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맷 리브스의 '더 배트맨'이 이전 '배트맨' 영화들과 다른 심리적 사실성을 획득하는 방법
2022-03-17
글 : 듀나 (영화평론가·SF소설가)
다소 하찮고 꽤나 우스꽝스러운

솔직히 까놓고 말해 <배트맨> 영화는 지나치게 많다. 이런 생각을 거의 20년 가까이 해왔다. 크리스토퍼 놀란이 새 <배트맨> 영화를 만든다는 소문이 돌 때부터다. 그리 멀지 않은 1980, 90년대에 네편이나 되는 <배트맨> 영화들이 나왔는데, 다시 이 이야기를 시작할 필요가 있을까. 2016년부터 DC 확장 유니버스(DCEU) 영화들에 벤 애플렉의 배트맨이 나오기 시작할 무렵부터 또 비슷한 생각을 했다. <저스티스 리그>에서 배트맨이 빠지면 안되겠지. 하지만 <다크 나이트> 시리즈가 끝난 게 며칠 전이라고 벌써? 벤 애플렉이 DCEU 배경 <배트맨> 영화를 만든다는 소문이 돌았을 때는 그냥 포기하고 궁금해졌다. 이번엔 무슨 제목을 쓰려고? 남은 게 있나? 아, 그 사이에 <레고 배트맨> 영화가 나온 걸 잊어서는 안되겠지. 그 사이를 채우는 수많은 애니메이션영화, 시리즈, 게임도 무시해서는 안될 것이고.

비슷한 생각을 역시 꽤 긴 시간 동안 <스파이더맨> 영화들을 따라가면서 했는데, 이건 오늘 주제와 큰 상관이 없다. 아니다. 상관없는 게 아니다. 둘은 모두 DC와 마블의 최고 인기 스타이고, 코믹북 슈퍼히어로영화의 유행 때문에 과도할 정도로 자주 불려나온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 에너지와 비용을 다른 캐릭터에게, 아니, 슈퍼히어로물이 아닌 영화들에 투자했다면 더 좋았겠지만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았다.

마블과 다른 길을 가다

다시 돌아와 이번 맷 리브스의 영화 이야기를 하자. 이번 영화의 제목은 <더 배트맨>이다. 차별화하기 위해 ‘더’를 붙인 건데, 이 제목을 쓴 애니메이션 시리즈가 이미 있어서 이것도 처음이 아니다. 8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온갖 각색물을 양산해왔으니 겹치지 않는 제목을 찾는 건 쉽지 않다. 벤 애플렉의 이전 기획과는 달리 DCEU 영화가 아니다.

DCEU 영화가 아닌 것이 아쉬운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분명 이 길을 택하면서 얻을 수 있는 장점도 있었겠지만, 스탠드 얼론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배트맨 이야기는 고담과 이 도시의 미치광이 생태계에서 벗어나면 개성을 잃어버린다. <배트맨>의 진짜 주인공은 고담이라는 도시 자체이고 이 도시는 배트맨/브루스 웨인이라는 캐릭터를 정의한다. <배트맨> 각색물을 만드는 사람들은 고담시를 설계할 때 <슈퍼맨>의 메트로폴리스를 만들 때보다 수백배의 공을 들인다. 메트로폴리스는 슈퍼맨이 없으면 별 의미가 없다. 하지만 고담은 브루스 웨인/배트맨이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아니, 심지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멀쩡하게 돌아간다. 그리고 이 세계는 온갖 잡다한 설정들이 충돌하는 DC 유니버스의 외부 세계보다 훨씬 치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여기에 DCEU의 설정을 추가하면 이전과 다른 <배트맨> 영화를 만드는 데 도움은 되겠지만 이야기는 불필요하게 잡다해지고 고담 생태계는 힘을 잃는다. DC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거미줄에 갇혀 있는 마블과 같은 상황이 아니라면 굳이 이 길을 갈 필요는 없다.

