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이 제작사가 궁금하다- '인간수업' '글리치' 스튜디오 329
2021-03-19
글 : 이주현
사진 : 오계옥
윤신애 스튜디오 329 대표 인터뷰

스튜디오 329는 지난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인간수업>을 선보이며 영화계에서도 주목하는 콘텐츠 제작사가 되었다. 10대 청소년들의 성범죄 문제를 다룬 <인간수업>은 신인 진한새 작가의 파격적 스토리텔링, 김진민 감독의 밀도 있는 연출과 김동희, 박주현, 남윤수, 정다빈 등 신인배우들의 발견까지 더해져 지난해 넷플릭스 최고의 화제작으로 주목받았다. 스튜디오 329의 윤신애 대표는 <대망> <봄날> <개와 늑대의 시간> <육룡이 나르샤> 같은 드라마를 제작한 베테랑 드라마 제작자로, <인간수업>은 그의 안목과 과감한 시도가 빛을 발한 작품이다. <인간수업>에 이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글리치>를 준비 중인 윤신애 대표를 만났다.

-지난해 말 <씨네21>이 55인의 콘텐츠 업계 리더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인간수업>이 2020년 가장 인상 깊은 콘텐츠 1위로 꼽혔다. <인간수업>의 제작자로서, 업계 관계자들의 이런 응답이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을 것 같다.

=<인간수업>이 공개된 뒤 특히 영화쪽 사람들에게서 작품 잘 봤다는 연락을 정말 많이 받았다. 기획의 신선함, 틀을 깨는 과감한 시도를 영화 관계자들이 좋게 봐준 것 같다. <인간수업> 같은 드라마가 나오는구나, 시리즈물에서 이런 시도를 할 수 있구나, 하는 반응에 감사하고 뿌듯했다.

-<인간수업>에는 이른바 ‘스타’가 없다. 신인작가에 신인배우들이 참여한, 파격적인 소재의 10대 드라마였다. 넷플릭스에서 제작이 확정되기까지 그 과정은 순탄했는지 궁금하다.

=어려움은 없었다. 처음 진한새 작가가 쓴 대본 1화를 봤을 때 너무 좋았다. 다만 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은 넷플릭스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기존 방송사에선 이런 아이템 자체를 시도하기 어렵고, 2화 대본만 가지고는 신인작가의 작품을 선보이기 힘들다. 16부작 드라마라면 적어도 반 이상은 써야 했을 거고, 광고 시장과 해외 판매도 고려해야 하니 캐스팅에 대한 접근도 달랐을 거다. OTT와 방송사는 비즈니스 구조 자체가 다르다. 넷플릭스에선 <인간수업>의 2화 대본만 보고 바로 제작을 결정했다. 작가의 이력을 쓸 것도 없었지만, 써야 할 이유도 없었다. 넷플릭스에서도 놀랐다고 하더라. “한국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겠다고요?” (웃음) 캐스팅과 관련해서도, 캐릭터를 온전히 캐릭터로 받아들이게 하려면 얼굴이 알려진 배우보다 신인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오디션을 진행했다. 드라마 <개와 늑대의 시간>을 함께했던 김진민 감독님 역시 도전적인 성향이라 이 작품을 좋아할 거란 확신이 있어 함께하자고 제안했다. 이 모든 과정이 순조로웠다.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의 등장이 제작사들에는 새로운 기회가 된다고 보나.

=그렇다. 기존의 플랫폼에 더해 새로운 플랫폼이 생겨났고, 신규 플랫폼이 기존의 플랫폼 못지않은 막강한 파워를 가지게 됐다. 그러면서 콘텐츠의 파급력도 커졌다. 해외 반응도 즉각적으로 체감한다. 그 반응이 어디서 어떻게 올지 몰라 재밌다. 이제는 우리가 만드는 콘텐츠의 색깔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 드라마는 전통적으로 로맨틱 코미디가 강했는데 이제는 로맨틱 코미디뿐만 아니라 다양한 기획이 가능해졌다. 그러니 콘텐츠를 만드는 입장에선 좋을 수밖에. 그동안 하지 못하고 버려야 했던 기획들을 할 수 있게 됐으니. 글로벌 OTT의 등장은 단지 플랫폼 수가 많아지고 기획의 포인트가 넓어진 정도를 넘어서 프레임 자체를 바꿔놓았다고 본다. <스위트홈>과 <킹덤>이 세계적으로 사랑받으면서, ‘한국이 크리처물도 잘 만드는구나’, ‘장르물도 잘하는구나’라는 생각을 사람들이 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콘텐츠를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이 달라졌다.

-플랫폼과 콘텐츠가 다양해지면서 제작사의 성격 또한 변하고 있다. 드라마만 만들던 프로덕션, 영화만 만들던 픽처스의 시대는 가고 종합 제작사, 나아가 스튜디오를 지향하는 곳들이 생겨나는 분위기다.

