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Apple TV+ 오리지널 <Dr.브레인>은 천재 뇌 과학자 세원 (이선균)을 주인공으로 한 60분 내외 6부작 드라마다. 제목은 SF 장르 혹은 메디컬 장르 같지만 전반부에서 정통 스릴러를, 후반부에서는 가족 드라마 문법을 구사한다. 뇌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가 크고 감정을 담당 하는 편도체가 약화된 채 태어난 세원은 뛰어난 기억력을 지녔으나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은둔형 천재’다. 뇌를 연결해 기억을 옮기는 동물 실험에 성공한 이 뇌 과학자는 직접 실험 대상이 되어 죽은 자의 뇌와 연결하는 데 성공한다. 실험 후 비틀거리며 집에 도착한 그날 밤, 세원은 <파이트 클럽>의 테일러 더든(브래드 피트)처럼 붉은 재킷을 걸친 사립탐정 강무(박희순)와 운명처럼 만난다. 강무는 세원이 몰랐던 아내 재이(이유영) 의 외도 사실을 알리며 외도남의 신변에 대해 묻는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자신의 소설들은 모두 탐정소설의 형태를 갖췄다며, 주인공이 누군가를 찾으려고 모험을 시작하는데, 막상 그 사람을 찾으면 다른 것들이 함께 발견되는 이야기라고 말한 적 있다.” 김지운 감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을 인용하며 자신이 연출한 첫 드라마가 정확히 이런 형태라고 설명했다. 윤리를 뛰어넘는 뇌 실험과 매회 반전이 이어지는 까닭에 낯설게 느낄 관객도 있지만 시리즈의 중반에 이르면 확실히 김지운 감독이 말한 장르적 재미가 진해진다. 작품 공개 하루 전, 김지운 감독을 만나 타인의 뇌에 접속해 가족 미스터리를 푸는 한 남자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Apple TV+와의 작업 환경에 대해서도 자세한 설명을 보탰다.
- Apple TV+와의 만남은 어떻게 이뤄졌나.
한국 콘텐츠가 외국에서 인기를 끄니까 Apple TV+에서 한국에 진출하기 위해 하이 컨셉(영화 주제, 스타, 마케팅 등 성공할 영화를 기획하는 것.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영화가 이런 기획을 통해 제작되며, 2000년 이후 한국 기획영화 역시 이런 하이 컨셉 영화의 범주에 들어간다.-편집자)을 찾았을 것이다. 나는 4~5년 동안 원작 웹툰
- <하우스 오브 카드>는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장르와 배우 등 여러 알고 리즘의 합으로 기획되지 않았나. 결과물만 놓고 보면 <기생충>의 이선균, 일본에서 선풍적 인기를 끈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의 서지혜의 합으로 비칠 수도 있을 것 같다.
지난해 겨울쯤 Apple TV+와 만나면서 제작이 급속도로 전개됐고, 올해 2월에 찍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글로벌한 인지도를 가진 배우를 염두에 두고 기획된 거냐고 묻는 거라면, 그건 아니다. 마침 그 배우 들이 마음에 들었고, 만날 수 있는 환경이 됐기에 함께할 수 있었다.
- 시리즈 초중반까지 정통 스릴러 문법을 구사한다. 형사도 갱스터도 아닌 주인공이 피의자로 몰리고 함정에 빠진다. 후반부는 드라마가 강화되면서 장르가 변한다. 이 전체를 이끌어갈 주인공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데, 이선균 배우가 세원에 걸맞다고 생각한 건 어떤 이유에서인가.
이선균 배우는 그가 20대 후반에 뮤지컬 등 공연계에서 활동할 때부터 봐왔다. 그는 무수히 많은 장르의 영화와 드라마를 해왔고 그때마다 평균 이상의 연기를 보여줬다. 설사 흥행은 안됐어도 그의 연기가 영화를 망치거나 수준에 못 미치는 경우는 없었다. 나는 이선균 배우가 한국 훈남의 가장 일반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중산층에 준수 하고 관객이 친숙하게 다가가기 쉬운. <Dr.브레인>은 사실 어려운 작품이다. 이 어려운 얘기를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배우가 필요하다고 봤다. <끝까지 간다>와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그가 보여준 엄청난 연기 스펙트럼은 일반적이고 평범한 인물이 어떤 상황을 맞닥뜨리면서 폭발력이 드러나는 과정이었다.
