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모가디슈' 배우 허준호, 위로 20년까지 연기할 수 있는 배우가 됐구나 싶다
2021-08-12
글 : 배동미
사진제공 롯데엔터테인먼트

소말리아 내 북한 대사관을 이끄는 림용수 대사는 대단한 외교력을 지녔다. 대한민국의 한신성 대사(김윤석)가 애면글면하면서 소말리아 대통령과의 만남을 준비할 때, 림용수는 대통령의 일정을 바꿔 한국을 따돌릴 만큼 소말리아 내에서 외교 수완을 발휘한다. 그 때문에 소말리아 내전으로 가장 변화가 큰 인물이 림용수라는 사실은 특기할 만하다. 그를 연기하는 배우 허준호는 우아한 협상가에서 목숨을 구걸해야 하는 자연인의 낙차를 매끈하게 표현해냈다. 코로나19로 인해 화상으로 만난 허준호 배우에게 <모가디슈>를 보고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다.

-영화 속 상황이 현실이라고 상상하며 연기에 임하는 걸로 알려져 있는데, 림용수 대사가 처한 현실은 어떠하다고 상상하면서 접근했나.

=초등학교 때 배웠던 5호담당제를 떠올렸다. 지금도 그럴 수 있겠지만 북은 서로 감시하는 사회였다. 림용수 대사는 북한에서 생활하면서 5호담당제를 경험했고 20년 전 해외에 나와서부터 북한 대사관 안에서 서로를 예민하게 감시하는 생활을 했을 거라고 봤다. 자세히 보면, 내가 아내 캐릭터에게 시선을 안 주는 방식으로 연기한다. 태준기 참사관(구교환)과의 관계에서도 출발점은 결국 북한이다. 태 참사관의 한마디 한마디를 담백하게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능구렁이처럼 ‘저놈이 왜 저런 말을 했을까’ 생각하고 한 템포 늦게 답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본을 읽고 처절함을 느꼈다고.

=내게는 간접경험이 있다. 시위가 많던 시대에 20대를 보냈다. 광화문에서 장위동행 버스를 타려고 하다가 백골단에게 몇대를 맞은 적 있고, 서울예대 재학생인데 명동을 가다가 동국대생으로 오해받아서 붙잡힌 적도 있다(동국대는 서울 중구 명동에 있다. -편집자) 몽둥이와 최루탄만 경험했지만, 당시 상황이 굉장히 공포스러웠다. 아, 최루탄 냄새가 엄청났다. 동국대에서 터진 최루탄 냄새가 서울예대까지 넘어올 정도였으니. 그런데 소말리아 내전에 대해 취재를 하는 과정에서 “바리케이드가 시체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건 내가 상상 못할 수준의 공포다.

-영화 전반에 등장하는 림용수 대사는 자국의 이익만 챙기는 날카로운 인물처럼 보인다. 영화 중후반에는 림용수의 인간적인 면모가 드러나는데 그 분기점을 어디라고 봤나.

=태 참사관이 공을 들인 현지인이 북한 대사관에 들어와서 총 쏘는 장면이 전환점이다. 한국 대사관과 달리 북한 사람들은 소말리아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안심하고 있었다. 북한 대사관에서는 대통령의 시간까지도 조절할 수 있는 외교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걱정하는 수준이었지 저들이 우리까지 치진 않으리라고 생각했던 게 완전히 뒤집히는 순간이었다.

-이를 기점으로 캐릭터에 어떤 차이를 주려고 했나.

=초반부에 대한민국 대사관이 감히 건드릴 수도 없는 벽을 만들어주는 게 내 숙제였다. ‘한신성이 아니라 한신성 아버지가 와도 나한테는 안된다’라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웃음) 안 무너질 것 같은 강한 모습을 보여줬던 림용수 대사가 가지 말아야 할 남한 대사관에 가서 서슴없이 살려달라고 얘기하고, 북한 대사관 사람들을 살려서 이곳을 빠져나가야 하는 인물로 바뀐다. 그러면서도 자존심을 세우기도 하고. 아, 어려웠다. (웃음)

-림용수는 당뇨를 갖고 있다. 체격이 좋고 평소 건강해 보여서 관객이 믿게끔 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저탄고지(저탄수화물과 고지방) 식단으로 먹고 매일 유산소운동을 해서 볼살을 많이 뺐다. 시간만 나면 숙소 수영장의 너른 공간에서 매일 줄넘기를 했다. 얼굴살 털어내야 하니까. (웃음) 분장의 도움도 받았다. 글리세린을 발라서 땀을 표현했고 섀도를 많이 줘서 핼쑥해 보이게 했다. 당뇨를 앓고 있는 분들이 몸 전체적으로는 말라가고 배만 나온다. 살이 찌는 당뇨는 그나마 괜찮은데 말라가면서 배가 나오는 위험한 당뇨라더라. 그래서 살은 빼고 의상 안에 특수제작한 배를 집어넣었다. 류승완 감독이 내게 몸이 좋아 보인다고 해서 내가 연구한 결과다.

-한신성 대사에게 인슐린을 받는 도움을 받고 나서 림용수 대사는 “(당뇨 환자라는 사실을 알린 손자가) 쓸데없는 말을 했다”라고 덧붙인다. 인슐린이 없으면 생명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자존심을 굽히지 않는다.

=그 대사 때문에 캐릭터를 더 연구했던 것 같다. ‘이 사람이 자존심이 굉장히 세고, 국가관이 투철한 사람이구나’ 하고 설정하는 계기가 바로 그 대사다. 림용수는 좌우를 떠나 양질의 애국자다. 그는 이 세상에 북한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이다. 이후 서양 문화를 받아들였지만 한신성 대사와 독대하는 자리에서도 책 잡히지 않도록 행동하고, 곧은 태도가 몸에 밴 사람이다. 이런 사소한 대사에서 캐릭터가 살아나는데, 류 감독이 그런 대사를 적재적소에 잘 써놓았던 것 같다.

-언젠가부터 허준호에게 존재감이란 수식어가 많이 붙는다. 분량이 적든 많든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분위기를 잡는다. 영화 초반, 대통령궁 신에서 대사 없이 걷는 것만으로도 무드를 만들어냈는데, 감독들이 허준호를 일종의 미장센처럼 쓰는 것 같다.

=일단 감사하다. (웃음) 요즘 신앙 생활을 하는데 하느님에게 감사드린다. 나는 나를 알잖나.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하느님이 내가 알 수 없는 힘을 만들어주신 것 같아서 감사하다. 개인적으로 최대한 노력한다. 어떤 팀을 만나든 그 팀에 누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

-손자가 있는 연배의 캐릭터를 연기했다. 배우로서 나이듦에 대해 어떻게 느끼나.

=내가 위로 20년까지 연기할 수 있는 배우가 됐구나 싶다. 지금 내 역할들이 되게 재밌다.

사진제공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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