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경은 극중 분량이 많지 않음에도 <펜트하우스>의 역동성을 책임지는 중요한 주체다. 쌍둥이 오빠와 OMR 카드를 바꿔치기하고, 과외 선생님에게 절도 누명을 씌우고, 그 선생님을 납치한 후 집단 폭행을 하다 그가 갇힌 봉고차에 불이 나자 그냥 도망가는 등 석경의 주변에는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그의 범죄 연대기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네티즌이 ‘이 정도면 최대 전과 15범’이라며 경악할 정도. 동시에 석경은 아빠 주단태(엄기준)에게 심각한 학대를 받는 피해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원래 나쁜 애는 아닌데 부모 때문에 망가졌다”는 식의 연민이 비집고 들어갈 틈 없이 냉랭하다.
석경 역의 한지현은 김순옥 월드가 요구하는 다소 전형적인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한편, 욕망과 폭력의 인과관계를 또렷이 그리며 캐릭터와 배우 본연의 개성까지 살려낸 신예다. 그는 “폭력에 노출된 아이가 그 폭력을 반복하는” 폭력의 되물림과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석경의 입체성”을 중점적으로 고민했다고 전한다. “친구들과 있을 때, 가족과 있을 때, 헤라팰리스의 다른 인물이 함께 있을 때 석경의 모습이 모두 다르다. 민설아(조수민), 배로나(김현수), 하은별(최예빈)로 타깃이 이동하면서 누군가에게 지고 싶지 않아 하는 행동도 바뀐다.”
사실상 데뷔작인 <펜트하우스>에서부터 강렬한 인장을 남긴 한지현은 타고난 재능이 갈망으로 진화할 때 틔우는 불꽃을 확인할 수 있는 신인이다. 중학생 때 모델 일을 하면서 잠깐 연기를 배우며 흥미를 느끼긴 했지만 모델을 그만두면서 자연스럽게 일반고로 진학했던 한지현은 배우를 꿈꾸던 학생은 아니었다. 그러다 대학 입시를 앞두고 연기를 다시 배우면서 건국대·동국대·서울예대·성균관대·세종대·중앙대·한국예술종합학교 수시에 모두 합격했다. 진지하게 “연기하고 싶다”는 꿈을 품은 것은 한예종 15학번으로 입학한 이후다.
<펜트하우스>를 위해 “성악을 할 때 목 떨림이나 표정, 입 크기, 발음, 손동작, 호흡 같은 걸 모두 연습”했다는 그는 서울대·연세대·한양대 성악과 학생들이 <펜트하우스>의 성악 장면과 연기를 분석하는 유튜브 영상에서 ‘가장 실제에 가깝게 연기한 배우’로도 꼽혔다. 시즌1으로부터 2년 후 이야기를 그린 <펜트하우스2>(2월 19일 방송)에서 석경은 단발머리로 변신한다. 그가 극에서 보여줄 역할도 더 다양해지면서 배우 한지현의 가능성 역시 확장될 예정이다. 수련(이지아)의 죽음 이후 악을 품은 서슬 퍼런 배우의 눈빛이 벌써부터 화제다. “머리카락이 길면 계속 죽은 엄마가 생각날 것 같아 머리를 잘랐다. 아마 더 영악해진 석경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BEST MOMENT
죽은 수련과의 추억을 떠올리다 “미워. 미워서 미쳐버릴 것 같아”라며 오열하는 장면
“내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에 올라와 있기에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찾아봤더니, 이 장면이 인터넷에 선공개로 올라와 있었다. 현장에서 연기하면서 실제 우리 엄마가 죽은 것처럼 많이 몰입했다. 밉다는 말이 진짜 밉다는 말로 들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연기했다.”
-<펜트하우스>에서 본인 역할을 제외하고 가장 연기해보고 싶은 캐릭터
=은별 캐릭터. 은별만의 독특한 매력이 있다. 배우가 연기하기에 정말 재미있는 캐릭터 같다.
-지금까지 연기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대학교 2학년 수업 시간에 헨리크 입센의 <헤다 가블러>로 연기하다가 정신을 놓고 인물과 동일시된 순간이 있었다. 진심으로 화가 나서 선배 배우에게 소리를 지르려는 와중에 스스로 너무 놀라 다시 본래의 나로 돌아왔다. 그렇게 밀착되는 순간을 계속 느끼고 싶어서, 그 시간을 연장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서 계속 연기를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사실 이번 <펜트하우스> 시즌2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은 신이 있었다. 캐릭터와 내가 교류하는 느낌이 참 좋았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역할
=지난해 3월부터 <펜트하우스>를 준비했으니까 1년 반 정도를 나쁜 역할로 살게 되는 거다. (웃음) 그러니까 다음엔 착하거나 밝은 역할을 하고 싶다. 한복을 진짜 좋아해서 사극도 해보고 싶고, 로맨틱 코미디나 공포영화도 끌린다.
필모그래피
영화 2020 <서복>
드라마 2020 <펜트하우스> 2019 <바람이 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