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제72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폐막 황금곰상에 <알카라스>, 홍상수 감독 <소설가의 영화> 은곰상 수상
2022-03-03
글 : 한주연 (베를린 통신원)
여성 영화인들 주요 부문 휩쓸다

제72회 베를린국제영화제(이하 베를린영화제)가 2월10일부터 20일까지 열렸다. 카를라 시몬 감독의 <알카라스>가 최고상인 황금곰상을 수상했고, 홍상수 감독의 27번째 장편영화 <소설가의 영화>가 은곰상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며 베를린에서의 영화 축제는 막을 내렸다. 올해 경쟁부문 출품작을 중심으로 영화제의 경향을 짚어보았고, <소설가의 영화> 현지 반응 등을 살폈다.

황금곰상 수상한 <알카라스> 카를라 시몬 감독 (ⓒPiero Chiussi/Berlinale2022)

제72회 베를린영화제가 무사히 막을 내렸다. 이번엔 <식스 센스>의 감독 M. 나이트 샤말란이 심사위원단을 이끌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처럼 흥이 가득한 파티는 아니지만 마지노선은 지켰다는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은 “베를린영화제는 이번에 자기 목소리를 냈다. 지난해의 몰락에서 부활했다. 상처와 상실로 아우라와 의미를 잃긴 했지만”이라고 평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방역 수칙 때문에 관객은 반으로 줄고 출품 영화도 줄었지만 영화계의 봄을 준비하는 자리였다. 코로나 오미크론 확산 중에 영화제를 강행하는 건 모험이었다. 베를린영화제를 빛내줄 명예황금곰상의 배우 이자벨 위페르가 출국 직전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는 악재도 뒤따랐다. 할리우드 스타도 가뭄에 콩 나듯 적었다. 스페셜 부문에서 엠마 톰슨(<굿 럭 투 유, 레오 그란데>)이 겨우 체면을 세워줬다. 대신 프랑스 디바들이 베를린의 레드 카펫을 빛냈다. 이자벨 아자니, 쥘리에트 비노슈, 샤를로트 갱스부르가 경쟁부문 영화들에 출연했다. 또한 개막작인 <페터 폰 칸트>를 비롯해 프랑스영화가 경쟁부문에 5편이나 올라 강세를 보였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지난 10여년간 강인한 여성 캐릭터가 두드러졌던 추세가 강화된 점이다. 용감하고 강한 여성주인공은 거의 모든 작품에 등장했다. 여성감독의 두각도 눈에 띈다. 황금곰상을 비롯해 심사위원상, 감독상, 연기상, 각본상까지 여성 영화인들이 반 이상을 휩쓸었다. 한편 이번 영화제에선 인간관계에 중심을 둔 영화가 주를 이뤘다. 영화 속 공간도 도시보다는 시골이 많았다. 팬데믹 시대의 화두를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이다. 경쟁작 영화들은 인간관계에서 생기는 고민, 갈등 등 부정적인 사건과 감정도 다뤘지만 서로에 대한 따뜻함, 연민, 공감, 유대, 연대의 감정에 큰 비중을 뒀다. 가족과의 유대감뿐 아니라 타인을 감싸안는 포용과 이해의 감정이 스크린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졌다.

