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석아 오랜만이다. 나 황경민이야. 잘 지내지?’ ‘그때 그날, 기억나? 너도 함께해야지.’ 피로 새긴 듯한 붉은 글씨가 살인 현장을 찾은 형사와 경찰들을 맞는다. 경민(김동욱)이 말하는 ‘그날’에는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왜 경민은 종석(김성규)이 자신과 함께하길 바라는 것일까.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돼지의 왕>은 20여년 전 발생한 학교 폭력의 잔해가 현재의 인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들여다보는 추적 스릴러 드라마다. 배우 김동욱은 우연히 중학교 시절의 과거를 마주한 뒤로 연쇄살인을 벌이기 시작하는 황경민을 연기한다. “<돼지의 왕>은 지금까지의 출연작 중 피를 가장 많이 묻히고 나온 작품이 아닌가 싶다.” 얼굴 한켠에 잔뜩 피를 묻힌 채 싸늘한 눈빛을 보내는 경민을 보며, 최근 드라마 <그 남자의 기억법> <너는 나의 봄>을 포함해 퇴마 스릴러 <손 the guest>에서도 보지 못한 김동욱의 새로운 얼굴을 <돼지의 왕>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 짐작했다.
- 원작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을 재밌게 봤다고.
= 하고자 하는 이야기, 보여주고 싶은 것이 확실한 이야기라 재밌게 봤다. 그래서 처음 드라마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도 긍정적이었다.
- 원작과 드라마는 어떤 차이가 있다고 보나.
= 드라마 <돼지의 왕>은 완전한 각색과 원작 그 사이에 놓인 작품이라 생각한다. 대부분의 드라마가 그렇듯 처음부터 완성된 상태의 대본을 받을 수 없고 배우와 제작진이 참여하며 새롭게 변하는 지점들이 있기 때문에, 촬영이 끝나지 않은 지금도 계속 같이 만들어가는 중이다. 그 중간점을 어떻게 찾아가면 좋을지 찍으면서도 고민이 많았다.
- 예전 인터뷰를 보니 평소 공포물을 잘 보지 못한다던데 스릴러 장르는 어떤가.
= 호러나 공포는 즐겨보질 않지만 범죄 스릴러물은 좋아한다.
- 장르물에 대한 애정이 <돼지의 왕>을 택하는 데 영향을 미쳤나.
= 그보다는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 이 작품이 내게 호기심을 유발하느냐 아니냐가 큰 영향을 미치는 편이다. <돼지의 왕>은 ‘장르물에 참여해보고 싶다, 장르물 대본을 받아보고 싶다’고 생각할 시기에 만나게 된 반가운 작품이었다.
- 황경민은 어떤 인물이라고 해석했나. 그동안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이 정도로 극단적인 캐릭터는 처음 연기하는 셈이다.
= 벼랑 끝에 몰린 안쓰러운 친구다. 연기하면서도 안타깝고 속상했다. 경민이의 선택과 행동에 완벽히 공감했다고 하긴 어렵다. 그럼에도 경민이의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했다. 대본에 쓰인 것을 토대로 경민이가 왜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고, 왜 이런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는지 파악해나갔다. 경민이의 감정과 고통을 느끼게 되는 이유를 생각하다보면 그것이 배우로서 납득이 되면서 연기할 때 저절로 녹아나온다. 인물의 감정이 드러나야 하는 장면에서는 더더욱 과거와 현재 이 인물이 처한 상태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경민이의 마음을 살피는 한편으로 이 작품을 보는 시청자들이 경민이와 같은 선택을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다. 그렇게 두 가지 마음을 토대로 캐릭터를 분석하고 연기했다.
- 20년 전 어린 시절과 경민이가 성장한 뒤의 모습이 작품에 함께 등장한다. 연기할 때 이러한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 주요했을 것 같은데.
= 인물의 전사가 있는 게 도움이 되지만 때론 더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경민이의 예전 상황을 바탕으로 현재의 변화 과정을 보여주려고 했는데 생각처럼 쉽진 않았다. 다만 경민이의 학창 시절을 보면서 공감되는 지점이 있었다. 지금 누군가 내 곁에 있다는 게 얼마나 힘이 되는지, 많은 친구들이 내 옆에 있는 것보다 마음을 터놓고 지낼 수 있는 친구 한명이 곁에 있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성인이 된 지금 더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그 당시에는 그저 어울려 노는 게 재밌었다면 지금은 그 관계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 거지. 그래서 경민이가 처한 상황을 더 직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 작품 밖의 이야기도 해보자. 몇달 전 출연한 <SNL 코리아>가 화제였다. 오랜만에 김동욱표 코믹 연기를 볼 수 있었는데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 코믹 연기는 내가 제일 잘하는 분야라는 자부심이 있다. (웃음) 예전에도 <SNL 코리아>에 나갔었다. 그 시절이 굉장히 재밌고 좋았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이번에도 새로운 크루진과 재밌게 촬영하고 싶어 출연했는데 예전 공연할 때 생각도 나고 좋더라. 코너에 관계없이 전체적으로 다 재밌었는데 확실히 스튜디오에서 라이브로 진행한 콘텐츠가 더 생동감 있고 즐거웠다. 좋은 작품을 만난다면 코믹 연기를 다시 해볼 의향도 있다.
- <돼지의 왕> 외에 예정된 차기작이 있나.
= <돼지의 왕>이 완벽히 끝난 후에야 제대로 결정할 수 있을 것 같다. 올해는 최대한 공백을 길게 갖지 않고 일하고 싶은 바람이 있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꾸준히 작품을 찍고 작품을 통해 팬들을 만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