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시골의 작은 농장에 사는 야스는 냉장고 문을 열고 손톱으로 과자의 설탕을 긁어먹기 좋아하는 어린이다. 야스에게는 모든 경험이 차가운 유리를 만질 때처럼 선명하고 생생하게 다가온다. 상상이 끝 간 데 없이 뻗어나가기도 한다. 다락방의 밧줄을 보며 아버지가 목을 매는 장면을 상상하기도 하고,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스케이트를 타고 호수 건너편으로 갈 수 있는 맛히스 오빠가 토끼 대신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그런데 오빠가 정말로 세상을 떠났다. 호수 얼음이 녹아서 물에 빠져 죽은 것이다. 목욕 중에 오빠의 사망 소식을 전하는 말을 들은 야스는, 욕조에 오줌을 싸버린다. 이후 야스는 입고 다니는 코트를 절대 벗지 않는다. 지독한 변비에 시달리기도 한다. 사람들이 죽은 오빠의 시신 엉덩이에서 뭐가 더 나오지 않도록 솜뭉치로 막아놓았다는 말 때문일까, 똥을 빨리 싸지 않으면 두더지가 똥구멍에 들어가 굴을 팔 것이라는 말을 들어서일까. 야스는 몸에서 아무것도 내보내고 싶지 않다. 그런데 어른들은 죄책감에 눌려가는 어린이를 품어줄 여유가 없다. 이미 그만의 괴로움을 지며 휘청이고 있었는데, 전염병이 돌아 농장의 소 전체를 살처분해야 하는 상황까지 닥쳐버렸다.
오빠의 죽음 이후 야스의 세계가 서서히 변해가는 풍경을 그려가는 이 소설에는 직접적인 감정 표현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주인공은 슬픔을 느끼고 싶지 않고, 일상을 찔러 감정을 터트릴 행동을 찾아나서기 때문이다. 그래서 야스가 겪는 몹시 아린 사건들이 집요하고 건조하게 묘사된다. 야스는 죽은 오빠의 몸 모양이 그대로 남은 매트리스에 누워 잠을 청하며 그 흔적을 더듬는다. 사춘기를 앞둔 신체에 관한 관심과 죽음에 대한 강박이 뒤엉켜 자해로 이어지니, 야스는 압정을 배꼽에 찔러넣고 옷으로 감추고 다니기도 한다. 젖소를 키우고 덫으로 토끼를 잡아먹으며 아침마다 미지근한 우유를 마시는 시골 농장의 투박한 풍경에 죽음이 서서히 녹아드는 모습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유년 시절의 죽음을 탐구한 오정희 작가의 소설도 떠오른다. 2020년 최연소 인터내셔널 부커상 수상작이다.
죽음에 대하여
“사람들은 오빠에 대해 좋은 말을 해주었지만 죽음은 여전히 흉측하고 소화하기 어려운 무언가로 느껴졌다.”(3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