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드라이브 마이카'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인터뷰
2021-12-30
글 : 김혜리
영화가 침묵과 합이 잘 맞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마구치 류스케는 현대 일본영화를 장기간 대표해온 이른바 ‘4K 클럽’(고레에다 히로카즈, 가와세 나오미, 구로사와 기요시, 기타노 다케시)에 이어 2010년대 중반부터 세계 평단에서 비상한 주목을 받은 새로운 이름이다. 신작 <드라이브 마이 카>가 얻은 압도적 호평과 봉준호 감독의 찬사를 계기로 국내에 그의 전작들이 한꺼번에 소개되며 뒤늦게 맞춰진 퍼즐은, 이론이 정연하면 서도 그 이론과 영화적 실천을 실시간으로 일치시켜가는 침착한 작가의 초상을 가리키고 있다. 이를테면 <우연과 상상>은 <드 라이브 마이 카>의 각색을 허락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연락을 기다리는 동안 만든 옴니버스인데 <드라이브 마이 카>의 핵심이될 세 요소- 자동차, 섹스, 역할 놀이- 의 에튀드이자 하마구치 영화 세계의 친절한 입구이기도 하다.

‘존 카사베티스의 시간과 공간’이라는 제목의 학부 졸업논문을 쓰고 촬영 현장으로 갔던 하마구치 류스케는 구로사와 기요시가 교수진의 일원이었던 도쿄예술대학교 영상연구과 대학원으로 돌아와 공부했고, 이후 다큐멘터리와 워크숍 작업을 통해 배운 인간과 카메라의 관계를 극영화로 확장해왔다. 관객이 그의 영화가 캐릭터를 소개하고 이야기에 다가가는 경로가 어딘가 특이하 다고 느끼게 되는 연유일 것이다. 믿음과 의심, 진실과 정직이 교차하는 지점을 시네마로 옮기는 순간은 그의 기량이 빛나는 지점이다. 한편 침묵과 대화 사이 긴장의 탐구, 그리고 표면적으로 여성 주체를 내세우는 서사 ‘전략’은 자국의 거장 감독인 오즈 야스지로와 나루세 미키오를 계승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속에 여러 나라를 순회하며 <드라이브 마이 카>를 소개하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에게 <씨네21>은 그의 영화가 부르는 다양한 질문을 담은 편지를 보냈고, 성실한 답장을 받았다.

- 대학에서 영화 연구회에 들어가기 전에도 영화는 여러 예술 가운데 하마 구치 류스케 감독님에게 특별했나요? 만약 그랬다면 어떤 면에서 특별했습니까?

= 특별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가장 즐거운 오락 중 하나였습니다. 일상과는 완전히 다른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써 영화관을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남들처럼 할리우드영화를 보는 일이 많았습 니다. 초등학생 때 <백 투 더 퓨처>를 보고, ‘영화가 이렇게까지 재미 있을 수 있구나’ 하고 충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 학부 졸업 후 조감독 생활을 하다가 영화과 대학원으로 돌아간 것은 어떤 필요 때문이었나요?

= 대학 졸업 후, 상업영화의 조감독(견습), TV 경제 프로그램의 어시스 턴트 디렉터(AD)로 일했습니다. 조감독으로서는 완전히 무능했지만 AD 일은 1년 정도 하고 나니 점점 즐거워졌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는 달랐고 그렇게 2004년 말에 2005년부터 도쿄예 술대학에 영상연구과 대학원이 생긴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기타노 다케시 감독과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 교수진이라는 것을 알고, 이길- 감독이 되는 길- 만이 내게 남겨진 유일한 길이라는 마음으로 시험에 응했습니다. 2005년에 한번 낙방한 뒤, 2006년 합격했습니다.

- 대학원 시기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수업에서 스타니슬라브렘의 <솔라 리스>를 각색해 좋은 성적을 받았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어떤 각색이 었는지 어떤 점을 칭찬받았는지 소개해줄 수 있을까요?

