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인이 드라마 <라켓소년단>에서 연기한 배드민턴 선수 한세윤은 안세영 선수를 모델로 한 캐릭터다. 이번 도쿄올림픽에서 부상을 안고 8강까지 올라 뭉클한 감동을 준 안세영 선수는 중학생 때 태극 마크를 단, 세계가 주목하는 배드민턴계의 라이징 스타다. 마침 드라마 방영 시기와 도쿄올림픽 기간이 맞물려 이재인은 촬영 중 안세영 선수의 경기를 응원하며 지켜볼 수 있었고 안세영 선수에게 “드라마 재밌게 봤다”는 얘기도 들을 수 있었다. 최연소 국가대표를 꿈꾸는 중학생 배드민턴 선수를 연기하기 위해선 배울 것이 많았다. 4~5개월간 배드민턴을 1대1로 코칭받았고 “선수의 자세”에 대해서도 공부를 많이 했다. “세윤이가 성격뿐 아니라 실력 또한 성숙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단지 선수를 ‘연기’한 것뿐이지만 촬영하는 8개월 동안 선수로서의 마음을 가지려 노력했다.”
실력과 성격 모두 성숙한 노력형 천재 한세윤과 이재인은 닮은 구석이 꽤 있다. “세윤이의 부지런함을 따라갈 순 없겠지만 나도 어릴 때부터 내 일을 했다는 건 공통점인 것 같다. 철저한 자기 관리까지는 아니지만,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직업이라 자기 관리도 하고 있고. (웃음)” <어른도감> <사바하>로 일찍부터 재능을 발휘하며 연기 천재라는 얘기를 들은 것에 대해선 “어릴 때의 연기를 보면 타고난 천재는 아닌 것 같다”거나 “좋은 감독님, 좋은 배우들을 만난 덕”이라며 겸손해했다. 캐릭터와 실제 모습의 차이는 성격의 강도에 있다. “세윤이가 겉으로는 잘 울지도 않고 잘 웃지도 않지만 속에는 중학생다운 귀여운 모습을 가지고 있는 외강내유 스타일이라면 음, 나는 외유내유이려나? (웃음) 막 여리지도 않고 확 강하지도 않고, 융통성 있는 타입이다. 자아가 강하면 연기할 때 불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무난한 성격을 가졌고 무난한 인생을 살았기 때문에 특색 있는 캐릭터를 만나 연기하는 게 즐겁다는 이재인은 평소 감정 표현이 뚜렷한 편이 아니라 “넌 어떻게 연기를 하느냐”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고 한다. 예술가의 초상이 강한 자아와 예민함이라는 것도 옛말이다. 이재인은 연기할 때 에너지를 쏟기 위해 평소엔 에너지를 비축해두는 유형이다. 감정에 휘둘리는 대신 감정을 잘 모아놨다 연기할 때 연료로 사용하는 것이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큰일이 닥쳐도 담담하게 지나갈 수 있는 무던한 사람이 되고 싶다. 담담하게 감정을 누르고 있다가 그걸 연기에 쓰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다.” 자신이 외유내유라는 말은 어쩌면 페이크다. 이것이 외유내강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성숙한 생각과 태도는 <사바하>에서도 증명됐다. 이재인은 이제껏 연기한 캐릭터 중 가장 어려운 인물이 <사바하>의 ‘그것’이었다고 했는데, 삭발과 1인2역이라는 대담한 도전은 캐릭터가 되기 위한 당연한 과정이었다고. “좋은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 삭발 때문에 주저하는 건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다. 외형을 바꾸는 건 캐릭터에 몰입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 생각해서, 속상하지 않았다.” 이재인은 10대 초반에 독립단편영화들을 촬영하면서 경험 밖의 세계를 만나고 캐릭터를 탐구하는 것의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고 한다. 오디션도 많이 봤고 낙방의 쓴맛도 많이 봤지만 결과에 크게 속상해하거나 애면글면하지 않았다. “결국은 내가 해낼 수 있는 것들이 내게 기회로 주어진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극장에 가면 오디션 봤다 떨어진 영화들이 걸려 있기도 한데, 친구한테 ‘저건 1차까지 갔고, 저건 2차까지 갔고’ 설명한 적도 있다. (웃음)”
실패와 성공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것도 이재인의 능력이라면 능력 아닐까. 차기작인 강형철 감독의 <하이파이브>에선 유아인, 안재홍, 라미란 등과 초능력을 갖게 된 히어로로 출연한다. 인터뷰 내내 배웠다, 배우고 있다, 배우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한 이재인이 <하이파이브>에선 어떤 능력을 습득, 연마해 선보일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첫 연기의 기억
“데뷔작은 드라마 <노란복수초>였는데, 대사도 없었고 꽃을 쳐다보는 뒷모습 정도만 살짝 나왔다. 영화 데뷔작은 <미나문방구>인데, 그땐 기억이 난다. 문방구에 들르는 단골 꼬마 손님 중 한명이었고 나름 대사도 있었다. 여기 스케치북 얼마예요?”
롤모델
“정해진 롤모델은 없지만, 좋아하는 배우는 전지현 배우. <엽기적인 그녀>나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같은 옛날에 나온 영화도 다 재밌게 봤다. 나중에 작품에서 만나면 떨려서 말도 못할 것 같다.”
10년 후 나의 모습
“그때쯤이면 쉬엄쉬엄 살았으면 좋겠다.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워라밸을 아는 어른이 되어 있으면 좋겠다. 커리어적인 부분은 상상을 못하겠다. 어릴 땐 이렇게 인터뷰를 하게 될 줄도 몰랐으니까. 어쩌면 그래서 더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