=스튜디오라는 개념을 쓰려면 투자와 플랫폼까지 아울러야 하지만 아직까지 많은 회사들이 그렇게까지 가고 있진 않다. 최근엔 대기업들이 콘텐츠 회사의 주주가 되면서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하나의 큰 흐름이다. 우리도 궁극적으로 스튜디오를 지향하냐고 묻는다면, 그렇다. 신세계 계열사 마인드마크가 모회사이고, 당장 구체적 그림을 그리는 것은 아니지만 미래엔 스튜디오로서의 역량을 갖출 수 있다고 본다. 또 많은 제작사들이 영화와 드라마 구분 없이 제작하고 있는데, 우리는 당장 영화 제작 계획은 없다. 단지 사람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드라마와 영화 인력의 교류는 자연스러워졌다. 우리도 영화감독들과 준비하는 프로젝트들이 있고. 사람들이 장벽 없이 섞이면서 다양한 시스템, 결과물이 나오고 있다. 프레임 자체가 바뀌고 있다.

<인간수업>

-김종학프로덕션, 사과나무픽쳐스, 뿌리깊은나무들 등 드라마 제작사에 오래 몸담으면서 굵직굵직한 드라마들을 여러 편 제작했다. 그러다 2016년 스튜디오 329를 새롭게 차렸는데 그 배경은 뭔가.

=사실 드라마 비즈니스 구조에 한계를 느껴 드라마를 그만하고 싶었다. 제작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제작사가 반 이상의 리스크를 진 채로 드라마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되고, 수익은 제대로 분배되고 있는지, 저작권은 확보할 수는 있는지, 해결되는 문제는 없이 고민만 늘어나 지쳐가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소니픽처스쪽 사람을 만났는데, 외국인인데도 한국 콘텐츠를 정말 많이 알고 있어 놀랐다. 미국에 한국 콘텐츠가 이렇게 많이 알려졌나 싶었고, 넷플릭스나 아마존이 생긴 시점이라 어쩌면 새로운 길이 열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회사를 차리고 <탑매니지먼트>를 유튜브 프리미엄 콘텐츠로 제작했다. 작품 외적인 부분에서 피곤하게 신경 쓸 일이 없었다. 오로지 작품에만 집중할 수 있는 구조라 좋았다.

-숫자 ‘329’에는 어떤 뜻이 담겨 있나.

=<어린왕자>에 나오는 소행성 329에서 따왔다. 때마다 등을 켜는 가로등지기가 사는 별이다. 의무적으로 등불을 켜는 가로등지기처럼, 어쩌다 불을 켰다 끄는 게 아니라 꾸준히 불을 밝히는 회사가 되고 싶다.

-그 이름이 스튜디오 329의 지향점을 말해주는 것 같다.

=얼마 전 <인간수업>을 연출한 김진민 감독과 그런 얘기를 나눴다. 우리가 앞으로 할 일은 신인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어떨 땐 신인작가에게 기회를 줄 수도, 어떨 땐 촬영감독을 데뷔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재능 있는 신인들에게 기회를 주자. 두려워하지 말자. 적어도 우리가 그 정도 보는 눈은 있으니까. 항상 성공할 수는 없겠지만, 옛날에 하던 방식 그대로 무언가를 하고 싶진 않다.

-여성 드라마 제작자, 여성 제작사 대표는 흔치 않다. 그 길을 걸어오는 과정은 어땠나.

=이야기를 만들고, 이야기를 잘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을 모으는 과정이 정말 좋았다. 젊을 땐 일 자체가 재밌어서 힘들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아이를 키우게 되면서 도저히 이렇게는 안되겠다 싶더라. 아직 근로환경과 관련해 개선돼야 할 점이 많지만 그럼에도 변하고 있어 다행이라 생각한다. 어렸을 땐 왜 그렇게 전투적이었는지 모르겠다. (웃음)

-차기작으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글리치>를 제작 중이다.

=진한새 작가의 작품이고, <인간수업>과는 전혀 다른 창의성을 볼 수 있을 거다.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여자가 주인공이고, 어느 날 정체불명의 불빛과 함께 실종된 남자 친구의 행방을 쫓는 이야기다. 자신의 기억을 의심하던 여자가 UFO 커뮤니티 회원들의 도움을 받아 남자 친구의 행방을 쫓고 미스터리한 현상에 다가가는 이야기다. 올봄에 촬영에 들어간다. 이외에도 <크라임 퍼즐> <빌린 몸> <웨딩 임파서블> 등을 시리즈물로 제작할 계획이다.

요즘 주목하는 작가, 감독, 배우

“배우는 <인간수업>의 남윤수. <인간수업>을 하면서 웃는 게 예쁘고 태도가 좋은 배우라 생각했다. 그 뒤로도 차분하고 성실하게 가고 있는 것 같다. <스위트홈>의 박규영 배우도 연기를 참 잘한다고 느꼈다. 연출은 드라마 <빈센조>의 김희원 감독. 예전에 <개와 늑대의 시간> 때 조연출이었던 친구인데, 감도 있고 판단력도 좋은 감독이다. 드라마판에 여자감독이 많지 않아서 더 응원하게 되는 마음도 있다. 작가는 진한새 작가? (웃음) 함께 작업해서가 아니라, 생각하는 것도 남다르고 독특한 지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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