= 제 나름대로는 렘 원작에 충실한 구성으로 각색했다고 생각합니다. 단, 거기에 마스무라 야스조와 같이 ‘점차 강해지는 여성’이라는 맛을 가미한 것이 독자적인 포인트가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을 특별히 칭찬받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학생들 공모 가운데 영화화 시나리오를 선발하는데, 선발된 이유는 예산 내에 영화화할 수 있을것 같다는 측면이 크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완성작을 본 구로사와 감독은 “물 만난 고기 같다”는 평가를 해주셨지만, 구체적으로 어떠한 지점에서 물 만난 고기 같았는지는 듣지 못했습니다.

- 2011년 동일본대지진 당시 감독님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셨는지 기억을 들려주십시오.

= 시부야를 걷고 있었습니다. 땅이 왜곡된 느낌이 들어서 현기증이 나나 싶었는데, 열대어숍의 수조가 첨벙첨벙 흔들리고 있는 걸 보고 지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잠시 후 진동이 가라앉아서 그길로 미용실에 머리를 자르러 갔습니다. 그 후, 방문한 카페 TV에서 (상공에서 찍은) 쓰나미 영상을 보았을 때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습니다.

- <바다의 소리>를 비롯한 다큐멘터리 작업이 감독님의 영화에 남긴 결정적인 변화나 흔적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은 무서운 일이라는 당연한 인식을 갖게 해주었다고 할까요? 다큐멘터리의 피사체가 되어준 쓰나미 피해자들을 섭외하기 위해 촬영 전부터 몇번이고 찾아가 우리에 대해 알려드리고 안심하실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카메라 앞에 서는 것에 대한 의의를 이해하고, 공포심을 줄여줄 수 있다면 피사체는 카메라 앞에서 훌륭히 스스로를 표현해줄 것입니다. 이 원칙은 그대로, 제가 원래 하고 있었던 픽션영화(극영화) 제작에도 적용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해피 아워>의 무게중심 찾기 워크숍 시퀀스와 <드라이브 마이 카>의 연극 워크숍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해피 아워>의 그것은 이야기 전개상 불필요하진 않지만, 어떻게 보면 영화예술에 대한 감독님의 해석을 극 중간에 넣어 관객과 공유하려는 대담한 시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예컨대 픽션영화들 역시 배우 신체의 영상 기록이라고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 정말 단순히 저에게 있어 이 시간이 ‘재미’있습니다. 이야기가 전개 되는 재미와는 다른 종류의 재미입니다. 몇번을 반복해서 볼 수 있는 재미는 오히려 이러한 장면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변화라 생각합 니다. 이러한 미세함을 감지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장면의 길이는 관객이 그 템포에 맞춰 감상 모드를 전환하기 위한 시간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참고로, ‘픽션영화 역시 배우 신체의 영상 기록’이라는 것은 제 주장일 뿐만 아니라 완전히 그러합니다.

- <해피 아워>를 찍으면서 비전문 배우가 배우가 되어가는 과정을 목격했다고도 할 수 있을까요? 구체적으로 변화를 인지한 순간의 기억이 있으신가요?

= 선행된 워크숍 단계에서 배우들을 캐스팅했고, 많은 대화를 거쳐 발탁된 분들입니다. 그들(4명의 주연배우뿐 아니라 워크숍 참가자 17명 모두를 지칭)은 처음부터 굉장히 매력적이었고, 촬영 내내 일관된 매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어떠한 지점에서 일어난 급격한 변화가 아닌, 스스로가 있는 그대로 카메라 앞에 서도 괜찮다는 것을 네 주연배우가 서서히 이해하는 과정이 수반되었다고 생각합니다.

- 그에 비해 <드라이브 마이 카>의 워크숍 신들은 처음부터 전문 배우들과 함께했습니다. 안톤 체호프에 대한 이해 여부를 떠나 이 작품에서 워크숍 장면들이 지금의 길이로 있어야 했던 가장 큰 필요성은 무엇이었나요?

