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기사는 <한국 단편영화 20년, 미쟝센단편영화제의 20년을 돌아보다 ①> 에서 이어집니다.
지난 20여년간 단편영화제는 한국 영화산업의 발전과 궤를 같이했다. 특히 미쟝센단편영화제가 재능 있는 감독과 신인배우들의 등용문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을 부정할 이는 없을 것이다. 올해 20회를 맞은 미쟝센단편영화제는 경쟁부문 공모를 하지 않는 대신 한국 단편영화 20년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상영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그동안 미쟝센단편영화제 본선에 오른 경쟁부문 상영작 1171편 중 역대 심사위원 감독 25인이 최종 선정한 20편의 영화를 상영하는 ‘Inside The 20’, 지금까지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상영된 적은 없지만 국내외 영화제를 통해 작품의 우수성을 충분히 인정받았다고 평가되는 20편의 영화를 상영하는 ‘Outside The 20’, 그리고 봉준호 감독의 단편을 모아 상영하는 특별 섹션 ‘봉준호 감독 단편 특별전’이다.
이번에 상영되는 44편의 작품 중 눈여겨볼 만한 10편을 골라 소개한다. 그리고 미쟝센단편영화제가 발굴했던 배우와 감독의 면면을 재확인할 수 있는 작품도 모았다. 제20회 미쟝센단편영화제는 6월 24일부터 30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와 서울극장에서 개최된다.
*감독/출연/러닝타임/제작연도/섹션
<십분간 휴식>
이성태/이창훈, 김원식, 박기덕, 이성태/27분/2006년/Inside The 20
해병대. 분단국가라는 특수성이 만든 뒤틀린 남성성이 가장 극단적으로 발현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이 시스템의 부조리를 다룬 <십분간 휴식>은 서해 최북단 백령도에서 탈영병 수색에 나선 말년 병장과 일병에게 ‘십분간 휴식’ 이후 벌어지는 참극을 다룬다. 최근 다수 드라마에서 활약했던 이창훈을 ‘발견’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군대 내 가혹행위와 성희롱 등 뿌리 깊은 문제를 리얼하게 옮겨낸 이성태 감독은 실제 해병대 출신이다.
<안다고 말하지 마라>
송혜진/김영선, 김도형/30분/2002년/Outside The 20
경상북도 안동에서 올라온 보수적인 남학생. 왠지 설정에서부터 저 인물과 친해질 수 없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TV에 나오는 가수를 보며 세상 말세라는 듯 혀를 차는 애늙은이 모습에 예감은 확신으로 바뀌어간다. 수학 과외를 받기 위해 잠시 서울로 올라온 이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싶다며 사촌 언니 장주도 처음엔 시혜적인 태도로 접근한다. 하지만 송혜진 감독은 사람의 다면성을 탁월히 포착하는 동시에 인간을 이해한다며 자만하지 않는 사람이다. 소재의 야심보다 카메라의 신중한 태도를 믿는 신인감독의 장편영화를 이후에 만날 수 없었다는 점이 못내 아쉽다.
<완벽한 도미요리>
나홍진/배용근/9분/2005년/Inside The 20
타고난 재능이 없더라도 수학적, 과학적으로 완벽히 계량된 레시피를 개발해 자기 눈알을 빼서라도 ‘노오력’하면 ‘완벽한’ 도미요리를 만들 수 있을까. 많은 사람이 도미요리를 예술 혹은 무언가의 메타포로 생각할 것이다. 완벽을 위해 죽음을 불사하는 태도로 접근하는 이는 완벽한 아티스트일 수 있을까, 집단 창작으로 만들어지는 영화 매체에도 같은 답을 내릴 수 있을까. 짧은 단편임에도 보고 나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끝나지 않는 질문을 낳는다.
<몸 값>
이충현/박형수, 이주영/14분/2015년/Inside The 20
원조교제를 위해 가평에서 만난 중년 남자와 여고생. 원래 100만원이었던 여고생의 몸값은 처녀막이 없어서 17만원으로, 아무래도 나이를 속인 것 같다는 이유로 7만원으로 계속 떨어진다. 14분 동안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롱테이크 촬영과 비로소 제목의 의미가 드러나는 순간의 반전이 큰 화제를 모았다. 이충현 감독은 이 단편 하나로 충무로의 유망주로 떠올랐고, 지난해 첫 장편영화 <콜>이 개봉됐다.
<능력소녀>
김수영/김혜준, 이유미, 김시운/24분/2017년/Outside The 20
질풍노도의 시기에 집 안팎으로 강도 높은 압박을 받는 한국의 여고생들은 시한폭탄 같은 존재다. <여고괴담>을 시작으로 여학생 생태계에 뿌리를 둔 호러영화들이 지금까지 만들어지는 이유일 것이다. 반에서 아무런 존재감이 없던 맹주리는 하루아침에 이상한 능력을 얻고,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 공미나는 눈꺼풀이 감기지 않는다. 두 소녀가 만나면 어떤 일을 해낼 수 있을까? 김수영 감독이 만든 그로테스크한 K-여고생 생태계는 장편 프로젝트로 확장 준비 중이다.
<봉준호 감독 단편 특별전>
이번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는 봉준호 감독의 초기작부터 디지털 시네마의 새로운 시도까지, 네편의 단편을 만날 수 있다. 화이트칼라 직장인의 계급의식과 사회적 무관심을 다룬 <백색인>, 개에 대한 기억을 담은 짧은 단편 <프레임속의 기억들>, 한국 단편영화계의 기념비적인 걸작으로 남은 <지리멸렬>, 제5회 전주국제영화제 디지털 삼인삼색으로 제작된, CCTV 형식을 차용한 <인플루엔자> 등이 상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