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모가디슈' 배우 구교환, 동선으로 감정을 표현했다
2021-08-12
글 : 배동미

구교환이 분한 태준기 참사관은 위로는 림용수 대사(허준호)를 보좌하고 아래로는 대사관 직원과 그 가족의 안전을 지키는 인물이다. 어느새 한국영화에서 의외성이자 독창성의 상징이 된 구교환은 김윤석, 조인성, 허준호란 기량 뛰어난 선수들 사이에서도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어낸다. 한국측과 몸싸움까지 벌이는 북한 외교관을 다른 배우가 아닌 구교환이 연기하면, 신체적 능력을 이기는 의지와 근성의 드라마가 더해지기 때문이다. 화상으로 만난 구교환 배우와 그가 재현한 태준기에 관해 대화를 나눴다.

-대본을 읽을 때 태준기가 어떻게 다가왔나.

=태준기는 타협하지 않고 국가에 충성하며 근성이 있는 캐릭터다. 대사도 많지만 몸으로 표현하는 게 많다. 그전까지 동선으로 어떤 감정을 표현해본 적은 없었기 때문에 배우로서 설렘과 궁금증이 있었다. 일례로 강대진 참사관(조인성)과 맞붙을 때, 체급 차이가 있어서 이를 상쇄하려고 손에 잡히는 온갖 물건을 던진다.

-한신성 대사(김윤석)는 한국에 두고 온 수험생 딸이 있고, 림용수 대사는 북에서 나온 지 20년 됐고, 손자까지 소말리아에 데려와 함께 살고 있다. 강대진 참사관은 안기부에서 좌천된 인물이다. 태준기의 배경만 가려져 있는데.

=여러 전사가 있으나 영화에서 잘 안 드러나는 게 매력적이라 생각한다. 물론 태준기에게도 가족이 있다. 여러 나라를 돌면서 활동하던 인물이고, 그래서 영어가 능숙하다. 태준기는 강대진 참사관처럼 훈련받은 사람이어서 탈출 시퀀스를 보면 동선이나 탈출로를 파악하는 역할을 한다.

-호텔 신에서 배우들의 앙상블과 동선이 눈에 띄었다. 남북한 외교관들이 이권 다툼을 하느라 나라별로 마주서 있다가 호텔 바깥에서 총격전이 일어나자 대치하던 대열을 흐트러뜨려서 같은 곳을 바라본다.

=류승완 감독님의 주문은 림용수 대사쪽으로 언제나 감각을 열어두라는 것이었다. 호텔 신에서 동선 자체도 태준기가 잠시 림용수 대사와 가장 멀리 떨어지게 되는데, 상황을 인지하는 순간 태준기는 재빠르게 림용수 대사쪽으로 가서 그를 보호한다. 태준기에게 가장 중요한 존재는 림용수 대사다. 자신의 시선 안에 림용수 대사가 있는지가 늘 중요하다. 호텔 신 동선이 상징적이라 생각한다.

-둘 다 북한 외교관이지만 림용수 대사와 달리 태준기는 열정적이고 돌격대 같은 면이 있다.

=국가에 대한 충직한 마음은 똑같지만, 각자 방법이 다르다. 두 캐릭터의 차이를 가장 대표하는 게 북한 대사관 사람들의 첫 탈출 시퀀스다. 그 시퀀스는 허준호 선배님의 얼굴에서 시작한다. 림용수 대사가 동향을 살핀 뒤 “가라”라고 말하면 태준기가 간다. 림용수가 침착하고 여유가 있다면, 움직이는 건 태준기다. 그러면서도 태준기에게는 의외의 장난스러움이 있는데 큰 칼을 가지고 다니며 “재미로 하는 거디요. 재미”라고 말한다. 모가디슈 현지인들에게 지폐를 줄 때 그냥 안 주고, 지폐를 아래로 톡 떨어뜨려 손장난을 치는 장면만 봐도 그렇다.

-관객으로서는 태준기 참사관이 참 열성적이란 생각이 들지만, 배우가 표정을 찡그린다고 이런 면이 전달되는 게 아닌데, 어떻게 디테일을 만들어갔나.

=동료 배우들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태준기에게 보내주는 프레임 너머의 시선들이 있었다. 그게 온전히 담겼기 때문에 ‘저 친구는 참 화가 많구나’ 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던 것 같다. 북한 대사관측이 대한민국 대사관에 처음 진입할 때 강대진 참사관이 태준기 참사관한테 라이트를 바로 쏘는 신이 있다. 거기에 또 화가 나서 “야” 하고 다가가면 림 대사가 태준기의 어깨를 탁 잡는다. 이런 모든 동선이 태준기를 만들어준다. 사실 나는 “야”밖에 한 게 없다. (웃음)

-북한의 젊은이다운 멋을 보여주면서도 90년대 패션을 소화해야 했다.

=포인트는 사실 허리띠다. 태준기는 그 난리에도 허리띠가 늘 정리돼 있을 것 같은 인물이다. (웃음) 얇은 허리에 반드시 벨트를 차면서도 벨트가 배꼽 2mm 근처에 있어야 마음이 편해지는 캐릭터다. 그런 부분들이 태준기스러움이고, 태준기의 스타일을 완성한다.

-<모가디슈> 카 체이싱 신을 위해 운전면허를 땄다고.

=1종 스틱으로 땄다. 게임을 좋아해서 그런지 몰라도 기어를 움직이는 감각들이 좋았다. 극중 태준기는 차량 네대 중 두 번째 차를 운전하는데, 누가 타고 있는지 봤나. 아니나 다를까 림용수 대사다. 태준기는 승차감은 물론 위급 시에 림용수 대사를 지켜야 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모가디슈>를 보기 전까지 관객은 구교환을 떠올리면 <반도>의 서 대위를 생각할 것 같다. 비슷한 재난 상황에서도 서 대위는 태준기와 달리 낭만과 우울이 있는 캐릭터였다.

=두 캐릭터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서 대위는 이미 많이 무너진 인물이었고 태준기 참사관은 한번도 무너진 적이 없다. 마지막 신에서 서 대위는 후진기어를 넣기 전에 ‘내가 이럴 줄 알았다, 그러면 그렇지’라는 마음으로 웃기도 하는데, 태준기 참사관은 살아서 돌아간다는 확신만 있다. 서 대위가 최악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태준기는 최선을 생각하는 인물이다. 한마디로 태준기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상황에 대해서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영화의 배경인 1991년 당시 10살 구교환이 궁금하다.

=<가요 톱10>을 열심히 봤다. 요즘 여느 10살 아이처럼 유행가를 좋아하고 짝사랑을 했고 교우 관계가 원만한지 계속 확인하고 있었다. 지금의 모습과 다르지 않게 살았다.

-그때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나.

=아,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남들 앞에 서고 싶다는 욕망은 있었던 것 같다. 그게 배우로서 스크린 위에 있고 싶다는 방식으로 확장됐다. 다 같이 불을 끄고 많은 사람이 한곳을 응시하면서 스크린 속 나를 보고 있다는 데 희열을 느꼈던 것 같다. 갑자기 애틋해진다.

사진제공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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