= <드라이브 마이 카>의 리허설 장면은 이야기의 진행상 전부 필요한 부분이었다고 체감합니다. 어떠한 장면이든 없었다면 캐릭터의 심정 적인 발전을 잘못 파악하거나 믿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특정 장면을 배제한 <드라이브 마이 카>를 상상해보면 보다 명확해질 것입니다.

- 각본가이자 감독으로서 배우, 공간, 시간 가운데 어떤 요소에 가장 애착 하십니까?

= 배우입니다. 배우를 찍다 보면 자연스레 공간과 시간도 편성됩니다.

- 감독님에게 배우의 얼굴과 목소리는 영화의 어떤 구성 요소입니까? 관련해 저는 감독님이 선택하는 배우들의 음색 내지 사운드 믹싱이 독특하다고 생각합니다. 미성이라는 뜻이 아니라 촉감과 체취가 느껴지는 목소리들입니다. 음색으로 캐스팅을 결정한 적도 있나요?

= 목소리만으로 캐스팅을 한 적은 없습니다. 오디션에서 결정적인 것은 ‘대화가 잘되었는지 여부’일 것입니다. 왠지 서로 솔직히 이야기한것 같은 느낌이 들 때 일을 맡기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솔직히 말할 때 반드시 목소리에 초점을 두지는 않지만 우리는 분명 좋은 목소리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말해 배우의 신체가, 있는 그대로 솔직히 표현되었을 때 좋은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것이 연기에서 발생되기(나타나기) 위해서는 배우가 캐릭터를 온몸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커다란 움직임을 창출하는 감정의 움직임

- 일반적으로 사운드 디자이너에게 어떤 점을 요구하나요? <드라이브 마이 카>는 어떤 특수한 사운드의 목표가 있었나요?

= <아사코>의 사운드 디자이너 노무라 미키가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도 훌륭하게 사운드 디자인을 해주었습니다. 그녀가 대단한 점은 대사와 환경음을 동시에 들려주는 것과 같은 균형감을 갖췄다는 겁니다. 어느 한쪽을 들려주기 위해 다른 쪽의 음량을 줄이는 것이 아닌 양쪽 모두를 들려줄 법한 대역을 고르는 감각입니다. 이번에는 특히, 자동차의 엔진음을 시종일관 안정감 있게 들려주었다고 생각합니다.

- 여러 종류의 인간관계 가운데 감독님은 헤테로섹슈얼 남자와 여자의 관계에 가장 흥미를 느끼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관계가 이야기를 만드는데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 전체 필모그래피를 봐주시면 꼭 그렇지만도 않을 것입니다. 단, ‘연애’ 와 같은 요소는 적어도 영화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가운데 정말 유효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육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커다란 움직임을 창출하고, 가장 중요한 점은 연기자나 관객을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 감정에 대해 알고 있다는 점입니다.

- <해피 아워>나 <우연과 상상>의 경우 감독님은 우리가 그나마 솔직해지는 방법은 최대한 길게 대화하는 것뿐이라고 믿으시는 것 같습니다. 반면 <해피 아워>의 무게중심 훈련이나 <드라이브 마이 카>의 워크숍에서 보면 언어의 소통 능력은 본질적이지 않다고 보시는 것 같기도 합니다. 어느 쪽일까요?

= 언어가 불충분한(불완전한) 것임은 명백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커뮤니케이션 가운데 ‘성실한 관심’을 느끼고 있을 때에 한해 솔직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언어적인 커뮤니케이션 역시 이 기본적인 관심이 결여되어 있다면 매우 길게 이야기한들 의미가 없습니다. 다만 그 기반에 ‘관심’이 있다면 말을 사용하는 것은 최대한 길게 그 사람과 함께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때에 따라 언어를 통해 자신의 관심을 접하고 전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우연과 상상>의 세 번째 에피소드 <Once Again>은 단편으로서 완벽한 작품입니다. 롤 플레잉의 모티브에 대해 많은 질문을 받으셨을지 압니다만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사랑을 카피하다>(Certified Copy)를 보셨는지요? 또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이란 감독들의 자동차 내부 공간 연출 중 인상깊게 본 예가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 ‘완벽한 작품’이라는 말씀에 감사합니다. 하지만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 느끼는 감정에는 반드시 앞의 두 에피소드에서 느낀 마음이 작용 했을 것이라고 덧붙여 말하고 싶습니다. <사랑을 카피하다>는 당연히 보았고,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제가 당시 찍고 있었던 다큐멘터리와 비슷한 장면이 나와 놀라기도 했습니다. 키아로스타미의 모든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는데 특히 <텐>이 경이로웠 습니다.

