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단편영화가 발굴한 감독들' 될성부른 감독들의 시작
2021-06-22
글 : 임수연
이상근·신동석·이수진·김종관·허정·김초희·윤성호·손원평·민용근·정병길·부지영
<감상과 이해, 청산별곡>

될성부른 감독은 단편에서부터 반짝반짝 빛난다. 20년간의 한국 단편영화 궤적을 총망라한 이번 미쟝센단편영화제에는 감독의 현재와 과거를 비교하거나 혹은 고유의 인장을 재확인할 수 있는 재기 넘치는 작품들이 상영된다. <엑시트>의 이상근 감독은 한때 웃음기 없는 단편을 만들었다.

<감상과 이해, 청산별곡>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선생님과 계속 공격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학생의 대화를 담다가 막판에 서늘한 반전을 제시하는 사회 드라마다. <살아남은 아이>의 신동석 감독이 연출했던 단편 역시 장편과 소재가 사뭇 다르다.

<가희와 BH>의 BH는 고시 공부에 집중할 수 없다며 최근 헤어진 여자 친구를 찾아서 몇년 전에 줬던 물건을 돌려달라고 다짜고짜 신경질을 내고 집 안 곳곳을 헤집는다. <한공주> <우상>의 이수진 감독은 ‘웃픈’ 블랙코미디를 만든 적이 있다.

<적의 사과>는 노동자(간호조무사였음이 밝혀진다)와 전투의경이 대치하다가 허무한 이유로 다리 한쪽을 잘라내야 할지도 모르는 극한의 상황에 내몰린다. 김종관 감독은 짧은 단편에서부터 감독의 아이덴티티가 형형히 빛난다.

배우 정유미의 탄생을 목격할 수 있는 <폴라로이드 작동법>, 6시간 후 낙태 수술을 받기 위해 분투하는 청소년 커플을 카메라가 좇는 <사랑하는 소녀> 두편이 이번 특별전에서 상영된다. <숨바꼭질> <장산범>의 허정 감독 역시 호러 장르에서 보여준 그의 장기가 단편에서도 확인되는 경우다.

<저주의 기간>은 2년 전에 잃어버린 개를 매개로 아이들에게 벌어지는 섬뜩한 미스터리를 다루고 있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김초희 감독의 <산나물 처녀>는 감독만의 독특한 감성과 다양한 캐릭터에 도전해온 배우 윤여정의 행보를 확인할 수 있는 귀여운 단편이다.

윤성호 감독은 <은하해방전선> 이전에도 그다운 단편을 찍었다. <이렇게는 계속 할 수 없어요>는 원래 찍으려던 영화를 찍지 못한 대신 예술과 연애에 대한 여러 인용들을 자기 기준으로 해석하는 구성을 취했는데, 이후 <은하해방전선>에도 이 단편의 어느 장면이 재인용된다.

<인간적으로 정이 안 가는 인간>

<침입자>의 손원평 감독이 만든 <인간적으로 정이 안 가는 인간>은 제목 그대로의 남자 캐릭터를 양익준이 연기한다. 순수하게 자신의 노동을 즐기는 그를 줄곧 무시하는 텔레마케터 여성은 살아남으려면 적당히 속물처럼 굴어야 한다고 믿는데, 자본주의사회의 ‘인간성’에 대해 통찰력 있는 질문을 던진다.

<혜화, 동> <소울메이트>의 민용근 감독의 <도둑소년>은 엄마의 시신과 6개월 동안 함께 살았던 일본 청소년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눈에 커다란 점이 있고 햇반, 스팸, 동전 같은 것을 무표정으로 훔치는 소년의 얼굴을 집요하게 클로즈업하며 그와 가까워지기를 갈망한다.

<눈물>

<우린 액션배우다> <악녀>의 정병길 감독이 연출한 <락큰롤에 있어 중요한 것 세가지>는 일본의 인디밴드 기타울프의 한국 내한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건방지다는 사실 하나로 베이스가 됐다느니 경력이 10개월이라느니 하는 말을 듣다 보면 페이크 다큐멘터리인가 싶지만, 실존하는 밴드이다. ‘가오’가 중요하다는 로큰롤 정신 그 자체로 만든 에너제틱한 단편이다.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카트>의 부지영 감독은 단편 <눈물>에서 이유 없이 눈물을 흘려 주변에서 이상하게 바라보는 소녀와 사내를 만나게 한다. 소녀의 눈물과 공간의 침잠을 환상적으로 연계해 연출한 신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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