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감독의 <소설가의 영화>가 베를린영화제 은곰상 심사위원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번에 받은 상의 순위를 굳이 따져보자면 황금곰상 다음 2등에 해당한다. 홍 감독은 3년 연속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 초대돼 매번 수상했다. 경쟁부문에 초대받은 건 이번이 여섯 번째다. <에르베베>는 <소설가의 영화>에 대해 “영화 자체로 빛나는 대가의 축제다. 그런데도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가벼운 코미디”라고 평했다. 일간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은 “홍 감독 영화는 평범함과 고귀함 사이의 경계 위에서 균형을 잡는다. 이것이 과거의 작가주의 영화와 구분되는 지점이며 그의 영화에서 가장 뛰어난 지점이다”라고 호평했다. 일간 <타게스슈피겔>은 “홍상수 감독 영화는 영화 준비 작업인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진짜 배우가 나타나기 전에 첫 카메라 테스트를 하는 것 같다. 홍 감독의 마술은 방심하는 순간에 그런 장면들이 지나간다는 데 있다. 그러는 동안 연습이 아니라 오히려 진짜 실제 상황 같은 느낌을 준다”고 평했다.
<소설가의 영화>는 소설가 준희(이혜영)가 영화를 찍게 된 우연한 상황과 준비 과정에 대한 영화다. 이 과정은 인간관계에서 시작된다. 영화는 소설가 준희가 연락이 끊어졌던 후배를 찾아가면서 시작한다. 후배(서영화)는 서울 외곽에서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그 후 일어나는 사건과 대화도 실제 삶처럼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준희는 이날 우연히 연기를 그만둔 배우 길수(김민희)와 영화를 전공하는 길수의 조카를 만나 즉흥적으로 단편영화 제작 계획에 들어간다.
영화는 새로운 인간관계와 교류를 통해 영감을 받고 창작으로 나아가는 과정, 그리고 이 인간관계의 흐름과 역동성을 잘 보여준다. 또 홍 감독은 대사에서 자신의 예술과 삶에 대한 태도를 넌지시 비춘다. 준희가 우연히 만난 영화감독의 입을 통해 ‘너무 애쓰지 않고 삶을 잘 살아내서 삶 자체가 예술이 되게 하겠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준희가 타워 망원경을 통해 멀리 떨어진 바깥을 조망하는 장면도 의미심장하다. 그리고 영화 속 영화를 통해 ‘영화란 무엇인가’, ‘영화는 무엇을 표현하고, 표현할 수 없는가’ 하는 질문도 던진다.
가장 큰 반전은 색깔에 있다. 흑백영화 속 단편영화는 잠시 관객을 색의 세계로 데려간다. 약간의 혼란과 ‘우리가 정말 잊고 사는 게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홍 감독은 베를린영화제 기자회견에서 “영화 안에 단계를 두려는 생각을 했다. 그 단계들은 듣기, 보기, 냄새 맡기, 먹기, 잠들기다. 그리고 마지막 가상현실에서 컬러가 나오는데 이게 모두 일종의 단계의 발전이다”라고 설명했다. 영화 끝 무렵 준희와 촬영, 편집에 함께 작업했던 길수 조카의 대사를 통해 홍 감독의 편집 과정이 어떤지 엿볼 수 있다. 길수 조카는 준희가 첫 단편영화 하나를 만드는 데 오랫동안 꼼꼼하게 확인하며 편집했다고 전한다. 단순해 보이고 자연스러워 보이는 장면 하나에 세심한 공이 들어가 있다는 걸 유추할 수 있다.
한편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 프로그래머 마크 페란슨의 생각이 흥미롭다. 페란손은 “홍상수 영화 하나하나는 한 건물의 벽돌과 같다. 각 영화의 차이는 줄거리나 인물에 있는 게 아니라 각 영화를 구별 짓는 아주 작은 것들이다. 이것이 그의 영화를 유일무이하게 한다. 영화들이 서로 어떤 관계에 있는지 알고, 그 관계들을 더 큰 프로젝트의 부분들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