- <우연과 상상>의 곳곳에서 한국의 홍상수 감독을 연상시키는 줌인을 보고 깜짝 놀라기도 하고 유쾌하기도 했습니다. 한국 시네필들 사이에는 “너 그러다가 홍상수한테 줌인당한다?”라는 농담도 있습니다. 다른 작품 에서 잘 쓰지 않는 빠른 줌인을 구사한 의도는 무엇이었나요?

= 홍상수 감독은 정말 존경하는 감독입니다. 단편 모음을 만들 때에 머릿속에 그의 <리스트>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줌은 여태까지(<우연과 상상> 이외의)의 제 작품에서도 사용해왔습니다. 현재 줌을 사용하면 분명 ‘홍상수네’라는 말을 들을 것입니다. 앞으로 그런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는 계속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용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줌은 영화 촬영 중에서도 노동이 덜 들어가는 ‘저렴한’ 기법으로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사용되기도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 이번의 ‘우연’이라는 테마와 잘 어우 러진다고 생각합니다.

-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의 <드라이브 마이 카>와 <셰헤라자데> 등 다른 단편을 직접 각색하기 전에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계와 하마구치 감독님의 관심사가 통하는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내나 연인이 사라짐으로써 삶의 블라인드 스폿이나 다른 차원으로 통하는 입구를 발견하는 남자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런 것 같습니다. <드라이브 마이 카> 외에도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와 감독님의 주제의식이 교차하는 점이 있을까요?

=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은 특히 20대 때 즐겨 읽었습니다. <태엽 감는 새 연대기>를 특히 좋아했기에 말씀해준 요소는 그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 스스로 제 영화를 ‘상실’의 영화로 그린 적은 없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에 관한 것 중 어쩌면 이야기 이상으로 흥미로운 부분이 그 ‘집필 방식’이 아닐까 합니다. 쓰고 있을 때의 몰입감, 그것이 항상 가능한 체력 유지 등의 요소입니다. 그것을 영화 만들기에 대입하면 도대체 어떠한 요소로 환원될까, 하고 생각합니다.

- <드라이브 마이 카>의 첫신을 보며 이상한 불안감을 느꼈습니다. 목소리를 내는 인물이 화면 속 여성인지 확신할 수 없고 그 얼굴도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불확실함으로 영화를 시작한 데에 어떤 의도가 있었습니까?

= 불확실성은 ‘잘 보고 듣지 않으면 안된다’는 상황을 만들어냅니다. 이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단, 항상 불확실한 채로 존재한다면 관객과 영화의 관계가 끊어지고 맙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확실성을 가져오는 타이밍은 유념하여 고를 필요가 있습니다. 실제로 영화의 시작은 모든 게 불확실하므로, 관객은 최대한의 주의를 기울입니다. 거기서는 불확실성이 최대치로 허용된다고 생각합니다.

- <드라이브 마이 카>의 연기에 대해 해외 관객과 일본 관객의 평가가 무척 다른 것 같습니다.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나요?(일본 관객의 평가가 상대적으로 박했다는 관찰.-편집자)

=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가 직접 받은 배우에 대한 평가는 국내외를 불문하고 어디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던 것 같습니다. 물론, (감독인) 저에게 말씀해주시는 것이므로 약간의 예의상의 평가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지만 저는 당연히 그들의 연기를 좋다고 생각하고 오케이 사인을 냅니다. 어쨌든 간에, 특히 연기에 관한 평가는 어디까지나 개개인의 주관적인 견해가 들어가므로 그 누구도 적절히 평가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개개인의 감상을 감사히 받아들이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촬영현장에서 납득이 될 만한 연기를 최대한 포착하는 일입니다.

