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지금 우리 학교는' 유인수, 이유미, 임재혁
2022-02-09
글 : 임수연
사진 : 백종헌
명민한 악랄함, 디테일한 웃음

보편적으로 공유하는 장르 문법이 존재하는 세계에는 확실한 역할을 해줘야 하는 캐릭터들이 존재하기 마련 이다.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 귀남 역의 유인수, 나연 역의 이유미가 적시적소에서 시청자의 분노를 견인한 다면, 대수 역의 임재혁은 작품에서 가장 많은 웃음을 견인한다. 귀남 캐릭터 하나만 보기보다는 고등학교 생태계의 역학을 고민하는 명민함을 보여준 유인수, 대사의 호흡과 손짓 하나까지 동료 배우와 의논하는 디테일로 나연 캐릭터를 쌓아간 이유미, 작품을 위해 체중을 28kg 정도 늘렸다가 촬영 종료 후 다시 감량하는 놀라운 투지를 보여준 임재혁을 만났다.

임재혁, 이유미, 유인수(왼쪽부터)

- 재능 있는 신인배우들이 포진한 작품이라 오디션 때 어떤 모습을 보여줬는지 궁금하다.

유인수 오디션을 따로 보진 않았다. 원래 이재규 감독님과 인연이 있었다. 감독님과 만나는 자리에서 1시간 넘게 대화를 나누다가 “다음 작품 같이하자”라는 제안을 받았다. 2~3개월이 지난 후 <지금 우리 학교는> 에서 어떤 캐릭터를 연기하면 좋을지 생각하고 있다는 연락이 왔고, 시간이 좀더 흐른 후 귀남 역으로 확정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부터 고민도 걱정도 많아졌다. 캐릭터를 각색하는 과정에서 감독님이 내 의견도 물어보며 대본에 반영해주셨다. 아무래도 감독님이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는 나의 이면에서 악랄함을 꺼내보려고 하셨던 것 같다.

이유미 집에 있는 오디션용 교복을 입고 온조와 이삭의 대사로 오디션을 봤다. 그런데 내가 느끼기엔 망한 것 같더라. (웃음) 그래서 아예 기대를 안 하고 있었는데 시간이 좀 지난 뒤 오디션에 합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중에 감독님과 만난 미팅 자리에서 따로 여쭤보니 <박화영> 그리고 <어른들은 몰라요> 예고편을 봤다고 하시더라. 내 얼굴이 주는 힘이 나연 캐릭터를 잘 표현할 것 같다고 생각하셨단다.

임재혁 2019년 크리스마스이브에 오디션을 봤다. 오디션 경험이 많지 않았던 터라 너무 긴장돼서 우황청심환을 3알이나 먹었다. 그런데 너무 졸려서 비몽사몽으로 인사도 하기 전에 의자부터 찾고 축 가라앉은 톤으로 말을 했다. ‘에라, 모르겠다’라는 마음으로 그냥 막 연기했는데 그런 모습을 재미있게 보셨나 보다. 오디션을 본 날 바로 연락이 왔다.

- 이 드라마에서 가장 무서운 빌런은 귀남이다. 끔찍한 학교 폭력 가해자이자 좀비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유인수 원작에서부터 캐릭터가 분명해서 준비할 때 걱정이 많았다. 이 인물과 내가 생각하는 접점이 뚜렷하지 않았다. 그래서 캐릭터를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내가 가진 이면을 파고들기보다는 인간 자체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다. 단순히 평범하지 않은 사이코패스라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위기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행동을 많이 탐구했다. 좀비라는 가상의 설정이 실제가 된다면 그 안의 다양한 인간들이 보여줄 반응을 중점적으로 생각했다.

임재혁 인수는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배우들과 사적인 대화를 많이 나누지 않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유미도 마찬가지다.

유인수 메소드 연기를 추구하는 것은 아닌데 현장 자체가 참혹한 무드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도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갈 수 있었다. 극중 캐릭터들이 처한 상황을 돌이켜보면 웃고 떠들지 못하겠더라. 귀남이 이렇게까지 악랄하게 반응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누구보다 예민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볼 때 너무 예민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부분 조차 최대한 살려보려고 했다.

-규모가 큰 액션 시퀀스에 많이 등장하는 캐릭터다 보니 액션 연기에 대한 고민이 누구보다 컸겠다.

유인수 솔직히 연기보다 액션이 더 고민됐다. 전에 경험했던 액션은 애들끼리 치고받고 하는 정도였는데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는 액션이 극을 이끌어가는 신들도 있다. 그래서 무술팀에 개인적인 특훈이 필요하다고 따로 부탁드렸다. 나랑 똑같이 생긴 액션 대역 형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액션 팀원들이나 다른 배우들도 뒷모습만 보면 헷갈릴 정도로 닮았다. 내가 잘해내지 못해도 분신 같은 분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었다.

