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0세대를 사로잡은 인기 드라마가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드라마 대본집 신간 목록을 보라. 최근 한국 드라마 대본집 출간은 인기작 여부를 입증하는 트렌드가 되었다고 할 정도로 붐이다. 이나은 작가의 <그 해 우리는> 대본집이 출간 전부터 베스트셀러가 된 것을 비롯해 연상호 감독과 최규석 작가가 함께 쓴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 각본집>, 한희정 작가의 <연모> 대본집, 김은희 작가의 <지리산> 대본집, 김지혜 작가의 <인간실격> 대본집 등이 최근 연이어 출간되었거나 출간을 앞두고 있다. 작가의 말, 용어정리, 등장인물 등 드라마 홈페이지에 실리는 간략한 부가 자료가 함께 실리는 일이 통상적이다.
연상호 감독과 최규석 작가가 원작 만화부터 각본까지 함께 작업한 <지옥 각본집>은 2월 출간예정으로, <지옥>의 6회차 각본과 연상호 감독 인터뷰, 팀 그리어슨 LA비평가협회 부회장의 리뷰가 실렸다. 지옥의 사자들이 난폭하게 등장해 죽을 사람을 예고하고 예고된 날짜에 죽음이 이루어지는 ‘시연’이라는 판타지적 설정이 화면에서 전개되기 시작하면 지문이 길게 장면을 묘사하는데, 글로 읽는 웹툰 같은 생생함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연상호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영화 한편 길이의 시나리오가 웹툰이 되고 다시 시리즈 각본이 되기까지의 작업 방식에 대해 자세하게 들려준다. 영화 시나리오로 따지면 대략 3, 4페이지 정도가 웹툰 1화 분량인데, 웹툰으로 연재하던 중반에 분량이 모자라서 시리즈의 4, 5, 6화에 해당하는 이야기를 추가했다고. 여러 플랫폼에서 창작물을 내놓는 연상호 감독의 분석과 판단이 각본에 더해 읽을거리를 제공한다.
오랜 취재 끝에 완성된 드라마 <스토브리그>의 무삭제판 대본집도 눈여겨볼 만하다. <스토브리그>는 이신화 작가의 데뷔작인데 대본이 완성되고 4년여의 시간이 지나 제작되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배우 남궁민이 대본을 보고 먼저 연락해 주인공인 백승수 단장 역할을 하고 싶어 했다는 후일담을 낳은 작품이기도 하다. 대본은 드라마보다 훨씬 건조한 장르물 같은 느낌이고, 스포츠 드라마보다 유머가 적은 <오피스>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하는데, 캐스팅이 이루어지면서 대본의 행간이 풍성하게 채워진 경우다. 이수연 작가의 <비밀의 숲> 대본집 역시 작가판으로, 방송에서 삭제된 분량이나 복선을 확인할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시즌1, 2 모두 출간되었다.
한국 드라마를 대표하는 김수현 작가의 ‘김수현 드라마 전집’은 초기 단막극부터 2010년대의 후기작에 이르기까지 총 7작품, 전 16권으로 출간되었다. <불꽃> <내 남자의 여자> <청춘의 덫>을 포함한 대표작을 아우른다. 마치 희곡처럼, 표지와 내지에서 배역만 안내되어 있고(포스터를 표지로 하거나 주요 배역을 연기한 배우들 이름이 포함된 인물 안내가 없다) 편집자 일러두기에서는 기호와 지시문 읽는 법을 포함해 “악보처럼 리듬이 존재한다”는 원칙에 따라 띄어쓰기 원칙, 맞춤법을 적용하지 않았다고 되어 있다. 한국 가정의 일상성을 표현하는 김수현 드라마의 리얼리즘은 대본에서 잘 드러나는데, 식사 장면에서의 생동감이 인상적이다. 입말을 살려 쓴 대사들을 통해 요리를 하거나 식사를 하며 대화가 오간다. <청춘의 덫>에서 주인공 윤희의 할머니 대사는 이렇다. “소금 한 숟갈만 더 너 비벼. 푹 뜨지 말고 나붓하게.” “옷 바꿔 입어라 어이. 시래기 지져. 옷 바꿔 입구 나와 씻어. 저녁 먹자. 끄으응.” 홈드라마에서 가장 스펙터클한 전장이 식탁과 거실임을 여실히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