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중기가 마지막으로 대중과 소통한 영화는 <군함도>(2017), 드라마는 <아스달 연대기>(2019)였다. 그동안 꾸준히 영화 촬영은 하고 있었지만 2020년에 송중기와 관객 사이엔 공백 아닌 공백이 있었다. 기다림에 대한 보답처럼 2021년 연초부터 송중기는 두편의 작품, 2월5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되는 <승리호>와 2월 방송 예정인 드라마 <빈센조>로 찾아온다. <승리호>에서 송중기는 우주 쓰레기 청소선 ‘승리호’의 조종사 태호가 되어 우주선을 몬다. 돈이 되는 일에는 뭐든 달려드는 뻔뻔함과 구멍 난 양말을 신고 다니는 궁핍함이 태호를 설명하지만 사실 태호는 복잡하고 심란한 과거사를 가진 인물이다. 이전에는 연기해본 적 없는, 부성애라는 낯선 감정 연기에도 도전한 송중기는 <승리호> 공개를 앞두고 떨리는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오랜만에 작품을 선보인다 생각하니 신인 때 기분도 나고, 굉장히 설레는 2월이 될 것 같다.”
-한국에서 최초로 시도하는 SF 우주영화라는 점이 <승리호> 출연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쳤나.
=큰 부분을 차지했다. 조성희 감독님과 <늑대소년>을 할 때도 늑대소년을 소재로 한 판타지영화가 만들어진다는 것에 대한 부담과 기대가 공존했었는데, <승리호> 역시 한국 최초의 우주영화라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솔직히 ‘최초의 OOO’란 수식이 붙는 작품은 편할 수가 없다. 무언가 해내야만 할 것 같고, 증명해야 할 것 같고. 그런데 나도 그렇고 조성희 감독님도 그렇고 은근히 그런 도전을 즐기는 것 같다.
-예전부터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영화에 대한 동경 혹은 매혹이 있었는지.
=오래전부터 좋아했던 장르인 건 확실하다. 어렸을 적 TV에서 파충류 외계인이 등장하는 SF 드라마 <브이>도 재밌게 본 기억이 남아 있다. 그래서 조성희 감독님이 <승리호>를 제안했을 때 반가웠다. 배우로선 조성희 감독님 덕에 내가 하고 싶었던 장르와 캐릭터를 할 수 있었다는 생각도 든다. 예전부터 뱀파이어나 늑대인간 역할을 해보고 싶었는데 마침 <늑대소년>을 하게 됐고, 우주영화나 SF 장르에 꾸준히 관심이 있었는데 <승리호>를 하게 됐으니, 이게 인연인가 싶다.
-<승리호>의 주인공 모두 과거사를 가지고 있다. 태호 역시 “가난하고 뻔뻔하고 못돼먹은” 현재와는 다른 과거를 가진 인물인데 과거와 현재의 차이, 그 낙차를 표현하는 것도 중요했을 것 같다.
=태호뿐 아니라 다른 캐릭터들의 전사도 짧은 몽타주로 설명된다. 아무래도 시간의 제약이 있으니 인물의 전사를 길게 설명할 수 없는데, 짧게 보여지는 과거 몽타주 신 안에서 캐릭터의 전사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게 중요했다. ‘아, 이 인물은 이렇게 살아왔구나. 그래서 지금 이렇게 살고 있구나’ 하는 걸 전달해야 했다. 어떻게 하면 짧은 시간 안에 효율적으로 인물의 상황과 감정을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태호의 부성애 스토리가 중요한 한축을 차지하고 있다. 태호가 처한 상황, 태호의 감정엔 어떻게 몰입했나.
=자녀를 가져본 적도 없고 실제 그런 감정을 느껴본 적도 없어서 상상만으로 연기해야 하는 측면이 있었다. 조카들이 있어서 간접적으로 상상을 해본 부분도 있지만, 현장에선 실제로 존재하는 아기 소품들이 큰 도움이 됐다. 미술팀과 소품팀에 고맙다는 말을 많이 했는데, 그 사물들에 집착하면서 태호의 감정에 깊이 빠지려 했다. 그리고 주변에선 내가 딸을 가진 아빠 역할을 하는 것에 부담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런 부담은 없었고, 오히려 상업적으로 잘 알려진 송중기라는 배우가 부성애를 연기했을 때 관객들이 잘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 그런데 감독님을 믿고 하다 보니 내가 쓸데없는 걱정을 했구나 싶더라.
-캐릭터의 난이도 면에선 <늑대소년>과 <승리호>, 어떤 캐릭터가 더 어려웠나.
