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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속절없이 무너뜨리는 영화 - 배우 전소니의 영화관(觀) ①
한 눈에 보는 AI 요약
배우 전소니는 영화와 연기에 대해 깊은 감수성과 사유를 지닌 배우로, 자신만의 영화관을 통해 작품을 감각하고 해석한다. <킬링 디어>와 <파프리카> 같은 작품을 통해 인간의 본성과 연출의 힘을 탐구하며, <패왕별희>에서는 연기에 대한 절절한 감정을 드러낸다. 그녀는 연출에는 관심이 없으며, 연기를 통해 감독의 세계 속에 완전히 몰입하길 원한다.
  1. 전소니의 영화 선택과 감상 방식
    1. 인생 영화 선정에 대해 즉흥적이고 감각적인 접근
    2. 과거의 감정과 기억을 바탕으로 영화 감상
    3. 메모를 통해 감상을 기록하고 공유
  2. 감각하고 질문하며 - <킬링 디어>
    1. <더 랍스터>를 통해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세계에 빠짐
    2. <킬링 디어>의 차가운 미학과 인간 본성에 대한 질문
    3. 가족과 사랑에 대한 극단적 선택의 무게를 체감
    4. 감정을 통해 스스로의 가치관을 되짚는 계기 제공
  3. 계획된 연출의 힘 - <파프리카>
    1. 감독의 연출 의도와 시각적 장치에 대한 민감한 반응
    2. 꿈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연출에 깊은 인상
    3. 애니메이션의 연출 방식과 감정 전달에 대해 새롭게 인식
    4. 연출보다 연기에 집중하고 싶은 확고한 의지
  4. 모든 걸 내어준 연기 - <패왕별희>
    1. 장국영의 연기에 깊은 감동과 슬픔을 느낌
    2. 연기에 모든 것을 내어준 데이의 확신과 몰입에 대한 동경
    3. 자신의 연기에 대한 아쉬움과 더 잘하고 싶은 간절함
    4. 캐릭터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을 편지로 표현

많은 질문을 건넬 필요가 없었다. “아는 척하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작품들을 다시 찾아보지 않았다”고 말하면서도, 전소니는 방금 극장에서 나온 관객처럼 영화를 볼 당시 주변의 공기, 풍경, 연쇄적으로 떠올랐던 질문과 기분을 있는 그대로 들려주었다. “강렬한 인상을 남긴 책과 영화에 관해 종종 적어둔다”는 그는 중간중간 자신의 메모를 들려주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렇게 과거와 현재의 전소니를 투과해 당도한 영화들, <킬링 디어> <파프리카> <패왕별희> <토니 에드만> <조 블랙의 사랑>은 한층 깊고 다채로워져 있었다.

- 다섯 작품을 고르는 데 얼마나 걸렸나.

10분 정도? 사실 인생 영화를 물어보는 질문을 좋아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속상하다. 좋아하는 영화들 중에서 한두편만 꼽기가 어려워서인데, 그 어려워하는 시간이 꽤 쌓이다보니 어차피 바뀔 거라는 전제로 그때그때 떠오르는 작품을 답하곤 한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중간에 리스트를 바꿔 보내긴 했지만.(웃음)

- 그래서 오랫동안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리스트를 추린 줄 알았다.

신중하게 고민하지 않은 건 아니다! 다만 다시 못할 대답이라 생각하면 고르는 게 너무 힘들어지니까. 내게 즐거움을 주는 작품들, 내가 영화에 바라는 점을 충족 시켜주는 작품들을 중점적으로 골랐다.

감각하고 질문하며 - <킬링 디어>

<킬링 디어>

-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영화 중 어떤 작품을 가장 처음 접했나.

<더 랍스터>다. 무척 충격 먹은 채로 극장을 나선 기억이 난다. ‘나라면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까, 뭐가 더 중요할까’라는 질문이 집에 도착할 때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몰입감이 좋은 영화를 만나면 굳이 현실로 돌아오지 않고 그 속에 오래 잠겨 있길 좋아한다. <더 랍스터>가 내게 그랬고, 곧바로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팬이 되어 그의 신작을 전부 쫓아다니며 관람했다. 근작들보다는 <더 랍스터> 전후로 연출된 작품들이 더 취향이긴 한데, 그럼에도 동화적이거나 신화적 메타포를 워낙 좋아하고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미학을 바라보는 게 즐겁다. <킬링 디어>는 내게 상당히 각진 이미지로 남아 있다. 구획을 철저히 나눈, 하얗고 투명한 얼음 같다는 인상이다. 그리고 어딘가 싸했다. 인간으로서의 악의가 느껴지지 않는 인물들의 냉혹한 태도, 망설임 없는 움직임 때문에 나도 덩달아 궁지에 몰린 것처럼 어찌할 바를 모르겠더라. 영화 특유의 차가움이 살갗으로 그대로 느껴졌다. 밀어붙이는 힘이 워낙 강해서 보는 내내 짓눌리는 기분이 들었는데 그게 나쁘지 않았다.

