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인터뷰] 영화 '조제' 김종관 감독 - 클래식 멜로의 자리, 보편적인 날들이 되어
2020-12-15
글 : 송경원
사진 : 백종헌

쉽지 않은 리메이크다. 한편으론 이만큼 잘 어울리는 조합도 드물 것 같다. <페르소나-밤을 걷다>(2018), <아무도 없는 곳>(2019), <달이 지는 밤>(2020) 등 한동안 유령과 죽음의 흔적을 더듬던 김종관 감독이 보편적인 자리로 조심스럽게 걸어왔다. 김종관 감독의 클래식 멜로, <조제>가 탄생하기까지의 이모저모에 대해 물었다.

-부담이 갈 수밖에 없는 리메이크인데 제작 과정이 궁금하다.

=<최악의 하루> 후반작업 중에 일본 프로듀서들과 협업할 일이 있었다. 그중 <조제…>와 관련됐던 PD가 있었는데 리메이크해볼 생각이 있는지 질문을 받았다. 그땐 어렵다고 답했다. 훌륭한 원작을 그대로 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창작자로서 리스크도 크고. 그런데 계속 앙금처럼 기억들이 떠올랐다. 내가 지향하는 감정의 이야기,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서 그랬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그동안 해온 것도 도전이 아닌 게 없었다. 작은 영화, 단편영화들을 꾸준히 만들어왔는데 그것 역시 방식과 방향이 다를 뿐 큰 용기가 필요한 작업들이었다. 그동안 많은 단편을 만들고 오랫동안 독립영화 작업을 한 이유는 그 안에서 분명히 성취를 얻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좋은 원작을 두고 도전하는 것에서 창작자로서 배우고 찾아낼 수 있는 것들이 있을 거라는 예감이 나를 움직였다.

-원작 영화와의 비교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큰 숙제 중 하나는 원작에 대해 애착을 가진 분들을 어디까지 만족시킬 수 있을까였다.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좀더 독립적인, 다른 길을 가기로 했다. 가장 중점을 둔 건 대중영화로서의 보편성, 그리고 멜로적인 정체성이었다. 굳이 비교하자면 이별에 대한 입장이나 이별의 과정이 원작 영화와 다르다. 일본과 한국이라는 공간, 문화 차이는 물론이고 시대도 달라졌다. 이별의 책임을 인물에게 묻기보다는 관객이 스스로의 현실이나 보편적인 사랑, 이별의 과정에 대입해볼 수 있길 바랐다. 원작이 문학적인 색채가 진하다면 내가 모티브로 잡은 건 할리우드 클래식 멜로다. 멜로가 희귀해져가는 시대에 제대로 된 멜로를 해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지방대생, 가난과 취업, 장애인 복지 등 훨씬 사실적인 디테일들로 채워진, 땅에 발을 디딘 이야기로 현지화됐다.

=기본적으로 가난에 대한 기억이 있다. 미술이나 배경은 내 기억 속에서 길어 올려 채우는 편이다. 다행히 내가 해석한 조제라는 캐릭터가 가진 개성과도 결이 닿았다. 영석도 마찬가지다. 이건 스스로를 좋아하지 않던 영석이라는 인물이 사랑이란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알아가게 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초반부는 영석의 방황을 가져가되 뒤에는 이별에 대한 클래식 멜로의 정서를 진하게 보여주려 했다. 누군가를 탓하기보다는 인물을 둘러싼 주변 상황들이 속절없이 흘러가는 풍경을 담았다.

-제목이 <조제>다.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제목에서 뺐는데 후반부에 호랑이와 물고기를 굳이 등장시키는 게 의아하다.

=원작 소설 제목이기도 한 만큼 호랑이와 물고기에 대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가고 싶었다. 거기서 변주를 한 것이 경계 너머에 대한 상상이다. 영화는 영석이 조제를 관찰하는 시점으로 시작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조제의 이야기로 전환된다. 이 영화는 경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조제는 현실과 상상의 구분을 두지 않고 오가는 사람이고, 영석은 그걸 이해한다. 마찬가지로 두 사람의 시점 혹은 경계의 이쪽저쪽을 오가고 싶었다. 원작과는 쓰임새가 다른 만큼 제목까지 가져가기엔 미안해서 <조제>로 했다. 주인공 조제는 원작보다 연령대를 올린 만큼 한층 진중하고 무거운 느낌이 있다.

-캐릭터도 많이 바뀌었다. 할머니의 경우엔 거의 대사가 없다.

=원작을 본 사람들은 계속 원작과 비교할 수밖에 없지만 내 기준은 원작을 보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아무 정보 없이 영화를 쫓아올 수 있도록 캐릭터 해석에 공을 들였다. 영화보다 원작 소설에서 영향을 받은 부분이 많다. 원작 영화의 캐릭터는 아기자기한 면이 있는데 이 영화의 정서와는 맞지 않는다고 느껴 절제해서 표현하려고 애썼다. 인물들의 남루함을 살리는 쪽이랄까.

-옆모습 실루엣과 뒷모습을 한국에서 가장 섬세하게 찍는 감독 중 한명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멋진 장면들이 등장한다.

=인물 묘사를 할 때 표정을 직접 보여주는 것보다는 목소리, 옆모습, 흘러내린 머리카락, 손끝 등을 입체적으로 쓰는 편이다. 조제는 어둠에 잠긴 인물로서의 모습을 좀더 보여주고 싶어 초반에는 그림자와 실루엣 위주로 가져갔다. 어찌 보면 거기서 벗어나 점차 밝은 쪽으로 넘어오는 과정을 담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단편을 찍을 때보단 조건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좀더 찍어보고 싶은 이미지들을 많이 시도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크레인을 활용한 부감같이. (웃음) 흔한 이야기, 멜로의 통속성 속에서 사람을 향한 시선들을 생각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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