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더 파더' 플로리안 젤러 감독 - 앤서니 홉킨스가 눈물 흘릴 때 현장의 모두가 울었다
2021-04-08
글 : 남선우
사진제공 판씨네마

<더 파더>는 <미나리> <노매드랜드>와 함께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 6개 부문 후보(작품상,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각색상, 편집상, 미술상)에 이름을 올렸다. 앤서니 홉킨스가 앤서니라는 이름의 노인으로 등장하는 이 영화는 관객이 그의 시점에서, 또 그의 딸 앤(올리비아 콜맨)의 시점에서 미로같이 얽힌 시공간을 통과하게 만든다. 부녀는 흐르는 시간과 바래는 기억 사이로 자꾸만 서로를 놓친다. 혼란스러운 상실의 시간을 오롯한 영화적 체험으로 구현한 <더 파더>의 얼굴들을 돌아본 이지현 영화평론가의 리뷰와 더불어 플로리안 젤러 감독이 자신이 8년 전 만든 동명의 연극을 영화화한 경험에 대해 이야기한 인터뷰를 전한다.

-<더 파더>는 당신이 쓴 프랑스어 희곡을 영어영화로 다시 만든 작품이다. 왜 <더 파더>를 다시 만들었나.

=8년 전에 원작을 집필한 <더 파더>는 우리가 가진 두려움과 사랑이 시험받는 순간에 대한 내용이며 필멸성에 관한 영화다. 부모를 잃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자 치매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는 할머니 손에서 자랐는데 내게 할머니는 어머니와 다름없었다. 할머니는 내가 15살 때부터 치매를 겪으셨기 때문에 그 증상에 대해, 사랑하는 사람이 이런 일을 겪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 알고 있었다. 사랑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끼게 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불행히도 누구나 이런 일을 겪을 수 있다. 그래서 단순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기보다 이러한 감정을 나누기 위해 연극을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관객이 연극에 엄청난 반응을 보여줘서 굉장히 놀랐고 감격했다. 그들은 매 공연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공연이 끝나고 나를 기다렸다. 그때부터 무언가가 새로 시작되었음을 깨달았다. 일종의 위로를 느꼈다. 우리가 모두 연결되어 있음을 느꼈고, 우리가 우리 자신보다 거대한 것의 일부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 연극을 영화로 만들고 싶어졌다. 영화가 가진 고유한 언어로 이 경험을 더욱더 강력하고 몰입 가능한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직감했다.

-<더 파더>는 관객에게 일종의 체험을 제공하는 영화다. 다만 수수께끼나 미로와 같은 형태로 그 체험을 구체화했다. 왜 이러한 방식을 택했나.

=그동안 치매를 다룬 다른 많은 영화들처럼 이야기를 외부의 시선에서 풀어내고 싶지는 않았다. 관객이 이 이야기에 관찰자로 연결된 느낌마저 잃어버리길 원했다. 대신 관객을 독특한 위치에 놓아보고 싶었다. 모든 것에 질문을 던져야 하는 일종의 미궁 같은 곳에 말이다. 보다 불편한 방법으로, 더 심오하게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관객에게 방향감각을 상실한 듯한 느낌을 주길 원했다. 시나리오를 집필할 때 앤서니의 아파트 레이아웃을 그렸던 기억이 난다. 세트장이 마치 미궁처럼 느껴지게 만들고 싶었다. 이야기가 나아갈수록 배경에 크고 작은 변화들이 일어나고 관객은 그 장소가 앤서니의 아파트가 맞는지 의심하게 된다. 이로써 관객이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진짜가 아닌지 의심하는 경험을 체험하길 원했다.

-배우 앤서니 홉킨스가 주인공을 연기할 것을 염두에 두고 영화로의 각색 작업을 했다고.

=나는 그가 현존하는 가장 훌륭한 배우라고 생각한다. 내게 그는 전설이다. 앤서니가 이 배역에서 강렬함 그 이상의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우리는 그가 연기한 수많은 배역을 알고 있지 않나. 언제나 상황을 통제하던 이 남자가 통제권을 잃어버리는 상황이야말로 관객에게 더 고통스럽고 불편하게 느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앤서니에게 그에게 명성을 안겨다준 여러 배역들처럼 연기하지 않도록 부탁했다. 그가 가진 새로운 감정의 영역을 탐구해보고 싶었다. 한층 취약하고 더 연약한 부분 말이다. 그에게서 더욱 진실되고 영향력 있는 감정을 찾고자 그저 카메라 앞에 서 있으라고만 했다. 그가 자신의 개인적이고 내밀한 감정, 두려움, 필멸에 대한 생각들을 떠올릴 수 있도록 그의 곁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그렇게 <더 파더>의 주인공은 앤서니 홉킨스와 이름과 생일이 같은 사람이 되었다. 배우는 이러한 설정에 어떻게 반응했나.

=촬영 중 앤서니가 염려한 유일한 부분이 바로 메인 캐릭터의 이름이 앤서니라는 점과 자신의 진짜 생일을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처음 만난 날에도 이 부분을 질문했고, 촬영 바로 전날에도 이게 좋은 생각인지 확신할 수 있냐고 물었다. 나는 확신한다고 대답했다. 이건 무엇이 진짜인지, 진짜가 아닌지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무엇이 현실이고 픽션이지에 대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많은 것을 담고 있다. 다시 말해 나는 가능한 한 가장 진실되고 싶었다. 83살인 앤서니가 영화 속 문제에 대해 개인적이고도 진실한 감정으로 탐구해주길 바랐다. 아주 강인하고 정정한 앤서니지만 한편으로 영화 속 문제에 대해 그 스스로도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 부분을 그와 함께 연구해보고 싶었다.