- 나연은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모습 때문에, 특히 경수(함성민)에게 저지른 일 때문에 시청자들에게 욕을 많이 먹을 것 같다. 현장에서도 어떻게 연기하면 나연이 더 얄밉게 보일 수 있을까 많이 고민했다고.

이유미 남들이 봤을 때는 “왜 저래?” 싶은 게 나연에겐 굉장히 당연하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욕을 한다면 어떤 욕을 들을 때 더 화가 나는지, 어느 부분에서 대사를 띄어 읽어야 더 화가 나는지 주변에 많이 물어봤다. 나연이 특히 무시하는 경수에게는 어떤 신체 부위를 칠 때 더 기분이 나쁜지도 물었다. 그런 식으로 다른 배우들과 함께 얄미움의 기준을 맞춰나갔다.

- 그럼 변론의 시간을 주겠다. 나연은 왜 그렇게 얄밉고 심지어 친구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짓까지 했을까. 방송실을 나와 혼자 울면서 복도를 걸을 때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유미 우리는 실제로 좀비를 만나는 경험을 할 수 없다. 좀비가 나타나기 전 나연은 그냥 친구들과 학교에서 떠도는 소문을 이야기하는 학생이었다. 그런데 좀비 바이러스가 퍼지는 환경에 처하면서 나연이 가진 어떤 면이 드러나는 거다. 나연은 겁이 많고 자기 자신을 지키고 싶어 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 다른 사람이 사랑해줬으면 한다. 어떠한 사람이라는 가치판단을 떠나 그냥 나연은 그런 사람이다. 나연이 울면서 방송실을 나갔을 땐 자신이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느낌을 받아서 무척 서러웠을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 자신을 사랑해주는 다른 사람은 없다는 이기적인 생각도 했을 거다.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게 고통스러워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고 생각하며 연기했다.

- 임재혁 배우는 이미 해병대로 군대를 갔다 왔더라. 현장에서 동생 배우들에게 큰형님 같았겠다.

임재혁 사실 내가 나이가 제일 많은 것은 아니다. 유미 배우랑 동갑인데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 한번은 감독님마저 “유미는 왜 재혁한테 반말을 하지? 아, 동갑이구나” 이러시는 거다. (웃음) 사실 이삭 역의 김주아 배우와 10살, 온조 역의 박지후 배우랑 9살 차이가 나서 걱정을 좀 했는데 현장에서는 똑같이 친구처럼 지냈다. 평상시에도 동생들이 나를 “대수! 대수!”라고 불렀다.

이유미 나이 차 때문에 우리에게 거리감을 느꼈다면 이모나 삼촌이라고 부르면서 장난도 못 친다. 재혁이, 나 그리고 준영 역의 안승균까지 94년생 모임이 있었다. 이름은 ‘구사일생’. (웃음) 그런데 다른 배우들이 우리를 너무 잘 따라주고 진짜 친구처럼 대해줘서 편하게 촬영할 수 있었다.

- 대수가 부르는 노래를 배우가 직접 만들었다고 들었다.

임재혁 극중 대수는 가수 지망생이다. 감독님이 “이 장면에서 대수가 노래를 해보면 어떨까? 저작권 문제가 있으니 노래도 직접 만들어보자” 라고 제안해주셔서 한번 해보겠다고 했다. 가사를 먼저 쓴 후 피아노 애플리케이션으로 만든 멜로디를 입혀 노래를 완성했다. 원래 꿈이 가수였기 때문에 곡을 만드는 게 아주 생소하진 않았다.

이유미 노래를 진짜 잘한다. 재능이 많은 엘리트다, 엘리트.

유인수 전설적인 존재였다. 2016년 연기과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한국예술종합학교 수석 입학 후 짧게 노래 부르는 UCC 영상이 엄청 유명했다.

임재혁 UCC? 2007년에서 왔어? (좌중 폭소)

이유미 UCC라니, 너무 오랜만에 들어!

유인수 아니, 유튜브! 내 입에서 왜 UCC가 나왔지?

- 오늘 모습을 보니 그동안 배우들끼리 얼마나 친해졌는지 알겠다. 혹시 처음 만났을 땐 어땠는지 기억나나.

임재혁 인수 배우가 21살일 때 독립영화를 같이 찍었다. 그때는 정말 소년 같았다. 지금은 전혀 소년 같지 않아서 그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다. (웃음) 사실 유미 배우는 제일 어려웠다. 배우들끼리 미팅했을 때 먼저 말을 걸어줬는데, 뭔가 동갑 같지 않은 거다. 액면가에서 차이가 나서 그런가. (웃음) 그런데 구사일생 모임을 통해 누구보다 가장 가까워졌다.

