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의 <아가씨> 사진집 <아가씨의 순간들>(플레인 아카이브 펴냄)이 출간된다. 책이 또 나온다고?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에 관한 서적은 현재 <아가씨>의 프로덕션 과정 전반을 소개하고 비평가들의 글을 엮은 공식 메이킹북 <아가씨 아카입>(2017, 그책 펴냄)이 출간된 상태다. 사실 <아가씨 가까이>(2016, 그책 펴냄)도 있지만 이는 박찬욱 감독의 첫 번째 개인 사진집이다. 두 책 모두 <아가씨> 촬영 현장 사진이 실려 있지만 <아가씨의 순간들>이 앞선 두권의 책과 다른 점은 촬영 현장을 공식 기록한 이재혁 스틸 작가의 사진으로만 이뤄진 사진집이라는 점이다. 물론 감수는 박찬욱 감독이 직접 맡았다. 국내에 출간된 영화 관련 서적 중 사진집 형태로 출간되는 책은 드물다는 점에서 귀한 아카이브 자료가 아닐 수 없다. 간단하게 사진집의 얼개를 소개하고 책에 실린 촬영 현장 몇컷을 최초로 공개한다. 스틸 작가라는 직업이 낯선 독자들도 있을 텐데 이번 사진집에 실린 사진을 직접 찍은 이재혁 스틸 작가를 만나 <아가씨>의 촬영 현장을 사진으로 기록하던 당시 이야기를 들어봤다.
함부로 대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급스러운 재질과 디자인, 그리고 정성이 묻어나는 편집이다. 독자들은 히데코(김민희)를 바라보며 “여태껏 내 손으로 씻기고 입힌 것들 중에 이만큼 이쁜 것이 있었나”라고 스스로 묻던 숙희(김태리)의 심정으로 사진집 <아가씨의 순간들>을 바라보게 될 것 같다. 이 책은 히데코 버전과 숙희 버전, 총 2종으로 표지 디자인을 달리해서 제작됐다. 벚꽃나무에 매달린 채 생각에 잠겨 먼 곳을 응시하는 히데코의 모습이 실린 히데코 버전은 영화의 키컬러 중 하나인 보라색을 채택했다. 좀더 과감한 디자인 시도가 엿보이는 숙희 버전은 박찬욱 감독이 여러 표지 시안 가운데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추천한 것이라고 한다. 책 구성은 영화의 구조를 그대로 가져와 총 3부로 구분되어 있다. 1부에는 히데코의 방을 엿보는 숙희의 모습으로 시작해서 영화 내내 인물 사이에 오가는 시선의 교차를 느낄 수 있는 배우들의 표정을 포착한 사진들이 영화 순서와 동일하게 실려 있다. 마치 정지화면 모음 같은 모든 등장인물들을 담은 사진을 보다가 2부에 이르면 이재혁 작가의 간단한 코멘트와 함께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촬영 현장 속으로 들어가볼 수 있는 사진들이 보인다.
참고로 <아가씨의 순간들>은 두 버전의 주문 방식이 조금 다르다. 2월에 프리오더가 시작되고 3월에 발간될 계획인데, 히데코 버전은 수량 한정, 숙희 버전은 기간 한정 주문 생산 방식이 될 예정이다. 자세한 출간 내용은 플레인 아카이브 인스타그램, 뉴스레터 등을 통해 확인 가능하다.
사진집의 2부에는 이재혁 스틸 작가가 직접 쓴 글과 사진이 실려 있는데 영화의 장면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1부 사진과 달리 2부에 실린 사진은 촬영장의 생생함을 조금 더 자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영화에 담기지 않았거나 혹은 영화에 담긴 장면과 조금 다른 앵글에서 현장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사진들이 많다. 그중 이재혁 작가는 히데코가 벚꽃나무에 목을 매려던 순간에 숙희가 달려드는 장면을 촬영하던 때를 생생하게 기억해냈다. “촬영장에서 김태리 배우가 연기하는 모습을 보며 눈물을 쏟았다. 나는 이미 배우가 슛 들어가기 전에 어떤 몰입을 하고 있는지 옆에서 보고 있었다. 또 컷 사인이 떨어진 이후에도 배우가 어떤 여운을 안고 흐느끼고 있는지를 보게 되니 함께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숙희는 이제까지 자기가 속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상황이 뒤집혔다는 걸 처음 알게 된다. 너무나 순박한 그 순간의 감정이 담겨 있다.” 이재혁 작가는 <아가씨> 이후 김태리 배우와 <1987> <외계+인> 현장에서도 만났는데 이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꼽았다.
극중 히데코가 백작과 위장 결혼을 하러 떠난 곳에서 입고 등장하는 기모노(오른쪽)는 현지에서 섭외한 기모노 전문 장인이 직접 입혀준 의상이다. 아름다운 배우의 모습을 기록해놓자는 박찬욱 감독의 제안으로 찍었다. 이재혁 작가가 책에 남긴 코멘트에 따르면, “결혼 예복인 이 기모노를 입고 벗는 것을 도와주러 온 전문가가 김민희 배우의 스타일이 탁월하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이처럼 2부에 실린 현장 메이킹 스틸은 박찬욱 감독과 제작진이 히데코와 숙희의 여정을 따라가며 카메라에 담아내던 현장의 생생함을 독자에게 전달해준다. 말 그대로 ‘아가씨의 순간들’을 포착하던 현장이다. 이어지는 책의 3부에는 박찬욱 감독과 이재혁 작가의 대담 인터뷰와 국제갤러리의 윤혜정 이사의 에세이가 실린다. 박찬욱 감독은 책 말미에 <아가씨의 순간들>이 독자들에게 “영화 현장을 넓은 프레임으로 찍어놓으면 이런 곳이다, 라는 현장 공기를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