- 1화 마지막 장면에서 세원이 살고 있는 저택의 지하실로 내려간다. 한국 작품인 데다 <기생충>의 이선균이 연기하다 보니 <기생충>을 떠올릴 관객이 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으로서 이같은 결단을 내린 이유는.
세원의 지하실이 <기생충>을 염두에 두고 탄생한 건 아니다. 그보다는 세원이 비밀리에 어떤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는 이유가 더 크다. 언급한 1화 클라이맥스에서 세원이 계단을 터벅터벅 내려갈 때 김기영 감독의 <하녀> 속 김진규처럼 보이긴 했다. 딜레마에 빠진 한국 중산층 가장의 고통과 무기력, 어떤 광기 같은 게 연상됐다. 한국 고전 스릴러 <마의 계단>에 비견할 수도 있겠다. 영화비평에서 계단 이미지가 주는 메타포에 대해 많이 읽었지만, 실제로 카메라에 담아보니 더강렬했다. 세원은 이 계단을 통해 더 깊은 심연으로 들어간다.
- 6시간 분량의 드라마를 만드는 셈이니 드라마를 경험한 배우들 입장에서 는 드라마 촬영 현장보다 짧고, 영화 현장보다 많이 찍는 듯했을 텐데. 영화감독으로서 체감한 현장 속도는 어땠나.
너무 힘들었다. (웃음) 영화 현장에서도 어느 순간 적정한 판단을 내려야 할 때가 있다. 드라마는 영화보다 훨씬 자주 이런 판단을 내려야 하더라. 영화적인 연출이라든지 야심찬 미장센은 영화 작업 때만큼 하지 못한다. 미장센에 대한 시간과 공력을 잃은 반면 드라마를 전달하려는 방식은 친절해지고 간결하고 명료해졌다. 이전 작품들이 불확실하고 불명료한 느낌을 특유의 무드로 나타냈다면 <Dr.브레인> 은 사건은 미스터리지만 모든 인물들이 그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정확한 입장으로 움직이는 작품이다.
- 그럼에도 조명만큼은 영화에 준하게 찍으려고 공을 들인 것 같다.
내가 플랫한 조명을 견디지 못한다. (웃음) 후반작업에서 색감을 증폭 시키고 강화시키긴 했지만 현장에서도 시간이 되는 한 빛에 대한 디자인을 계속 주문했다. 김천석 촬영감독팀이 손이 빠르고 준비를 잘하는 팀이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색감은 정적인 느낌과 우울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그린과 블루를 많이 썼는데, 차갑고 병적인 느낌을 주고 싶었다.
- Apple TV+와 작업을 마친 첫 한국 감독이다. 작업 환경에 대해 한국 영화인들이 궁금해할 것 같다.
비교하기 조심스럽지만 Apple TV+가 넷플릭스 못지않게 한국 창작자들에게 많은 걸 준다고 본다. 문화 차이로 이해되지 않는 내용에 관해 물어보는 경우는 있어도 요구나 간섭은 없었다. 단 1~2개월간 Apple TV+에서 원하는 사양에 맞도록 규격을 맞추는 QC(quality control, 품질 관리) 조정 기간은 있다.
- 시즌1 엔딩을 보니 시즌2로 돌아올 것 같다.
매화 엔딩이 다음 화를 기다리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마지막회 엔딩은 꼭 시즌2를 겨냥한 건 아니지만 관객이 뒤통수를 맞는 느낌이었으면 했다. ‘이것은 다른 뇌의 세계인가?’ 하는 의문을 만드는 엔딩이라 생각한다. 시즌2는 아직 모르겠다. 소재가 갖고 있는 확장성 때문에 시즌2가 제작된다면 좋지 않을까 싶지만,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 (웃음)
- OTT 오리지널을 공개하는 심정이 영화 개봉 때와 다르겠다.
좀 이상하다. (웃음) 영화 개봉 때도 긴장되고 떨리지만, OTT를 통한 시리즈 공개는 또 다르다. 공개 당일 아마 영화 시나리오 작업을 하고 있을 것 같다. 4K에다가 돌비 애트모스로 작업한 거라 TV에서 이사양이 어느 정도 구현될까 궁금하긴 하지만, 사실 나는 내 작품을안 보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