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는 콘텐츠 산업의 새로운 강자가 될 수 있을까. 아니면 극장이 다시 회복할까. 이것이, 21세기 전대미문의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코로나19 상황에서 2021년 영상 콘텐츠 산업을 바라보는 관전 포인트가 될 것 같다. <씨네21> 신년호 설문 조사에 참여한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계 결정권자 55명이 꼽은 2021년 키워드와 트렌드를 살펴보면 포스트 코로나와 관련된 움직임과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이들이 꼽은 2021년 키워드 상위권에 오른 세 가지는 OTT, 코로나19, 크로스오버(시리즈)인데,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는 키워드들이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극장이 침체기에 빠진 반면 OTT가 단숨에 대세가 되었고, 그러면서 영화인들이 시리즈 제작에 뛰어드는 크로스오버가 일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2021년 새로 주목해야 할 트렌드 상위 세 가지 또한 OTT, 오리지널 시리즈, 한류와 글로벌 시장, 숏폼과 미디폼, IP 확장(웹툰, 웹소설 등)으로, 위의 키워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씨네21>은 콘텐츠 산업을 움직이는 전문가들이 꼽은 2021년 산업의 주요 키워드와 트렌드를 6가지로 정리했다.
#OTT_혼돈의_춘추전국시대
코로나19는 OTT를 미디어 시장 재편의 핵심으로 끌어올렸다. 설문에 참가한 전문가 대부분이 OTT를 2021년 콘텐츠 산업 키워드 세 가지 중 하나로 꼽은 것도, “OTT 열풍이 당분간 멈추지 않을 거라는 전망” 때문이다. 넷플릭스가 한국 콘텐츠 시장에 안착한 가운데, 글로벌 OTT의 한국 시장 공략은 새해에도 계속된다. 마블, 디즈니, 픽사, 내셔널 지오그래픽 등 강력한 콘텐츠를 앞세운 디즈니+가 2021년 한국 시장 진출을 최근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창립작인 8부작 시리즈 <파친코>(감독 코고나다, 저스틴 전)의 한국 촬영을 마치고 캐나다로 이동한 애플TV+도 서울에 사무실을 내고 론칭을 준비하고 있다.
텐센트, 요쿠와 함께 중국 3대 메이저 OTT인 아이치이는 글로벌 OTT인 ‘아이치이 인터내셔널’을 론칭해 향후 3년 동안 1천억위안(17조원)을 콘텐츠 제작에 투자하기로 결정했고, 현재 촬영 중인 tvN시리즈 <지리산>(감독 이응복·작가 김은희·출연 전지현, 주지훈)의 글로벌 방영권을 확보했다.
이 밖에도 HBOMax, 아마존 등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 시장의 문을 계속 두드릴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OTT뿐만 아니라 “토종 OTT(왓챠, 웨이브, 티빙), 유통사(신세계, 쿠팡), 플랫폼(카카오TV, 네이버), 통신사들(KT, SK텔레콤, LG유플러스)까지 콘텐츠 경쟁에 가세하고 있어 거침없는 ‘피버팅’(pivoting, 새로운 물결)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잇따른 OTT 플랫폼 론칭을 두고 많은 전문가들은 “다양한 기획의 콘텐츠들이 제작될 수 있는 새로운 전환”인 동시에 “영화, 드라마 등 한국 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라고 기대하지만, 한편으로는 막대한 자금력을 앞세운 글로벌 OTT와의 경쟁을 우려해 “한국 OTT 플랫폼간의 합병과 통합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코로나19_극장의_위기
코로나19는 “극장 중심의 영화산업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며 산업 생태계의 모든 풍경을 바꿨다. OTT와 마찬가지로 설문 응답자의 상당수가 오랜 시간 “한국 영화산업에서 가장 큰 돈줄이자 슈퍼 갑이었던 극장의 위기로 산업에 쓰나미가 연쇄적으로 오고 있는 상황”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극장을 찾은 관객수가 전년도 대비 70% 줄어 신작들이 개봉을 미뤘고, 재고가 쌓여 신규 투자가 중단”되다시피 했다. 침체된 극장산업은 “양극화를 부추길 것”으로 예상된다.
