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이 드문 숲길을 얼마나 달렸을까. 건물을 비추는 조명탑차의 환한 빛이 눈에 들어온다. 혹여 동시녹음에 방해가 될까봐 까치발을 하고 오픈 세트 안으로 들어가자 QR 코드와 열체크 기계가 기자를 반갑게 맞는다. 옆에 있던 김태진 프로듀서는 “보조 출연자만 90여명이 넘는다. 방역 지침에 따라 배우도 제작진도 촬영 전 PCR 검사를 받았다”고 귀띔해주었다. 해가 바뀌기 전인 2021년 12월2일,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유네스코 평화센터의 한 건물에서 단편 <방관자들>의 1회차 촬영이 진행되고 있었다. 긴 복도를 지나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방으로 들어가니 검은색 정장 차림의 국회의원, 기자 무리 수십명이 갈색 죄수복을 입은 단발머리 남자 정익제(고수)를 빙 둘러싸고 있었다. 십수명의 사람들의 틈을 겨우 비집고 들어가자 연신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리고 있는 기자들 뒤로 ‘태이고시 부지 불법 매매 특별조사위 청문회’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카메라 한대는 정익제에게 질문하는 김낙수 의원(이희준)에게, 또 다른 카메라는 증인석에 앉아 대답하는 정익제를 향해 있다.
펍지유니버스 세계관의 한축을 맡는 <방관자들>은 태이고시 1983년 호산 교도소 폭동 사건(단편 <그라운드 제로>(감독 김지용, 출연 마동석)) 이후 19년이 지난 2002년, 월드컵에 가려졌던 최악의 국회 청문회를 그려낸다. 정익제 의원이 태이고시의 부지 불법 매매 의혹과 연루돼 청문 대상자로 지목되고, 그의 오랜 친구인 김낙수 의원이 정 의원을 회유해 진실을 밝히려고 하는 이야기다. 김낙수가 “오랜만에 친구 만나니 좋습니다. 존댓말을 쓰는 게 좀 어색합니다만…”이라고 말하자, 정익제는 “의원님은 (태이고시 출신 미래 재단 장학생에) 떨어져서 소주 사드린 건 기억납니다. 그 소줏값 아직 안 갚으신 것도”라고 대답한다. 과거 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오랜 친구라는 사실이 짐작된다. 모니터 앞과 카메라를 정신없이 오가는 이종석 감독은 이희준, 고수 두 배우에게 조금씩 다른 설정을 주문하면서도 보조 출연자들에게 “실감나는 연기” 주문을 잊지 않는다. <더 킥>(2011), <협상>(2018) 등을 연출한 이종석 감독은 “태이고시 의혹과 관련해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전달”하는 게 “펍지유니버스 세계관 안에서의 <방관자들>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그라운드 제로>를 잇는 ‘진실 2부작’인 <방관자들>은 1월29일 오후 4시 <배틀그라운드> 한국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첫 공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