- 영화에 대한 감상을 촉각으로 표현하는 게 인상적인데, 특히 어떤 장면이 그렇게 강렬하게 느껴지던가.

아들이 걷질 못해 휠체어를 타고 나오자 머피(콜린 패럴)가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걸어봐, 걸을 수 있어”라며 병원 복도에서 밥(서니 설직)을 일으키는 장면. 병원복을 입은 아이가 곧바로 쓰러져 대리석 바닥을 기어다니는데 그 차갑고 딱딱한 바닥의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큰 눈을 지닌 연약해 보이는 아이가 피눈물을 흘릴 때도 그랬고.

- <더 랍스터>와 마찬가지로 스스로에게 여러 질문을 던지게 되던가.

어릴 때부터 문장화된 질문을 떠올리기보단 상대적으로 모호한 느낌에서 출발해 생각이 이어지곤 했는데, <킬링 디어>도 여러 감정과 질문이 산발적으로 떠오르는 영화였다. 나한테 가족 중 한명을 쏘라고 한다면 누구를 쏴야 할까, 이들을 다 살리고 본인의 목숨을 끊겠다는 결정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살면서 하는 크고 작은 선택들에 대한 무게감이 느껴졌고, 망설임 없이 나보다 내가 사랑하는 이를 더 위할 수 있는지에 관해서도 생각해보게 됐다.

- 사랑하는 이를 위해 어떤 행동까지 할 수 있느냐에 관한 질문은 머피와 죽은 아버지의 복수를 꾀한 마틴(배리 키오건) 모두에게 적용되는 질문이기도 하다.

그 둘을 보면서 내게 소중한 사람과 타인에게 소중한 사람의 존재감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가늠해보게 됐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은 고민해본 적 없던 질문과 거대한 힘 앞에서 관객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든다. <킬링 디어>를 보면서 내가 하지 않은 일들로 인해 괴로웠고 죄책감을 느꼈다. 그래서인지 그의 영화 앞에서는 인간이 하찮게 느껴진다. 인간 또한 한낱 동물에 불과하고, 다 똑같고 아무것도 아니구나. 그래서 무력감이 드는 한편 오히려 위로도 된다. 그의 영화들을 볼 때면 내가 지금까지 잘 살아온 게 맞는지, 앞으로 어떤 가치관을 갖고 살아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그러다보면 의외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깨닫곤 한다. 가치관에 관한 질문은 자칫 무례하게 느껴질 수 있어 남들에게 잘 묻진 않지만 영화를 보면서 그에 관해 스스로 묻고 답하는 건 나름의 즐거움이 있었다.

계획된 연출의 힘 - <파프리카>

<파프리카>

- 특정 감각을 예민하게 건드리는 영화를 선호한다는 인상이다. <킬링 디어>와는 결이 다르지만 곤 사토시 감독의 <파프리카>에도 신경을 거스르는 지점이 있다.

동생이 축축하고 어두침침한 걸 좋아하는데 예전부터 <파프리카>를 추천해줬다. 그땐 그게 곤 사토시 감독의 영화라는 것도 몰랐다. 메모장에 적어만 두고 계속 보길 미뤄왔는데 <기생수: 더 그레이> 촬영을 준비할 때 연상호 감독님이 <파프리카>에 관해 말씀해주셨다. 보면서 수인과 하이디를 만드는 데에 큰 힌트를 얻었다. 빨간색과 파란색, 이성과 본능 같은 쉬운 단서로 아츠코와 파프리카를 구분하는데 단순하고 극단적이긴 방식이긴 해도 억지스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특정 인물이 인간적이라는 건 대체로 장점으로 언급되지만 때론 그게 약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파프리카>는 꿈과 현실을 오가며 ‘인간적’이라는 성질에 관한 모순을 잘 그려낸 점이 흥미로웠다. 최면 치료를 받듯 <파프리카>가 보여주는 꿈들 속으로 빠져들었다.