2021년 극장가는 <서복> <모가디슈> 같은 올해 개봉하지 못한 대작 아니면 저예산영화들로 채워질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 극장에서 볼 영화와 OTT에서 감상하는 콘텐츠의 구분이 더욱 심해질 것이다. 이마저도 코로나19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된다는 전제하에서 가능한 일이다. 코로나19가 종식되더라도 관객이 예년 수준으로 극장을 다시 찾을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영화인들에게 많은 과제가 남았다. “극장 매출에 의존하는 기존의 수익 구조를 어떤 방식으로 개선”할지, “제작비를 보전하는 정도인 OTT 플랫폼과의 협업을 어떤 방식으로 이끌어낼”지 등 여전히 풀리지 않는 고민들이 많다. 무엇보다 2021년은 “감당하기 힘든 제작비와 과도한 경쟁 등에서 생긴 그간의 폐해가 결과적으로 제작 편수 하락으로 이어지는 첫해”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많은 제작사들끼리 “합종연횡을 고려”하는 것도 그래서다. 한 투자·배급사 임원은 “합종연횡은 회사 대 회사뿐만 아니라 프로젝트별로 이루어질 것 같다”며 “가령, 극장에서 개봉하고 몇주가 지난 뒤 곧바로 OTT에서 공개되거나, 극장 개봉하고 몇주가 지난 뒤 OTT를 제외한 윈도에서 공개되거나 아예 극장과 OTT 동시 공개되는 식으로 말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콘텐츠 산업이 OTT로 재편되고 있는 상황에서 OTT의 거침없는 성장세가 계속될지, 아니면 극장이 회복할지는 코로나19 상황에 달렸고 2021년은 그 갈림길에 선 해라 할 만하다.
#크로스오버_시네마틱시리즈
영화감독과 프로듀서들이 시리즈를 제작하는 풍경은 더이상 낯설지 않다. 이경미(<보건교사 안은영>), 김성훈(<킹덤: 아신전>), 연상호(<지옥>), 한준희(<D.P.>), 황동혁(<오징어 게임>), 윤종빈(<수리남>) 등 많은 영화감독들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를 연출하거나 촬영하고 있다. 김지운 감독 또한 애플TV의 오리지널 시리즈 <미스터 로빈>을 준비 중이다.
시청자들을 플랫폼에 오래 머물게 하기 위해 오리지널 영화보다는 시리즈를 선호하는 OTT의 성향을 고려하면 영화 제작사간에 오리지널 영화보다는 시리즈 제작에 대한 경쟁이 더욱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설문 응답자들의 상당수가 2021년 콘텐츠 산업 키워드(16명)와 새로운 트렌드(6명)로 시리즈 제작을 주목한 것도 이런 변화 때문일 것이다.
영화 인력들이 시리즈로 넘어가면서 영화와 시리즈의 경계가 무너지는 현상이 이미 벌어지고 있다. 극장이 살아나기 전까지 “영화 흥행 수익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에서 얼마나 많은 시리즈를 확보하는지가 제작사의 경쟁력”이 될 거라고 응답자들은 말한다. 영화 인력의 이동으로 시리즈에서 “수준 높은 시나리오가 나올 가능성이 높아졌”고, “기존의 흥행 공식과 차별화된 전략들이 다양하게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한 제작자는 “시리즈물은 인기를 오래 지속하기 위해 재능 있는 신인배우의 기용이 필수적”이라 “스타 시스템에서 벗어나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홀드백(극장 상영에서 2차 부가판권시장 혹은 OTT로 넘어가는 기간) 문제, 제작비의 현실적인 운용, 국내 제작사간의 경쟁 과열 등 풀어야 할 과제들이 다양하게 산적”해 있지만 당분간 영화와 시리즈의 크로스오버 움직임은 계속 될 것 같다.
※설문에 참여한 분들의 성함과 직함은 게재되며, 응답자의 문항별 답변은 공개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