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한국 단편영화 20년, 미쟝센단편영화제의 20년을 돌아보다 ①
2021-06-22
글 : 임수연
Since 2002, 한국영화의 거대한 인큐베이터가 되어

지난 20여년간 단편영화제는 한국 영화산업의 발전과 궤를 같이했다. 특히 미쟝센단편영화제가 재능 있는 감독과 신인배우들의 등용문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을 부정할 이는 없을 것이다. 올해 20회를 맞은 미쟝센단편영화제는 경쟁부문 공모를 하지 않는 대신 한국 단편영화 20년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상영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그동안 미쟝센단편영화제 본선에 오른 경쟁부문 상영작 1171편 중 역대 심사위원 감독 25인이 최종 선정한 20편의 영화를 상영하는 ‘Inside The 20’, 지금까지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상영된 적은 없지만 국내외 영화제를 통해 작품의 우수성을 충분히 인정받았다고 평가되는 20편의 영화를 상영하는 ‘Outside The 20’, 그리고 봉준호 감독의 단편을 모아 상영하는 특별 섹션 ‘봉준호 감독 단편 특별전’이다.

이번에 상영되는 44편의 작품 중 눈여겨볼 만한 10편을 골라 소개한다. 그리고 미쟝센단편영화제가 발굴했던 배우와 감독의 면면을 재확인할 수 있는 작품도 모았다. 제20회 미쟝센단편영화제는 6월 24일부터 30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와 서울극장에서 개최된다.

*감독/출연/러닝타임/제작연도/섹션

<남매의 집>

조성희/박세종, 이다인, 백승익, 구교환, 조성환/43분/2009년/Inside The 20

조성희 감독이 신작을 발표할 때마다 사람들은 <남매의 집>에서 시작된 그의 궤적을 잇는 일종의 공식을 도출하려고 애썼다. 그만큼 <남매의 집>은 어떤 계보나 좌표를 가늠하기 어려운 신묘한 SF 디스토피아물이었다. 반지하 집에 갇혀 사는 오누이를 미지의 괴한들이 위협한다는 설정 하나로, 고작 작은 단칸방을 무대 삼아 40분 넘는 러닝타임 내내 관객의 공포와 불쾌함을 능숙히 주무른다.

<짐승의 끝> <늑대소년>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 <승리호>로 이어지는 조성희 감독의 작품 세계에서 발견된 ‘미숙한 소년’이라는 공통 인자는 모호하고 무궁한 해석을 낳았던 <남매의 집>을 다시 읽게끔 만든다. 과연 <남매의 집>에서 시작된 소년 철수와 철수가 지키려 하는 순이는 조성희 감독의 세계에서 어떻게 계승되고 진화해왔을까. 보는 이를 가장 불쾌하게 만들었던 괴한의 일원은 구교환이 연기했다.

<숲>

엄태화/엄태구, 정영기, 류혜영/32분/2012년/Inside The 20

내가 왠지 초라한 것만 같은 자격지심은 어느 순간 상대를 향한 적개심을 쉽게 발화시키곤 한다. 원인 제공은 다른 사람이 먼저 했다며 자신의 공격성을 정당화한다. 하지만 지독한 콤플렉스의 말로는 결국 지독한 자기혐오에 닿기 마련이다. <잉투기> <가려진 시간>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엄태화 감독은 이 심리를 너무 잘 이해하고 설계하는 창작자다. (“진짜가 담겨야 한다”라며 목매는 위험천만한 상황을 페이크 다큐멘터리로 찍어보자는, 치기 어린 감독 지망생의 마음도 잘 안다.)

숲과 과수원, 장례식장까지 꿈과 현실을 환상적으로 오가며 인간의 꽤나 보편적인 심리를 과감한 필치로 그려낸 엄태화 감독의 재능이 반짝인다. 무엇보다 편집의 템포와 연출의 온도를 정확히 파악하는 감각이 돋보였기에 앞으로 상업영화 영역에서 보여줄 역량이 기대되는 단편이었다. 이후 <잉투기>에서도 호흡을 맞춘 엄태구와 류혜영, 그리고 정영기 역시 감정의 미묘한 자장을 각자 자리에서 탁월하게 표현해냈다.

<재능있는 소년 이준섭>

신재인/송남희, 한가영, 전용미, 이효준/22분/2002년/Inside The 20

딱히 친구들의 호감을 사지도 못하고 별다른 능력도 없는 이준섭은 자신이 타인에게 관심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무거나 먹어치우는 남다른 비위에 있음을 알고부터 모든 것을 먹어치운다. 지우개, 샤프심, 분필, 비닐봉지…. 그런 기행을 뽐내며 얻는 주목으로부터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아가던 이준섭에게 그가 짝사랑해온 여자아이가 충격적인 제안을 해온다. “너 나 좋아하지? 너…. 내 똥도 먹을 수 있어?” 제1회 미쟝센단편영화제 대상 수상자였던 신재인 감독은 충격적인 상상을 담은 단편만으로 독립영화계의 가장 문제적 감독으로 떠올랐다.

대학교 1학년 때 만난 남자 친구와 파격적인 애정행각을 벌이다 교내에서 비난을 받았다거나, 서울대학교 화학과로 입학했지만 철학과로 재입학하고 사법고시와 행정고시 1차는 몇달 만에 붙었지만 2차 시험은 영화에 빠져서 보러 가지 않았다거나, 충무로에서 사이코라는 소문이 돈다는 일화도 한몫했다. 영화를 찍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며 미친 듯이 트리트먼트를 쏟아내던 신재인 감독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의 진실이 전진한다> 역시 이번 특별전에서 만날 수 있다. ‘진실’과 물의 물성을 엮는 혼란스럽고 모호한 이미지를 병원과 법정, 교회로 공간을 바꾸어가며 몽타주하다 그 내막이 ‘물고문’에 있었다는 반전을 보여준다.

<나만 없는 집>

김현정/김민서, 박지후, 이미정, 천정락, 임호준/32분/2017년/Inside The 20

우리가 왜 이리도 매사에 억울해하며 사는지 그 감정의 원천을 추적하면, 태초에 형제·자매·남매와의 비교가 있었다. 특히 동생은 늘 서럽다. 엄마가 시키는 대로 했는데 왜 언니는 자기랑 같은 옷을 입었냐며 쪽팔려하고, 같은 길로 등교하는 것도 싫어하고, 엄마는 언니 하고 싶은 것은 다 시켜주면서 나한테만 깐깐하다. 개인적인 기억을 재료로 삼은 소박한 이야기로 기성 감독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나만 없는 집>은 제16회 미쟝센단편영화제 대상을 포함해 3관왕을 차지했다.

<잘돼가? 무엇이든>

이경미/최희진, 서영주/36분/2004년/Inside The 20

<미쓰 홍당무> <비밀은 없다> <보건교사 안은영>의 이상하고 괴팍하지만 왠지 연민이 가는 여자들 이전에 해운회사 직원 지영과 희진이 있었다. 직장 생활을 하고 있기에 이후 이경미 월드의 여성들보다는 훨씬 사회화가 되어 있지만, 환경이 만들어준 비위와 인내심 속에 도사리는 공격성을 포착한 감독의 눈은 역시 남다르다. 직장 상사가 너무 싫고, 부조리하게 야근 수당을 받는 것만 같은 동료 직원도 너무 싫지만 그럼에도 같이 일하고 밥 먹고 커피를 마시는 이상한 생태계는 오늘도 굴러가고 있다.

*본 기사는 <한국 단편영화 20년, 미쟝센단편영화제의 20년을 돌아보다 ②> 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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