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모가디슈>의 개봉일이 조인성 배우의 생일이었다. 생일 축하와 개봉 축하를 동시에 전하자 돌아온 대답은. “선물은 제작사 외유내강으로 보내주세요, 사양하지 않을게요. 별점도 반개 더 얹어주시면 고맙고요. (웃음)” 조인성의 가벼운 농담 한마디는 인터뷰를 쌍방향 소통의 대화로 만들었다. <모가디슈> 현장에서 조인성이 선배 김윤석과 어떻게 가까워졌을지 동료 배우들과 어떤 태도로 소통했을지 짐작이 되기도 했다.
<모가디슈>에서 조인성은 소말리아의 대한민국 대사관에 파견 나간 강대진 참사관을 연기한다. 안기부 출신의 젊은 참사관 강대진은 비뚤어진 애국심과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으로 상대와 마찰을 빚는 꺼끌꺼끌한 사포 같은 인물인데 그 모습이 조인성을 거치며 불편하지 않게 순화되는 측면이 있다. 류승완 감독과 <모가디슈>에 이어 차기작 <밀수>까지 연이어 작업하며 연기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가벼운 몸놀림을 보여주고 있다.
-<모가디슈> 개봉일인 7월 28일이 생일이다. 개봉일이 생일로 정해졌을 때의 기분은 어땠나.
=운명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되는 일이 쉽지 않으니까. ‘운명 같은 작품이네, 어머니가 좋아하시겠구나.’ 마침 <밀수>를 같이 찍고 있는 염정아 선배님도 나와 생일이 같아서, 그날은 축하할 일이 두배로 많은 날이 된 것 같다.
-30대에 찍은 영화가 <모가디슈> <안시성> <더 킹> 세편이다. 영화를 다작하는 편은 아닌데, 작품 선택을 신중하게 해서 그런가.
=신중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다들 각자의 상황에서 신중하게 작품을 고를 것이다. 영화로 따지면 세편이지만 드라마까지 포함하면 <그 겨울, 바람이 분다> <괜찮아, 사랑이야> <디어 마이 프렌즈>가 있다. 1년에 한 작품, 2년에 한 작품씩은 하려고 노력했다. 영화 세편이라… 생각보다 많이 했네. (웃음)
-특별히 끌리는 유형의 캐릭터가 있나. <모가디슈>의 강대진 참사관도 그렇고, 영화에선 거칠고 욕망 가득한 인물을 자주 연기한다.
=사람이 재밌으면 끌리는 것 같다.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모습이라든지, 내가 가지고 있지만 스스로는 인지하지 못한 면을 감독의 시점에서 끌어낸 모습이라든지, 그런 것들을 끄집어냈을 때의 쾌감이 있다. 이번엔 류승완 감독님 본인이 가지고 있는 모습, 류승완스러운 모습이 나를 통해 표현된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인간적인 모습이나 정 같은 것들.
-얘기한 대로 대한민국 대사관의 강대진 참사관은 재밌는 캐릭터다. 안기부 출신의 젊은 참사관으로 과한 애국심과 인정욕이 있고 일단 지르고 보는 행동파이기도 하다.
=그 모습 그대로다. 목적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체면 몰수하고 상식적으로는 민망해서 하지 못하는 행동을 밀어붙이기도 하고, 때론 비굴했다가 때론 윽박지르기도 하고. 그런 모습들이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만들지 않았나 싶다. 그러면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쉬어갈 수 있는 구석, 빈틈을 만드는 거였다. 그건 유머일 수도 있는데. 아무래도 탈출 과정이 묵직하다보니 너무 숨통을 조이지 말고 약간의 위트를 더하면 좋을 것 같았다.
-영화 속 막무가내 콩글리시는 어떻게 탄생한 건가.
=콩글리시라 하더라도 영어가 입에 붙어야 극화된 연기를 할 수 있는 거라, 한달 반 정도 개인적으로 영어 선생님과 수업을 했다. 1990년 당시에 쓸 법한 발음과 단어도 고민하면서 영어가 친숙해지도록 사전 준비한 결과다.
-영화 속 배우들의 밸런스가 좋다. 김윤석, 허준호 배우가 영화의 중심을 잡고 조인성, 구교환 배우가 캐릭터의 개성을 맘껏 발산하며 영화에 엣지를 더한다.
=전설 같은 두 선배 배우와 연기할 때는 호흡을 따로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그들이 장면의 방향성을 잘 잡아주기 때문에 그 안에서 잘 놀면 된다. 선배들과 작품 안에서 잘 놀려면 그들과 어색하지 않아야 한다. 그게 출발이다. 모로코에서 4개월 동안 있으면서 서로 인간적으로 친해졌다. 거리낌 없는 사이가 되니 자연스럽게 잘 놀 수 있는 상황이 구축됐다. 나나 (구)교환이나 다른 후배들이 <모가디슈>에서 생동감 있게 표현됐다면 그건 두 선배님들의 공이라는 생각이 든다.
-김윤석 배우와 함께 연기하는 것에 대한 기대가 컸을 것 같다. 현장에서 김윤석의 에너지를 느껴보니 어떻던가.