<알카라스>

황금곰상 수상작인 카를라 시몬 감독의 <알카라스>는 농촌 가족공동체의 현실을 밝고 가벼운 터치로 그렸지만 내용은 농촌 공동체의 파괴를 그리고 있다. 농촌의 대가족 속에서 자란 카를라 시몬 감독의 경험이 영화에 녹아 있다. 영화 제목인 ‘알카라스’는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지명이다. 영화는 개구쟁이들이 길에 방치된 폐자동차 안에서 재밌게 노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 자동차를 견인차가 끌고 가는 바람에 아이들은 놀이터를 잃는다. 이 지역은 태양열집열판 설치가 한창이고, 이를 위해 마을 주민들은 농지를 팔고 있다. 농지를 포기하려는 고모네와 농사를 고수하는 아버지가 갈등 중이다. 할아버지가 젊은 시절 지주와계약서 없이 구두로 계약한 농지에서 과수원을 꾸리는 솔레 가족은 한여름 복숭아 따기에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일당 일꾼에다 가족 모두 일손을 보탠다. 놀기 바쁜 아이들, 마을 축제 때 무대에 올릴 걸그룹 춤을 연습하는 중학생 딸과 유기농법을 실험해보며 농업에 관심을 있는 고등학생 아들, 옛 노래를 부르며 지난날을 회고하는 할아버지, 살림을 도맡아 하는 엄마, 가장으로 농사를 꾸려나가느라 지친 아버지까지 가족 구성원의 일상이 어우러지며 마치 실제 가족을 찍은 현실 다큐멘터리 같다. 영화는 고된 노동, 농촌이 처한 부조리한 현실을 조명하는 동시에 가족의 일상을 집요하게 보여줌으로써 가족공동체의 이상향을 제시한다. 이는 영화 안에서 대조를 이룬다. 영화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지만 분위기는 밝고 가볍다. 영화엔 가족간에 흐르는 따뜻함,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주는 생동감이 살아 있다. 배우들은 모두 전문 배우가 아닌 일반인이고, 촬영장 근처 마을에서 캐스팅했다. 이들은 촬영 들어가기 전 2~3개월 동안 합숙했다고 한다.

현지 언론도 황금곰상에 대해 수긍하는 분위기다. 독일 일간 <쥐트도이체 차이퉁>은 “복숭아를 따고 담고 운반하는 과정을 보면 창조의 보존은 저절로 이뤄지는 게 아닌 것 같다. 에덴동산은 꽤 잔인한 노동 현장이다. 이만큼 설득력을 발휘하는 황금곰상 영화는 많지 않다”라고 호평했다.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농촌 개발에 따른 비극을 다룬 영화는 또 있었다. 이예군 감독의 <리턴 투 더스트>의 카메라는 느리고 집요한 시선으로 극빈한 농부 부부가 농사짓고 집짓는 모습을 따라간다. 노동의 고단함, 그 안에서 서로에 대한 배려와 따뜻한 마음을 거의 대사 없이 보여준다. 베를린 공영방송 <에르베베>는 “단단한 스타일에 고요한 영화”라고 평했다.

<라비예 쿠르나즈 vs. 조지 W. 부시>

독일영화로는 안드레아스 드레센 감독의 <라비예 쿠르나즈 vs. 조지 W. 부시>가 주연상과 각본상을 따냈다. 주연상을 수상한 멜템 캅탄은 코미디언으로 영화에는 처음 출연했다. 9·11 테러 직후 파키스탄에 갔다가 관타나모에 끌려간 독일계 터키인 무라트 쿠르나즈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어머니로 분해 열연을 펼쳤다. 아들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인권변호사 도케와 함께 독일과 미국을 오가던 5년간의 희로애락의 여정을 극으로 엮었다. 라비예 쿠르나즈는 심각하고 좌절의 순간에도 가볍고 긍정적인 태도와 유머로 어려운 순간을 넘기며 포기하지 않는다. 영화 산업지 <버라이어티>는 “<라비예 쿠르나즈 vs. 조지 W. 부시>는 열혈 모성의 이야기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중요하고 복잡한 사회 담론에 대한 작은 기여”라고 평했다.