- 자동차 안의 대화가 갖는 영화적 특별함에 대해 여러 인터뷰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식상하시겠지만 질문을 보태자면, 운전석과 조수석에 앉은 두사람의 대화와 운전석과 뒷좌석에 앉은 두 사람의 대화에는 영화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연과 상상>의 두 번째 에피소드에 서처럼 버스에서의 대화는 또 어떻게 다를까요?

= 영화적인지는 모르겠지만, 단순히 목소리가 ‘얼마나 잘 전달되는가’ 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앞뒤로 앉는다면 보다 큰 목소리로 말해야 합니다. 자기 스스로를 표현하는 것 이상으로 ‘상대방에게 전달한다’ 는 요소가 강해질 것입니다. 옆에 앉아 있으면, 목소리의 음량에 대한 배려는 적어지고, 스스로의 감정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이는 굉장히 일상적인 일이라 생각합니다. 버스와 자가용은 확실히 다릅니다. 버스는 공공장소이므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본래 어렵습니다. 하지만 자가용보다 내부에서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있으므로 보다 영화적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즈의 포지션에 카메라가 놓이는 순간

- 흔히 대사가 많은 영화는 비영화적이라는 모함을 받습니다. 여기에 대해 부담을 느낀 시기가 있었는지, 어떻게 돌파하셨는지 듣고 싶습니다.

= 영화가 침묵과 합이 잘 맞는 것은 당연하다고 봅니다. 앞서 말했듯이 목소리는 신체적인 상태를 많이 내포하고 있습니다. 즉 대사를 입에 올린다는 것은 배우의 내적 상태를 드러내는 것이며, 내적 상태가 캐릭터와 동떨어져 있다면 그 점 역시 노출되기 십상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관객의 존재가 명시되지 않은 채, 리얼리즘 연기가 요구되곤 하는 영화에 있어 보다 문제가 되기 쉽습니다. 대사가 많은 영화가 비영화적이라는 평가는 정확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영화가 이문제를 미처리 상태로 둔 채 종결시키는 것이 문제입니다. 두 가지 접근방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배우가 가능한 한 캐릭터를 이해하고 대사와 잘 만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 그리고 동시에 영화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관객에게 이해받는 것입니다.

- 감독님의 영화에서 바다와 강은 항상 스크린을 가로로 긋는 선, 일종의벽 너머에 있는 ‘세상의 끝’ 이미지라고 느껴왔습니다. 영화를 만들 때 물의 이미지를 어떻게 받아들이시는지 궁금합니다.

= 듣고 보니 확실히 그렇게 비쳐지는 느낌이 듭니다. 물에 대해 그다지 추상적인 생각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희 아버지께서 댐 기술자였기 때문에 강 주변에서 산 적이 많습니다. 마음속의 원초적 풍경으로서 제 영화에 물이 많이 나오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레지던스 아티스트로 미국과 일본에서 작업했던 경험이 영화에 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초청 예술가로 지내는 시간에는 어떤 특수함이 있나요?

= 저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의 직장에 따른 영향으로 여러 곳을 전전하 였습니다. 그러므로 타지에서 지낸다는 것이 사실 특수하다기보다도 어딘지 모르게 익숙해진 느낌도 듭니다. 단, 언어가 다르면 역시 이방 인으로서의 감각이 가장 강해집니다.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보여주는 다언어적 상황은 미국에서 생활했던 경험에서 유래된 부분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 감독님의 영화에는 인물이 카메라를 직접 바라보면서 말하는 숏이 있습 니다. 오즈 야스지로의 그것처럼요. 이렇게 찍어야 한다고 느끼시는 경우는 언제입니까?