=후덜덜하다. (웃음) 숏에 대한 장악력, 대본을 해석하는 능력이 정말 대단하다. 그 힘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몸으로 체감하면서 체득하게 되는 것들이 있었다. 김윤석 선배는 작품만 생각하신다. 이 대사는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떤 의미로 작용할까, 의도한 방향대로 잘 가고 있나, 설명이 부족한가 아니면 반복적으로 설명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것들을 계속 고민한다. 카메라 밖에서도.
-류승완 감독도 영화밖에 모르는 사람이라 표현했는데, <모가디슈> 현장엔 영화밖에 모르는 사람들만 모인 모양이다.
=그 모습이 참 귀하게 여겨졌다. 우리는 지금 영화를 만들러 왔으니까 영화에만 집중해야 하는 게 맞다. 그런 태도가 바람직한 프로페셔널의 모습이다. <모가디슈> 현장엔 그런 프로들이 모였고, 그래서 쉽지 않은 프로덕션을 문제없이 끝내고 온 것 같다.
-구교환 배우와 좁은 실내에서 일대일로 맞붙는 장면이 있다. 영화에서 처음으로 강대진의 물리적 힘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다.
=교환이는 교환이 나름대로 신 해석을 했을 거고, 나는 나대로 캐릭터의 목적의식을 생각하며 신 해석을 했는데. 강대진 참사관 입장에선 뱉은 말에 책임져야 하는 장면이었다. “훈련받은 사람”이라는 확인. 그렇지 않으면 수가 많은 북쪽 사람들에게 제압당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런 생각에서 시작해 만들어나간 장면이다. 그러니 그 상황은 장난일 수 없다. 전까지는 “훈련받은 사람이야”라는 말이 장난처럼 들릴 수 있는데, 그 순간엔 강대진 참사관의 살벌한 모습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말은 꽤 탔지만 강렬한 자동차 액션은 처음이지 않나.
=말이든 차든 타는 건 매한가지인 것 같다. 타는 건 어렵다. 동물도 기계도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동물보다는 기계가 더 쉬울 것 같은데.
=맞다. 그런데도 참 쉽지 않더라. 총격을 방어하기 위해 차량 외부에 두꺼운 책, 모래주머니, 철판 등을 덧댔고 앞유리의 시야도 많이 가려진 차량을 몰아야 해서 힘들었다. 촬영 중 소품이 떨어지기도 하고 모래가 새기도 하고. 그 장면 찍을 때 현장은 아주 박진감이 넘쳤다.
-모로코로 출국할 땐 어떤 마음이었나. 또 4개월의 촬영을 무사히 마치고 한국에 도착했을 때는 어떤 기분이었나.
=갈 땐 모르니까 두려움이 컸다. 모르면 두렵다. 나 역시 이런 프로덕션을 경험해본 적 없어서 굉장히 두려운 마음이었다. 새로운 작품에 들어가고 연기를 새로 할 때마다 언제나 제로 값에서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 들어 긴장하게 되고 두려운 마음이 생긴다. 이번엔 현장의 상황마저 알 수 없으니 두려움이 더 컸다. 그런데 현장에 도착해 눈으로 확인하고 경험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회차가 거듭될수록 더더욱 마음이 편해졌고, 끝나고 나서는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이걸 해냈다는 뿌듯함도 있었고. 무언가 해결하고 왔기 때문에 도착해선 마음이 편했다.
-올해 초 방영된 예능 프로그램 <어쩌다 사장>에 김재화, 박경혜 배우가 게스트로 출연한 것을 보면서 배우들이 <모가디슈> 찍으며 참 돈독한 사이가 됐구나 싶었다. 작품으로 맺은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모습도 느껴졌고.
=내가 소중히 여긴다기보다 그들이 그 시절의 인연과 사람을 소중히 여긴 거다. 그러니 만남이 지속될 수 있다. 관계는 일방향일 수 없으니. <안시성>의 (남)주혁이, (박)병은이 형과 친한 것도 마찬가지다. 아무튼 재화 누나와 경혜의 케미를 <모가디슈>로 확인했어야 했는데 <어쩌다 사장>으로 먼저 공개하게 됐다. 참고로 <밀수>에도 두 배우가 나온다.
-예능 프로그램의 호스트로 조인성을 보게 될 줄 몰랐다. <어쩌다 사장>엔 어쩌다 출연한 건가.
=어쩌다 사장이 됐다. 그런 생각은 있었다. 코로나19가 길게 이어지고 영화 개봉이 늦춰지고 공백기가 길어지면서 빨리 관객을 찾아뵐 수 있는 길은 없을까. 그런 개인적 고민을 하던 찰나에 차태현 선배님의 제안이 있었다. 24시간 카메라가 돌아가는 상황에 놓인 경험은 처음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수시로 벌어져 굉장히 생동감이 있었다. 라이브한 느낌을 많이 받았고 연기할 때도 이런 느낌으로 연기하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배움이 있었다.
-류승완 감독과는 <모가디슈>에 이어 <밀수>를 연달아 함께하고 있다.
=<밀수>도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밀수>에도 두 거목 김혜수, 염정아 배우가 나온다. 확실히 선배들과 함께했을 때 편안함을 많이 느낀다. 어렸을 때 전도연 선배, 고현정 선배와 작업을 하기도 했고. 혼자 롤이 많은 영화는 스스로 부담을 많이 느끼는 것 같다. <모가디슈> 때도 그랬고 <밀수>에서도 선배님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