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씨네21 추천도서 <빛의 얼굴들>
2021-12-21
글 : 이다혜
사진 : 오계옥
조수민 지음 / 을유문화사 펴냄

어두컴컴한 방에서는 사물을 볼 수 없다. 본다는 행위는 빛을 매개로 가능한 행위다. 그래서 엄격하게 말하면 “사물은 ‘보이는’ 것이지 ‘보는’ 것이 아니다”. 조명 디자이너 조수민의 <빛의 얼굴들>은 우리의 시각 경험을 좌우하는 빛에 대한 책이다. 저자는 우리가 빛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를 “눈으로 보는 모든 것이 사물과 공간이기 이전에 ‘빛’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빛이다.”

<빛의 얼굴들>은 1장에서 빛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을 바로잡은 뒤, 빛과 사람, 빛과 공간, 빛과 사회를 차례로 이야기한다. 빛은 영화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출과 일몰 시, 태양이 낮은 고도에 있어 지면을 측면에서 비추는 노란 태양빛과 하늘이 조금씩 어두워지며 진한 파란빛으로 빛나는 천공광이 만나 특별한 빛 환경이 만들어지는데 이것을 ‘골든아워’라고 한다. 모든 존재가 부드럽게 빛나는 이 시간대는 하루 중 짧게 스쳐가는 순간이지만 많은 영화들이 이때를 포착해 영화에 담는다. “<건축학개론>에서 수지가 반짝이는 머리를 귀 뒤로 넘기는 장면, <살인의 추억>에서 송강호가 황금빛 논두렁을 다시 방문하는 마지막 장면, <기생충>에서 제시카가 슈퍼마켓에서 집어든 복숭아의 털을 입으로 부는 장면.” 애니메이션에서는 이 시간을 기다릴 필요 없이 만들어넣을 수 있기 때문에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너의 이름은.>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장면이 골든아워에서 진행된다. 그런가 하면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로 잘 알려진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그림 대부분은 북쪽 창에서 들어오는 균일한 빛의 효과를 담아냈다고 한다.

‘좋은 빛 환경’에 대한 논의는 저자의 전문성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같은 공간에 조명만 바꾸어도 완전히 다른 곳처럼 보일 수 있음을 증명하는 사진은 지금 내가 머무는 공간을 ‘빛’의 관점에서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가장 중요하게는 그곳을 사용하는 사람의 시선이 고려되어야 하며, 시야에 강한 대비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빛의 얼굴들>은 집의 구석구석에 조명을 숨겨두고 싶게 만들고, 야외의 빛에 민감도를 높이는 책이다.

빛의 마법

“해 뜰 무렵과 해질 무렵에 하는 산책을 좋아합니다. 장소는 크게 중요하지 않아요. 이 시간에는 어느 곳이든 아름다워지거든요.”(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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