=<늑대소년>! <승리호>는 부성애 연기가 처음이라 그 부담이 컸는데, 촬영하면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져서 어려운 게 없었다. 반면 <늑대소년>은 영화 개봉 당시에도 많이 얘기 했지만, 대사가 없다는 게 그렇게 어려운 건지 몰랐다. 대사가 없으니 어디 꽁꽁 묶여있는 기분이들더라. <늑대소년>이 여러 면에서 어려웠다.
-영화의 히든 캐릭터라 할 수 있는 도로시/꽃님이(박예린)와 함께 연기하는 장면들이 꽤 된다. 아역배우와의 협업은 어땠나.
=감독님이 쓴 대사 하나하나를 또박또박 정확하게 읽는데, 너무 귀여웠다. 당연히 현장에서 모든 사랑을 독차지했다. 조성희 감독님 영화엔 아역배우가 꾸준히 등장해왔고, 아역배우 캐스팅이나 연기 지도를 훌륭히 해오셨기 때문에 이번에도 믿음이 있었다. 배우들 4명 모두 그런 얘기를 많이 했다. “꽃님이가 다 했다”고. 뿐만 아니라 김태리, 진선규, 유해진 선배님까지, 이번 영화는 진심 어린 협업이 있었다. 촬영이 끝나고 1년이 넘었는데도 그 관계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배우들의 밸런스가 정말 좋은 현장이었다.
-우주선 세트에 들어서서 조종석에 앉았을 때는 어떤 느낌이 들었나. 또 우주선을 조종하는 장면에선 상상력을 동원하는 연기가 필요했을 텐데 어색하거나 어렵진 않았나.
=세트에 처음 들어섰을 때 정말 놀랐다. 미술팀, 소품팀 등 모든 스탭들이 영화의 컨셉에 딱 맞게, 아기자기하고 정교하면서도 예쁘게 한국적인 우주선 내부를 잘 구현해놓았더라. 그래서 공간에 대한 이질감 없이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었고. 촬영 전엔 우주선이 움직이는 상황을 어떻게 상상하고 연기할지 막막한 게 있었지만 촬영에 들어가선 문제 없었다. 조성희 감독님이 이 작품을 내게 처음 얘기한 게 <늑대소년> 찍을 때였고, 10년 넘게 준비해온 작품이라 감독님의 머릿속엔 구체적 그림이 다 그려져 있었다. 그 어떤 작품보다 프리 비주얼이 많았고, 헷갈리는 게 있을 때마다 프리 비주얼을 보면서 상의하고 촬영해 크게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조종간을 다루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는데, 우주선 조종사로서 최대한 숙련되게 기계를 조작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노력했다. 내가 우주선을 조종하는 장면과 CG가 더해져 완성될 장면들이 이질감 없이 연결될 수 있도록 표정의 연결도 하나하나 따져가며 찍었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 <아스달 연대기>, 영화 <늑대소년> <군함도> <승리호> 그리고 앞으로 만나게 될 영화 <보고타>와 드라마 <빈센조>까지, 만만한 캐릭터를 연기한 적이 거의 없다. 자신이 잘할 수 있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것보다 위험이 따르더라도 새롭고 재미난 모험을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평소 성격이 작품을 선택할 때도 반영되는 것 같다. 기존에 보여줬던 혹은 기존에 존재했던 것을 다시 연기하는 것에는 식상함을 느낀다. <아스달 연대기> 역시 한국 드라마 최초로 상고시대를 다룬 작품이었고, 그런 상황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이상하게 끌렸다. 배우로서 본능적으로 끌리는 작품들이 있다. 그럴 땐 어떻게든 하게 되는 것 같다. 주위에선 그런다. 이제 편한 작품 좀 하라고. 깨끗하게 나오는 걸로 하라고. (웃음) 그런데 차기작인 <빈센조>나 <보고타>도 결코 만만치가 않다.
-현재 촬영 중인 <빈센조>의 캐릭터도 범상치 않던데.
=<빈센조>에서 연기하는 빈센조는 생긴 것만 한국 사람이지 뼛속까지 이탈리아인이다. 이탈리아에서 평생 살아온 마피아 고문 변호사다. 마피아를 한국 드라마에서 소재로 다루는 것도 낯설었는데, 그러고 보니 결국 또 그 새로움에 끌렸나보다. 어쨌든 한국 사회에 들어온 이방인이 겪는 블랙코미디의 에피소드들이 재밌었다.
-<승리호>의 속편이나 스핀오프가 만들어진다면 참여할 마음이 있나.
=제작 계획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배우로서, 또 <승리호>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승리호>의 세계관이 계속 확장되었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당장은 <승리호>가 넷플릭스에서 터졌으면 좋겠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