이유미 재혁을 처음 봤을 땐 엄청난 노력형 인간 같았다. 동갑이라는 걸 알고 나서는 먼저 다가가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친해지고 보니 누구보다 앞장서는 사람이었다. 인수는 처음 인사를 나눌 때 나이를 잘못 들어서 한동안 오빠인 줄 알았다. 나중에 자연스럽게 나이를 알게 된 후엔 말을 놨다. 인수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내가 몇번 오빠라고 불렀을 거다.

유인수 정확히 기억한다.

이유미 정말? 그땐 바로 얘기를 안 했잖아.

유인수 이건 내 입장에서 할 얘기도 있다. <지금 우리 학교는>에 캐스팅된 배우 중 유미 누나는 이미 알던 연예인 같은 사람 중 하나였다. 그동안 연기한 캐릭터들이 워낙 강렬했기 때문에 어려운 점도 없지 않아 있었다. 나를 오빠라고 부르는 걸 들을 때마다 내가 잘못 들은 거라고 생각했다. (웃음) 그거보다 중요한 얘기가 따로 있다. 내가 <지금 우리 학교는> 배우들의 인스타그램을 전부 팔로잉하고 있는데 유일하게 ‘맞팔’을 안 해준 두명 중 한명이었다.

이유미 맞팔해달라고 안 했잖아!

임재혁 말을 하지 그랬어~.

유인수 누나랑 진짜 맞팔하고 싶었는데 부끄러워서 말이 잘 안 나왔다. 그래서 청산 역의 (윤)찬영에게 몇번 부탁했다. 맞팔이 성사되게끔 네가 설계를 잘해보라고. (웃음) 현장에서 유미 누나랑 촬영을 같이한 적이 거의 없었다. 드디어 처음으로 같이 촬영을 하게 됐는데 그게 유미 누나의 마지막 촬영이었다. 한창 작품에 몰두하고 있어서 사회부적응자처럼 혼자 다니던 때였는데도 불구하고 그날만큼은 누나와 친해져야겠다는 생각에 누나가 분장하는 곳으로 갔다. 말을 걸고 싶은데 말이 잘 안 나왔다. 그래서 계속 앉아만 있었다. 누나는 기억 못할 수도 있다.

이유미 아니야, 기억나. 시력이 안 좋아서 얼굴이 잘 안 보였는데, 누가 와서 계속 앉아 있는 거다. (웃음) 저 사람 뭐지? 나중에 보니까 윤귀남 분장을 한 인수였다. 말이라도 걸어주지! 내가 분장받을 때 얼마나 말이 많은데!

유인수 그렇게 사람들과 수다 떠는 모습을 계속 지켜만 보고 있었다. (웃음) 그런데 누나는 이미 사람들을 편하게 해주는 태도를 먼저 취하는 사람이더라. 어느 순간부터는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결국 맞팔도 해주고. (웃음)

이유미 내가 계정을 먼저 찾아서 했어!

유인수 따로 얘기도 안 했는데 누나가 먼저 날 팔로잉했다. 너무 기뻐서 그날 찬영이 만나서 축배를 들었다. (좌중 폭소) 찬영이에게 “유미 누나랑 정말 맞팔하고 싶은데 얘기를 못 꺼내겠다”라는 얘기를 맨날 했거든. 정작 현장에서 찬영이가 와서 빨리 말을 걸어보라고 하면 주저하고 말이야.

- 인스타그램에 이렇게 깊은 서사가 숨겨져 있을 줄이야. (웃음) 드라마를 보고 배우들을 사랑하게 될 분들에겐 이런 비하인드가 정말 소중할 것이다. 혹시 우리가 앞으로 또 만나볼 수 있는 작품이 있나.

유인수 tvN에서 방영예정인 <환혼>이라는 드라마를 찍고 있다. 사극이라 지금 머리를 길렀다.

이유미 이미 촬영을 마친 영화 <우리는 천국에 갈 순 없지만 사랑은 할 수 있겠지>가 있다.

임재혁 음…. 열심히 해서 좋은 작품으로 인사드릴 수 있도록 하겠다.

- 드라마가 공개되면 러브콜이 많이 들어올 것 같다. 노래도 잘하고 심지어 군대도 해결한 준비된 인재 아닌가.

이유미 재혁은 <너의 목소리가 보여>나 <복면가왕>도 나올 수 있어! 와, 상상해보니 너무 좋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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