큼 계속 나오겠지만 두 가지 정도 꼭 짚고 넘어가고 싶다. 하나는 원작을 다시 만들기로 결심했다는 게 이미 애정 고백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이다. 너에게 반하다. 그 순간, 이건 이기고 지는 경쟁도 아니고 상대를 뛰어넘기 위한 노력도 아니다. 그저 가슴을 뒤흔든 순간에 대한 또 다른 방식의 화답일 따름이다.
두 번째로 처음은 힘이 세다. 첫사랑, 첫만남, 첫 경험. 세상 모든 처음은 어떤 형태로든 각인되어 마음 한구석 방을 배정받는다. 월세도 내지 않고 내내 머무르는 뻔뻔하고 고마운 기억들. 그래서 원작과 비교를 시작하는 순간 그 어떤 리메이크라도 가난하고 부박해 보이는 걸 피하기 어렵다.
김종관 감독의 <조제>를 말할 때 이누도 잇신 감독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2003, 이하 <조제…>)을 옆에 놓고 계속 키를 재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나베 세이코 작가의 원작 소설과 비교하는 이도 적지 않을 것이다. 신작 <조제>에 대한 불만과 아쉬움을 늘어 놓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다. <조제…>를 사랑하는 만큼 밤새도록 지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들뜬 실망감으로부터 한발 떨어져 생각해보면 김종관 감독의 <조제>가 가만히 다가와 가슴을 두들긴 장면들도 분명 존재한다. 원작 소설의 ‘조제’, 이누도 잇신의 ‘조제’와는 다른, 처음 보는 조제와의 만남. 이번 글에서는 한국영화 <조제>와의 시간에 온 신경을 집중해보려 한다. 심장 박동 소리가 천둥처럼 크게 들릴 만치 고요한 밤. 소복이 쌓인 눈이 온 세상 소리를 먹던 밤. 그 밤 한가운데에 서서 감지되는 순간들을 수집해보려 한다.
변명의 여지없이, 이건 <조제>를 위한 변명이다. 이누도 잇신의 영화가 그랬듯 <조제>는 앞서 나온 이야기들과 다른 이야기를 걷는다. 어떤 관객은 단지 다르다는 걸 넘어 한참 모자라게 느낄 수도 있다. 그런 감상도 동의한다. 김종관의 <조제>는 여러모로 모자라고 약점이 많은 영화다. 하지만 그렇게 비교하고 내버려두기엔 눈에 밟히는 것들이 있다. 이건 아닌데 싶으면서도 계속 눈가에 아른거리는 어떤 순간들. 마음을 뺏긴다는 건 그런 게 아닐까. 누군가 한 사람쯤은 이 덧없고 예쁜 세계를 향한 고백을 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자세히 볼수록 발견되는 <조제>의 매력을 중심으로 김종관 감독의 <조제>가 원작과 다르게 성취한 점을 비교해보았다. <조제>는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김종관 감독의 인터뷰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