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석은 무시무시한 괴물이 되어 팽팽하게 활시위를 당겼다가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일상의 희로애락에 젖은 평범한 얼굴로 편하게 박자를 타는 배우다. <모가디슈>에선 전자가 아닌 후자, 범인의 분투를 보여준다. 그가 연기한 한신성은 1990년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 파견 나가 있는 대한민국의 대사다.
유엔 가입을 위한 아프리카 외교전이 그의 임무인데, 소말리아 내전이 발발하는 바람에 대사관 식구들과 함께 무사히 모가디슈를 빠져나와야 하는 새 임무가 주어진다. 그 과정에서 고립무원의 상황에 처한 북한 대사관 식구들과도 한배를 탄다. 총알이 빗발치는 내전의 한복판에서 탈출을 이끄는 인물이지만 한신성은 “평범한 사람이 비범해지는 순간”을 보여줄 뿐 스스로 영웅이 되진 않는다. 헐렁한 여름 양복처럼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실루엣으로 한신성을 완성한 김윤석과 <모가디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류승완 감독과는 언제 처음 <모가디슈> 얘기를 나눴나.
=2018년 겨울쯤인가. 시간이 오래돼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은데, 그때부터 이미 얘기 중이었다. 그 후 연출작인 <미성년>도 개봉하고 <바이러스>라는 작품도 찍고, 2019년 10월쯤 모로코로 넘어갔다. 출연은 빨리 결정했다.
-빨리 결정한 이유는.
=류승완 감독과 두어번 정도 작업으로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일정이 맞지 않아 함께하지 못했다. 친분이 있는 최동훈, 나홍진, 봉준호, 박찬욱 감독과 류승완 감독이 다 막역한 사이여서 나와도 인연이 없지는 않았다. 앞서 두번이나 어긋났는데 세 번째 또 시나리오를 준 게 고마웠고, 시나리오를 보면서는 ‘이걸 도전한다고? 해외 올 로케이션에 전투 장면이 반 이상 있는 이 시나리오를?’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실제로 경험해본 류승완 감독은 신발을 벗지 않고 자는 사람이다. 책상에 앉아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현장에서 타잔처럼 종횡무진 날아다니는 사람이더라. 또 굉장히 자유롭다. 대사나 장면을 현장에서 새롭게 고치기도 하고, 배우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면서 라이브하게 만들어간다. 살아 있는 것을 담자는 게 류승완 감독의 철학인 것 같다. 유연성과 대처능력이 없으면 그러기 힘든데 베테랑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한 이야기다. 스탭들이 시대적 리얼리티를 구현하는 데 집중했던 것만큼 배우들도 캐릭터의 리얼리티를 고민했을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바이러스> 촬영 마치고 이틀 뒤에 모로코로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공부하고 준비할 시간은 부족했고, 감독님에게 많은 설명을 들었다. 감독님이 “일단 와라. 당신들은 (소말리아에서 몇년을 산 외교관이니) 피부를 태워야 한다. 분장으로 해결될 게 아니다”라고 해서 모로코 현장에 조금 일찍 갔다. 그리고 시나리오에 나와 있는 한신성 대사의 모습에 공감이 갔다. 한 대사는 액션 장르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히어로가 아니다. 영웅도 아니고 총을 잘 쏘는 것도 아니다. 모자란 모습도 있고 실수도 하고 인간적이다. 평범하게, 그러나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이 극한상황에서 비범한 선택을 한다. 그러한 모습이 가치 있다고 느꼈다.
-한신성 캐릭터가 실제 본인의 모습과 닮았다고 했는데.
=영웅이 아니라는 점, 대단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렇다. 시행착오도 겪고, 겁도 많고, 우유부단하고, 아내에게 야단도 맞고, 공 서기관(정만식) 만나면 강대진 참사관(조인성) 욕하고 강 참사관 만나면 공 서기관 뒷담화하면서 관계의 밸런스도 유지하는 그런 인물이다. 뛰어난 판단력과 결단력, 희생정신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그 평범함이 자연인으로서의 나와 닮았다고 느꼈다.
-남북한 대사관 사람들이 빙 둘러앉아 식사하는 장면에서의 디테일이 인상적이었는데, 배우들이 즉석으로 만들어낸 대사나 상황도 있었나.
=즉흥적으로 만든 건 없고 다 세팅돼 있었다. 깻잎 장면의 경우, 내전이 일어난 머나먼 아프리카에서 김치랑 깻잎을 좋아하는 유일한 사람들이 만났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소말리아에서 깻잎을 좋아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나. (웃음) 같은 입맛을 가진 사람들이 밥을 먹지만 서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고, 밥에 독이 든 것은 아닐까 의심해서 숟가락도 못 드는 상황이 그려진다. 상황이 주는 아이러니가 잘 표현된 것 같다.
-케냐행 비행기 안에서 남북 사람들이 작별인사를 나누는 엔딩에선 감정이 꽤 절제돼 있다. 그래서 오히려 여운이 남던데.