<로브 오브 젬스>

올해 베를린영화제는 각자가 통제할 수 없는 사회·정치적 사건으로 개인에게 깊이 각인된 트라우마가 일상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보여주는 장이기도 했다. 심사위원상을 받은 <로브 오브 젬스>도 그런 작품 중 하나다. 멕시코 사회의 마약범죄 문제가 각 개인에게 어떤 양상으로 나타나는지 세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 보여준다. 행방불명된 여동생을 찾는 여성, 이혼 위기에 놓인 부르주아 중년 여성, 범죄 세계에 빠진 아들을 구하려는 경찰 엄마가 서로 느슨하게 연결되고, 각 인물들이 처한 상황은 멕시코의 답답하고 슬픈 현실을 암시한다. <에르베베>는 <로브 오브 젬스>를 “감동적이고 우아하고 비가적”이라고 평했다. 인도네시아영화 <나나>에서는 주인공의 수수께끼 같은 꿈을 통해 무의식 속 트라우마를 보여준다. 이를 위해 꿈과 현실을 교차시키며 궁금증을 유발시킨다. 주인공이 1960년대 내전에 아버지와 남편을 잃은 아픔을 안고 살아간다는 것을 알게 된다. 유복한 가정의 안주인 나나는 단아한 외모에 정적인 성격이지만 남편의 외도로 마음고생을 한다. 나나는 오히려 남편의 애인과 마음을 터놓는 친구가 되어 자기의 길을 찾아간다. 나나의 연적이자 동지 역을 맡았던 로라 바수키가 최고조연상을 수상했다. 또 <원 이어, 원 나이트>는 2015년 파리 바타클랑 극장의 생존자 커플의 일상에서 트라우마가 나타나는 양상을 밀착된 카메라 시선으로 보여준다.

그 밖에도 아트하우스영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실험적 작품도 눈에 띈다. 네오리얼리즘의 대가 파올로 타비아니 감독의 <레오노라 아디오>와 캄보디아 출신의 프랑스 감독 리티 판의 <에브리싱 윌 비 오케이>가 그런 영화다. 리티 판 감독의 영화는 직접 손으로 나무를 조각하고 찰흙으로 빚은 미니어처 동물과 사람을 등장인물로 내세우고 청각 효과음과 내레이션, 20세기 전쟁과 테러의 자료화면을 엮어 디스토피아를 제시하며 관객을 흔들어 깨운다. 일간 <베를리너 차이퉁>은 “과거와 공동의 역사를 기억함으로써 자유를 깨닫게 하는 영화”이며 “현대적이고 시각적, 시적 작품”이라고 호평했다. 타비아니 감독의 작품은 노벨문학상 수상자 루이지 피란델로의 유골함을 운반하며 생기는 에피소드를 그리며 여러 상념을 다양한 이미지로 그린다. 피란델로가 파시스트와 공조했다는 비난을 조명하듯 2차대전 자료화면도 나온다. 수상은 못했지만 특별언급을 받은 <어 피스 오브 스카이>는 시사회와 언론의 반응이 좋았다. 이 작품은 스위스 산골 지방의 한 부부가 겪는 애별리고의 아픔을 극도로 절제된 방식으로 보여준다. 장마다 스위스의 아름다운 절경을 배경으로 울리는 합창단의 노래는 그리스 비극을 떠올리게 한다. 일간 <타게스슈피겔>은 “이 요소가 극의 차원을 끌어올린다”고 했고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은 “감독이 영화라는 도구를 사용해 이뤄낸 진지함은 이번 경쟁작 대부분에선 찾아보기 힘들었다”고 썼다.

현지 언론은 이번 베를린영화제는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영화가 적었다고 평했다. 그래도 개인의 삶과 관계가 정치·사회적 맥락을 떠나기 어렵다는 걸 암시하는 영화는 꽤 있었다. 늘 그렇듯 상은 그냥 상일 뿐 수상작과 비수상작의 우열에 대한 논란은 남는다. 지속 가능성, 다양성, 소통을 지향하는 베를린영화제의 모토처럼 이번 영화제도 세상을 보는 다양한 방식을 공유하는 장이었다. 영화계의 봄 채비가 끝났다. 곧 봄이다.

베를린국제영화제 주요 부문 수상 결과

황금곰상 <알카라스> 카를라 시몬

은곰상 심사위원대상 <소설가의 영화> 홍상수

은곰상 심사위원상 <로브 오브 젬스> 나탈리아 로페즈

은곰상 감독상 <보스 사이드 오브 더 블레이트> 클레르 드니

은곰상 주연연기상 <라비예 쿠르나즈 vs. 조지 W. 부시> 멜템 캅탄

은곰상 조연연기상 <비포, 나우 & 댄> 로라 바수키

은곰상 각본상 <라비예 쿠르나즈 vs. 조지 W. 부시> 라일라 슈틸러

황금곰상 명예황금곰상 이자벨 위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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