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동물원 대신 유원지, 바다 대신 수족관... 한국영화 '조제'만의 반짝이는 순간들
2020-12-15
글 : 송경원
김종관 감독에게 조제의 반짝이는 기억, 그들의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들에 대해 물었다.

눈 내리던 밤, 담장 안에서

조제는 영석이 불편해졌다며 쫓아낸다. 어쩌면 울타리 안으로 불쑥 들어온 영석이 두려워졌을지도 모른다. 한참 뒤 할머니의 부고를 듣고 조제의 집을 찾은 영석. 조제는 매몰차게 영석을 밀어내보지만 결국 담장 안에서 함께 머물기로 결심한다. “조용하게 눈을 밟으며 나에게 왔지. 나를 지켜주겠다고 했어. … 나는 이제 무섭지 않아.”

공을 많이 들인 장면이다. 촬영장에서 두 배우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조제는 구멍 뚫린 담을 보며 어딘가로 넘어가는 상상을 한다. 그렇지만 조제는 어디까지나 안에 있는 사람이다. 영석은 그걸 받아들이고 담을 메워준다. 그렇게 서로를 아껴주는 게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유원지와 대관람차, 문을 닫아보아도

<조제>에는 동물원이 없다. 대신 영석과 조제는 연인이 된 뒤 놀러 간 유원지에서 함께 대관람차를 탄다. 두렵지만 함께 있으면 할 수 있는 일. 대관람차는 두 사람만의 행복한 시공간을 선사하지만 한 바퀴 돌면 내려와야 한다. 내려야 할 차례가 왔을 때, 조제는 대관람차의 문을 살포시 닫는다. 결국엔 끝나버릴 부질없는 저항. 그럼에도 한 바퀴 더 돌 수 있다는 행복한 유예.

이별엔 ‘왜’가 없다. 적어도 영화에서 그걸 보여주려 하진 않았다. 이를 통해 관객 각자의 보편적인 체험으로 확장될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가장 좋은 순간 느끼는 불안감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걸 유지하고 싶은 마음. 조제의 내면이 단단해지는 시간이라고 봐도 좋을 것 같다. 조제는 죽음을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이다. 깊고 쓸쓸한 영역의 느낌들을 주고 싶었다. 영화의 엔딩을 대관람차와 이별 사이 어느 시간으로 잡은 것도 비슷한 이유다.

바다와 수족관, 물의 기억들

이누도 잇신의 <조제…>, 다무라 고타로의 애니메이션 <조제>, 그리고 김종관의 <조제>의 큰 차이는 바다를 가는 타이밍이다. 애니메이션 <조제>는 일찌감치 바다로 가고, 이누도 잇신의 <조제…>에선 헤어지기 전 이별 여행에 가깝다. 김종관의 <조제>에선 바다에 직접 가지 않는다. 대신 물의 공간이 두 차례 나온다. 스코틀랜드의 바다와 아쿠아리움이 바로 그것이다.

물의 세계는 원작 <조제…>에서도 중요하다. 정서는 살리되 내가 할 수 있는 쪽, 우리 조제에 더 어울리는 쪽으로 끌고 오려 했다. 영화를 보고 두개의 이미지가 주는 느낌의 차이를 직접 확인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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