=케냐 공항에 비행기가 무사히 안착하고, 남과 북 사람들은 바깥의 상황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인사를 나눈다. 생사의 고비를 함께 넘은 사이지만 소음이 엄청나게 심한 비행기 안에서 짧은 악수 정도로 인사를 나눌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 대사가 “마지막 인사는 여기서 나눕시다”라고 말할 때 현장에서 배우들이 많이 울컥했다. 감독님은 그래서는 안된다고 얘기했다. 감정을 많이 절제한 채 찍으니 결국 그 여운이 관객의 몫으로 돌아간 것 같다. 영화를 보신 분들이 그러더라. 방심하고 있다가 갑자기 훅 한방 맞은 것 같다고. 그 또한 감독님이 의도한 게 아닌가 싶다.
-후반부 차량 탈출 신에서 운전석에 앉긴 하지만 한신성 대사의 단독 액션 신은 없다. 액션 장인 류승완 감독의 영화이니, 나름 멋진 액션 신 하나를 소화하고 싶은 마음도 품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런 마음은 전혀 없었다. 애초 시나리오에도 한 대사의 액션 신은 없었다. 가장 멋있는 액션은 조인성씨가 맡았는데 오히려 감사했다. (웃음)
-1990년의 소말리아 모가디슈를 재현한 모로코 현지에서 연기하는 느낌은 어땠나. 시대적 상황에 몰입하기 수월한 점도 있었을 것 같고, 한국영화 현장 같지 않아 낯설기도 했을 것 같다.
=우선 촬영 현장을 보고 깜작 놀랐다. 모로코 에사우이라의 도시 일부를 1990년의 모가디슈처럼 꾸몄는데, 도로까지 새로 닦았다. 영화 속 비포장도로는 실제로는 비포장도로가 아니다. 흙을 도로에 깔아 흙먼지 날리는 사막의 비포장도로 느낌을 냈다. 얼마나 어마어마한 일이었겠나. 수킬로미터에 달하는 길을 만들고, 거리의 건물까지 미술 작업을 새로 했다. 아마 미술팀이 두번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촬영 현장이 아닐까. (웃음) 영화에 출연하는 외국인 배우들은 오디션을 보고 캐스팅됐는데 스페인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 외국인 배우들이 구사하는 언어가 저마다 달랐다. 그들 중엔 영어를 잘 못하는 사람도 많아서 서로서로 영어 대사 엔지를 내기도 했다. 너도 못하고 나도 못하는 영어, 우리 열심히 하자 그러면서. (웃음) 영화에 여러 인종의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어색하지 않게 서로 섞였고 영화에도 이질감 없이 잘 녹아난 것 같다.
-배우와 스탭들의 관계가 특히 끈끈한 현장이었다고 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4개월 동안 같은 숙소에서 지냈다. 아침에 밥 먹을 때 만나고, 점심 때 밥차에서 또 만나고, 저녁 때 숙소에서 또 만난다. 한국에서라면 자신의 촬영 분량이 없을 땐 집에 가기도 하는데, 이건 끝날 때까지 같이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류승완 감독님 현장이 유독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다 같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분위기가 있었다.
-타국의 현장이라 후배들이 많이 믿고 의지했을 것 같은데, 후배들을 더 잘 챙겨야겠다는 생각도 했나.
=허준호 선배가 있어 참 다행이었다. (웃음) 후배들을 잘 챙기고 다독이는 방법은 나서지 않는 거라 생각한다. 나서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미덕이다. 어려운 선배가 괜히 친절을 베푼다고 나서서 챙기면 그 자체가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조용히 있었다. 그들도 알아서 잘하는 어른이다.
-조인성 배우와는 처음 같이 연기했다. 어떤 매력이 있던가.
=<비열한 거리>를 보고 그때부터 굉장히 좋은 배우라 생각했다. 정직하게 믿음을 주는 연기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모습에서 배우의 연기 철학이 보였다. 실제로 만나보니 역시나 담백하고 진솔하고 절제력이 있는 사람이더라.
-<미성년>을 통해 감독 데뷔도 했는데, 콤팩트한 드라마 말고 <모가디슈> 같은 블록버스터영화를 연출해보고 싶은 마음은 없나.
=전혀. 정말 철두철미하게 준비하고 몸서리치게 고생하는 걸 옆에서 지켜봤다. 많은 사람들을 아우르고 프로덕션을 단단하게 운영하는 능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감독님이 10년 넘게 쌓아온 믿음으로 만든 팀워크라 생각한다. 나는 사이즈와 관계없이 아무리 작은 이야기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인간의 이야기를 찾아갈 생각이다. 부화뇌동하지 않을 거다. (웃음)
-모로코에서 보낸 수많은 낮과 밤, 그 시간들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나.
=그때는 지금과 같은 팬데믹 상황이 아니었다. 모로코의 에사우이라는 무척 아름다운 해안 도시인데, 매일 숙소 앞 바다에서 아프리카의 석양을 볼 수 있었다. 붉은 기운이 비친 바다를 보면서 그림 같은 풍경 속에 있다는 것이 벅차기도 했다. 지금 다시 그때를 떠올려보니, 얼른 우리가 힘든 시기를 극복하고 아름다운 자연과 자유를 맘껏 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