= 배우의 집중력이 가장 높아졌을 때입니다. 그외의 상황에서는 이 포지션에 카메라를 두더라도 잘 찍히지 않습니다. 참고로 오즈의 포지 션은 로 포지션입니다. 그것은 누군가의 시선이라고 해석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습니다. 오즈의 포지션은 조금 더 엄청나게 영화 그대로를 파괴할 수 있다고 느낍니다.

- 제가 본 감독님의 영화에 대도시를 제외하고 여러 차례 등장하는 일본 지역으로는 센다이와 도호쿠가 있습니다. 사적으로 어떤 인상과 경험을 갖고 계신 지역인가요?

= 도호쿠 지역은 2011년부터 2013년 사이, 동일본대지진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머물렀습니다. 계속된 쓰나미 피해를 입은 연안부에 대한 취재는 도시에 산 적이 많은 저에게 신선한 시점을 제공해주었습 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전국구 뉴스에서 방송하는 것은 도쿄의 로컬 뉴스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과 크게 단절된 느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앞으로도 기억해두자고 생각했습니다.

- 제가 본 하마구치 감독님의 모든 영화에는 고가(육교) 형태의 보행 공간이 자주 등장하고 결정적인 인물의 만남과 교차가 그곳에서 일어납니다. 이런 형태의 공간에서 받는 강한 인상이 있는 걸까요?

= 특별히 강한 인상은 없습니다. 두개의 다른 것을 동시에 명확히 포착 하기 좋은 지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두개의 다른 것을 동시에 포착한다는 것은 영상의 기본적인 힘이 됩니다.

정당한 러닝타임을 찾아서

- 2시간대부터 5시간대까지, 단편 앤솔러지까지 포함하면 매우 다양한 길이의 영화를 만드셨습니다. 스토리마다 정당한 러닝타임이 있다고 생각 하시나요?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시나요?

= 저 역시 90분짜리 영화를 계속 만들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 다. 하지만 솔직히 현시점에서는 이야기의 시간을 제 것처럼 관리할수 없습니다. 영화 안에서 인물들의 행동원리를 존중하다보면 예정된 시간 안에 담아낼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이야기마다 정당한 러닝타임이 있나’라고 물으신다면 그럴 수도 있습니다. 단, 그저 길게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므로 변명이 되지 않도록 만들어 나가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 ‘몇년 후’, ‘몇 개월 후’라는 자막으로 시간을 축약하는 구성이 많습니다. 반면 플래시백은 제 기억에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시간의 흐름이나 밀도에 관해 어떤 취향이 있으신가요?

= 시간의 비약은 단순히 이야기를 위함입니다. <우연과 상상>을 예로 들면 짧은 기간 내에 갑자기 재회하는 것보다는 긴 시간이 흐른 뒤우연히 재회하는 것이 더 보편적이기에 시간을 축약했습니다. 말씀 하신 것처럼 플래시백을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영화 에서의 가역적인 시간 사용은 관객의 집중도를 떨어뜨립니다. 궁극적으로 난해한 영화만이 그 덫을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한정된 관객을 위한 영화가 되는 경향 또한 있습니다. 이러한 특성에 따라, 기본 적으로 일방적인 시간의 흐름을 제 영화에서는 자주 활용하고, 그 불가역성을 좋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불가역적인 시간의 흐름이 영화에서의 유일한 시간의 흐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 <우연과 상상>은 원래 7편짜리 단편 기획의 일부라고 들었습니다. 나머지 4편도 어떤 형태로든 차기작으로 보게 될까요?

= 그렇습니다. 두 작품씩 묶을지 네 작품을 하나로 할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이 프로젝트는 장편과의 균형을 통해 진행되는 프로젝트 입니다. 스스로 새로운 장편 기획이 정해지면, 현재 가지고 있는 이야기의 씨앗을 그것을 위해 필요한 도전을 포함하여 발전시켜나갈 것으로 생각합니다.

번역 선하윤(영화사 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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