-영화의 실마리가 주어지는 대목이자 감정적으로 큰 울림을 선사하는 라스트 시퀀스를 보고 앤서니 홉킨스가 얼마나 이 작품에 깊게 몰입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극본도 그 대목에서만큼은 앤서니의 감정을 표출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다. 모든 것을 선명하게 드러내버리며 폭발시키는 이 장면을 찍을 때 모두가 긴장했을 것 같다.

=맞다. 그 장면은 영화의 진정한 목적지와 같았다. 그 장면이 최대치로 강렬하지 않다면 영화 전체가 무의미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앤서니의 자아가 분열되면서 그가 엄마를 찾으며 우는 어린아이로 뒤바뀌는 일이 쉽게 이뤄지지만은 않았다. 몇번의 테이크를 갔지만 우리가 원하던 그림이 아니었다. 우리는 다시 한번 더 해보기로 했고, 갑자기 기적처럼 어떤 일이 일어났다. 앤서니가 어릴 때 그의 어머니가 들려줬던 자장가를 떠올렸고, 그렇게 50, 60년 또는 70년 정도 과거의 자신과 연결되어 연기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모습은 어린아이를 연기하는 앤서니 홉킨스가 아니라 우리 앞에서 울고 있는 어린 앤서니 그 자체였다. 그 순간이 우리가 원했던 모습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세트에 있던 모두가 울었다. 나는 울고 있는 앤서니에게 달려갔고, 그가 나를 안아주었다. 이상하게도 슬프지는 않았다. 우리 모두가 원하던 지점에 도달했다는 것을 알았기에 기뻤다.

-<더 파더>는 변해가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딸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다만 관객은 어떤 신에 등장하는 딸이 진짜인지, 어떤 대사가 진짜 딸이 한 말일지 내내 헷갈릴 수밖에 없다. 딸 앤을 연기한 배우 올리비아 콜맨에게는 어떤 연기를 주문했나.

=올리비아는 아주 감정이 풍부하고 지적이다. 그에게는 본능적인 면도 있어서 리허설을 많이 할 필요가 없었다. 올리비아는 앤서니와 함께 일한다는 사실에 너무 기뻐했다. 올리비아에겐 앤서니의 딸 역할을 한다는 게 아주 중요한 부분이었다. 앤서니가 영화에서처럼 자신을 잃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 올리비아로 하여금 진정성 있는 감정을 불러일으킨 것 같다. 그래서 캐릭터가 느끼는 고통과 좌절을 느끼기 쉬웠을 것 같기도 하다. 그는 본능적으로 이 캐릭터의 모든 점을 이해하고 있었다.

사진제공 판씨네마

-앤서니와 앤에게 창밖을 내려다보는 신을 두세 차례 부여된 것도 인상적이었다. 앤서니는 길에서 장난치는 어린아이를, 앤은 다정해 보이는 아래층 커플을 응시한다. 이들이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영화 전체가 아파트 내부에서 이루어지길 원했는데 그곳이 계속해서 변화하는, 일종의 정신적인 장소(mental space)처럼 느껴지길 바랐다. 아파트 밖의 세상은 그들 없이 돌아가는 세상이자 그들이 바라만 보는 세상 혹은 기억으로만 존재한다. 앤서니가 바라보는 소년은 아이였던 그 자신일 수도 있고, 그가 없어도 세상은 흘러간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올리비아가 바라보는 커플의 모습은 그녀가 갖지 못한 삶이다. 가족 중 누군가가 치매를 겪으면 나머지 사람들은 생활에 여유가 없어진다. 모든 삶이 그 문제에 매달리게 돼 고통스럽다. 그런 감정을 다루기 위한 장면들이었다.

-당신은 20대엔 소설을 썼고, 이후 연극 작업을 해오다 첫 영화로 <더 파더>를 만들었다. 당신에게 소설, 연극, 영화 작업의 연결은 어떤 의미인가.

=소설을 먼저 쓰기 시작했고 연극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이후로 연극이 나의 모든 것이 되었다. 배우들과 함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경험, 이를 관객과 나누는 것이 좋았다. 나는 연극을 너무나 사랑하고 그것이 가장 아름다운 예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이후엔 그냥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더 파더>를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 이 또한 연극처럼 의미 있는 이야기를 배우들과 함께 나누는 작업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한다.

-<더 마더>(The Mother), <더 선>(The Son)이라는 연극도 만들었고 이 또한 <더 파더>처럼 영화화하려는 계획이 있다고 들었다.

=<더 파더>는 <더 마더> <더 선>과 함께 집필한 삼부작 중 하나다. 그렇다고 해서 동일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각각 독립적인 세개의 연극인데 내러티브와 테마 면에서 연결고리가 존재한다. 그리고 내게 다른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더 선>을 영화화하고 싶다. 내가 정말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이고, 지금 이야기해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더 파더>가 한국에서 개봉하게 되어 무척 기쁘고, 비록 우리가 멀리 떨어져 살고 있지만 같은 감정을 느끼길 바란다.

사진제공 판씨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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