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씨네21 추천도서 <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
2021-12-21
글 : 진영인 (번역가)
사진 : 오계옥
임솔아 지음 / 문학과지성사 펴냄

세상의 자잘한 악이 싫어서 홀로 열심히 살아도, 버틸 수 없는 순간이 온다. <내가 아는 가장 밝은 세계>의 주인공은 글 쓰는 프리랜서로 살며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성실히 살아왔다. 하지만 부동산 세계에 들어가며 달라진다. 전망 좋은 신축 빌라는 사자마자 바로 앞에 12층 빌딩이 세워지고 장마가 닥치자 곰팡이가 번진다. 보수 요청을 하려고 하니 시공사는 책임을 피하려고 부도를 내고 잠적해버렸다. 프리랜서라면 이미 다들 알고 있을 해촉증명서 제출에 시달리는 한편, ‘나’는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기 위해 남들에게 꼭꼭 숨긴 장애로 점수를 얻을까 따져본다. 한때 문학이 가장 밝은 세계라고 믿었던 ‘나’였는데, 이제는 외벽 보수공사로 눈속임한 빌라를 팔아치우고 외곽 지대의 아파트로 떠나게 되었다. 개인을 지켜주지 않는 세계에 살다 보면 자잘한 악에 무감해진다.

우리가 디딘 세계 자체가 문제라는 의식은 <희고 둥근 부분>에서도 생생하게 나타난다. 기간제 교사로 일하던 진영은 자해하는 학생을 돌보아주었는데, 그 마음 씀에 집착한 학생은 오히려 자해에 더욱 빠져들고 이 문제로 진영은 학교를 떠나게 된다. <초파리 돌보기>에서 30여년 동안 일을 하면서 가족을 돌보아온 원영은 세계 곳곳으로 수출되는 초파리를 실험실에서 키우는 일을 하며 드디어 멋진 직업을 구했다고 생각하지만 이후 탈모가 심해지고 몸이 쇠약해진다. <그만두는 사람들>에서는 문학계 권력 남용 문제를 고발했다가 ‘볼드모트’처럼 그 누구도 찾지 않는 작가가 되어버린 사연이 등장한다. 홀로 회색 종이에 인쇄된 단편 <마피아는 고개를 들어 서로를 확인해주세요>는 다른 단편들에 등장한 인물과 이름이 똑같은 캐릭터들이, 처음에는 선의를 가지고 모임을 꾸렸으나 어느새 서로 반목하고 미워하게 되는 이야기다. 이 미움과 슬픔이 어디서 생겨났는지 책은 정확히 알려준다. SNS에서 인기 좋은 번듯한 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정작 갈 곳 없는 10대 소녀들은 절에서 자꾸 떠나는 모습을 담담하게 그린 <단영>을 보며 지금 세상의 축소판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세상과 나의 관계

“어떤 사안에 대해서는 너무 꼼꼼하게 곱씹어도 사람이 돌아버릴 것 같거든요.”(17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