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해고도.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외로운 섬이라는 뜻이다. <절해고도>의 인물들은 먼 바다의 외로운 섬처럼 살아간다. “기본적으로 관계의 시작 또한 절해고도 같은 사람들의 만남이 아닐까.” <절해고도>는 40대의 조각가이자 이혼하고 혼자 살아가는 윤철(박종환)이 19살 딸 지나(이연), 우연히 만나 사랑하게 되는 영지(강경헌)와 관계 맺는 과정을 차분한 호흡으로 따라가는 영화다. 조각가라고는 하나 하고 싶은 예술만 할 상황은 되지 못하는 윤철은 자신을 닮아 미술에 재능을 보이지만 학교생활에서 어려움을 겪다 결국은 속세를 떠나 출가하기로 결정한 딸 지나를 염려스러운 마음으로 지켜본다. 그리고 세계의 오지를 여행하며 자유롭게 살아가는 영지를 만나 특별한 감정을 느낀다.
관계를 통한 성찰. 김미영 감독이 <절해고도>에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다. “가족과 연인,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발견되는 내 모습을 나는 제대로 직면하고 있나?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절해고도>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김미영 감독은 루이페르디낭 셀린이 쓴 글을 들려주었다. “혼자일 때가 온다. 모든 게 끝장에 이를 때가 오는 법이다. 그건 세상의 끝이다. 자신의 커다란 슬픔조차 더이상 자신한테 응답하지 않는다. 그때 당신은 왔던 길을 되짚어가서 사람들 사이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들이 누구든 상관없다.” 내친김에 감독은 단테의 <신곡> 지옥편까지 인용하며 어쩌면 자신은 계속해서 길을 잃거나, 길 잃은 자신을 발견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절해고도> 역시 “아무것도 뜻대로 되지 않는 순간들을 직시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길을 잃었다는 걸 알게 된 이후 이제 뭘 하면 좋을까, 라고 질문하는 이야기”다. 중요한 건 길을 잃은 이후 인물들의 선택과 행동이다. <절해고도>의 인물들은 예술과 종교 그리고 사람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가만히 대어본다. 윤철이 한때 생각했던 것처럼 딸 지나는 머리를 깎고 절에 들어가 수행을 하고, 윤철과 영지는 막다른 길에 다다랐다 싶은 순간 삶의 한 고비를 넘기며 일신우일신의 마음으로 살아간다. 계절의 변화처럼 자연스럽게 캐릭터의 색을 바꿔내는 배우들의 성숙한 연기도 인상적이다. 김미영 감독이 “창의적이고 재능 많은 배우”라고 고마움을 표한 박종환, “망설임 없이 머리를 삭발하겠다”고 나서 영화에 큰 힘을 보탠 이연, “부드럽지만 강인한 모습”을 보여준 강경헌 배우가 <절해고도>의 단단하고 오롯한 섬이 되어 영화의 지도를 채운다.
<절해고도>는 <일어서는 인간>(2015),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2018)에 이은 김미영 감독의 세 번째 장편영화다. 그는 한국영화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미학을 공부하고 임권택 감독의 3편의 영화에서 연출부 경험을 한 뒤 감독으로 데뷔했다. “나는 느리게 배우는 사람인 것 같다. 그런데 영화를 좋아하는 마음은 점차 더 깊어지고 있다.” 지금도 배우고 쌓아가는 과정이라 말하는 그의 느릿한 신중함이 어쩐지 미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