DCEU를 버림으로써, 리브스는 보다 편안하게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풀어야 할 숙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앞에서도 말했듯 8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배트맨 이야기들이 지나치게 많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브루스 웨인의 부모는 피터 파커의 벤 삼촌보다도 자주 죽었다. 팀 버튼의 <배트맨> 때부터 이 비극은 89년 이후 실사 극영화에서만도 벌써 세번이나 변주되었다. 영화의 분위기와 브루스 웨인/배트맨의 캐릭터 역시 꾸준히 변화했다. 마이클 키턴의 브루스 웨인/배트맨부터가 그 이전에 가장 유명했던 브루스 웨인/배트맨이었던 애덤 웨스트로부터 차별화하기 위한 시도였다. 다시 말해 팀 버튼, 조엘 슈매커, 크리스토퍼 놀란, 잭 스나이더를 거치면서 나온 수많은 영화들은 빈칸 채우기를 하듯 각자의 영역을 점유했고 리브스는 얼마 남지 않은 영역에서 새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리브스는 최선을 다한다. 한계는 있다. 배트맨 데뷔 2년치를 다루며 차별성을 주었지만 그렇다고 웨인 부부가 안 죽거나 브루스가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지 않는 건 아니다. 여전히 주변엔 슈퍼집사 알프레드가 있고 셀리나 카일, 제임스 고든, 펭귄, 리들러, 카르미네 팔코네와 같은 고정 캐릭터들이 소환된다. 영화의 하드보일드 탐정물의 분위기는 분명 다른 작품들로부터 차별성을 부여하지만(심지어 브루스 웨인은 전통적인 하드보일드 탐정의 독백도 갖고 있다) 이는 원래부터 <배트맨> 시리즈의 기반이라 새로운 도전까지는 아니다. 어떻게 보면 리브스는 다른 감독들이 자기만의 차별성을 부여하기 위해 주변을 도는 동안 남겨놓았던 어떤 원형성을 운좋게 쟁취했다고 할 수 있겠다.

어떻게 보면 가장 현실적인 <배트맨> 영화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가 이에 앞서지 않느냐고 물을 수 있다. 아무래도 극사실적인 21세기 대도시를 배경으로 한 <다크 나이트>와 의도적으로 장르적인 컴컴함을 과장하는 <더 배트맨>을 비교하면 <다크 나이트>쪽이 더 그럴싸해 보인다. 하지만 전에도 말했듯, 놀란의 최종 목표는 그럴싸함이 아니라 그럴싸하게 보이게 하는 것이다. 그 마술과 같은 그럴싸함의 조작 속에서 관객은 한 가지 이상한 사실을 놓친다. 돈 많은 백인 남자가 박쥐 가면을 쓰고 다니며 악당들을 때려잡는 것처럼 우스꽝스러운 것이 또 있을까?

이전 <배트맨> 영화들과 다르게

리브스는 이 우스꽝스러움을 감추지 않는다. 앞에서 언급한 전통적인 하드보일드 독백도 지금은 클리셰화된 지 오래라, 이는 전통적이라기보다는 중2병에 걸린 젊은 남자의 일기처럼 보인다. 이전 시리즈와는 달리 브루스 웨인은 결정적인 순간마다 배트맨으로 변장하는 대신 늘 배트맨 옷을 입고 돌아다니면서 사람들과 마주치는데, 덕택에 신비스러운 슈퍼영웅 대신 핼러윈이 아닌 날에도 이상한 분장을 하고 다니는 좀 이상한 놈이 된다. 여전히 괴상한 설정이지만, 그래도 사실적으로 괴상하다. 그리고 이 우스꽝스러움과 서툰 행동은 이전 <배트맨> 영화들이 놓쳤을 수도 있는 심리적인 사실성을 확보한다.

비슷한 사실성이 이 영화의 악역 리들러에게도 있다. 리브스는 이 영화의 리들러를 최근 유행처럼 자주 나오는 인셀 악당으로 그린다. 단지 다른 영화들, 특히 토드 필립스의 <조커>와 비교했을 때 드러나는 차별성이 있다. 리브스는 이런 남자들의 시시함과 초라함을 무시하지 않는다. 과시적이고 모방하기 쉬운 필립스나 놀란의 조커와 달리 리브스의 리들러는 어떤 종류의 매력도 드러내지 않는다. 여기에는 <조커>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윤리적인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리브스의 <더 배트맨>은 수없이 반복된 이전 <배트맨> 영화들을 시행착오의 도구로 사용한다. 그리고 이게 빈칸 채우기보다는 더 근사하게 들리긴 한다.

그 결과물이 나온 영화는 다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백인 남자가 더 심각하게 문제가 있는 다른 남자를 멋없이 두들겨 패는 이야기이다. 멋있다기보다는 우스꽝스럽고 대체로 조금씩 하찮다. 이 하찮은 우스꽝스러움만이 가면 쓴 슈퍼히어로 망상에 맞춘 것처럼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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