<퍼펙트 블루>

-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경우처럼 곤 사토시 감독의 필모그래피도 전부 훑었나.

최근에 <퍼펙트 블루>를 봤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그림체도 예쁘고 다 좋은데 곤 사토시의 영화를 보면 왜 이렇게 우울해질까. 그의 작품들에서 내가 감지한 개성은 ‘확실한 기분 나쁨’이다. 기분 나쁘다는 감정이 아주 선명하게 느껴진달까. 그렇지만 확실해서 좋다. 곤 사토시의 작품을 볼 때만 느낄 수 있는 기분 나쁨이고 누군가에게 곤 사토시의 영화를 추천할 때도 이걸 이유로 들 수 있을 것 같다.

- 평소 애니메이션도 자주 챙겨보는 편인가.

장르를 가리지 않기 때문에 애니메이션이라고 해서 더 좋아하지도, 그렇다고 덜 보지도 않는다. 어릴 때는 실사로 표현할 수 없는 요소까지 포괄하는 애니메이션만이 그려낼 수 있는 세상과 스케일을 좋아했다. <기생수: 더 그레이> 때 연상호 감독님께 배운 건데 애니메이션을 연출하는 분들에겐 앵글이 중요하다더라. 똑같은 장면도 어느 방향에서 그리느냐에 따라 그림의 모양새가 달라지고 전달되는 감정 역시 변화한다. 그래서 감독님은 생각에 잠긴 인물을 촬영할 때 배우가 실제로 생각에 잠기길 바라지 않는다고 하셨다. 왜냐고 물으니 배우를 앉혀둔 다음 자신이 카메라 각도를 꺾어 아래에서 찍으면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거다. 그게 무척 충격적이었다.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책을 볼 때 나도 모르게 작가가 의도한 대로 감정을 해 석하고 있었겠구나. 그걸 알고 나서 애니메이션을 전과 다르게 보게 됐다. <기생수: 더 그레이>를 촬영할 무렵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개봉했는데, 그때는 어떤 시점에서 인물을 어떻게 보여주는지 유심히 봤다. 그 많은 가능성 중에 감독이 택한 관점을 바라보는 게 무척 재밌었다.

- 본인의 관점에서 직접 영화를 연출해보고 싶진 않나.

전혀. 연출에 관심도 없고 하고 싶은 이야기도 없다. 나는 죽을 때까지 연기를 하고 싶다. 내가 연출에 관해 잘 알고 싶은 건 감독이 원하는 걸 빈틈없이 해내고 싶은 배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출하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자신의 생각을 어떻게 표현하려 하는지 잘 알아채는 똑똑한 배우가 되고 싶다. 돌이켜보면 현장에서 감독님들을 50의 존경심과 50의 안쓰러움으로 봐온 듯하다. 본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이끄는 리더십이 존경스럽고 한편으로는 그 책임감이 더없이 무거워 보인다. 그래서 나는 연출자의 자리에 가까이 갈 생각이 없다. 감독이 만들어내는 세계 속의 인물로서 존재하고 싶다.

모든 걸 내어준 연기 - <패왕별희>

<패왕별희>

- <패왕별희>는 근 6년간 꾸준히 재개봉해왔고 올해도 장국영의 기일에 맞춰 극장에 걸렸다.

나도 예전에 재개봉했을 때 봤다. 현대극에 비해 시대극을 잘 꺼내보지 못하는 편이다. 아무래도 시대적 배경과 문화, 행동 양식이 다르면 작품에 빠져드는 데에 시간이 더 걸려서 그런 것 같다. <패왕별희>도 집에서는 절대 보지 않을 테고 몰입도 안될 것 같아 극장으로 갔다. 아직도 <패왕별희>를 본 날이 기억난다. 날씨가 좋지 않았고 만원버스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서 있는데 정신은 계속 다른 곳에 가 있었다. 도통 영화에서 헤어나올 수가 없었다.

- 우희와 자신을 동일시한 데이, 데이에게 완전히 밀착된 장국영의 연기가 배우의 눈엔 어떻게 비칠지 궁금했다.

그때 길게 메모를 남겼다. 첫 문장이 이렇게 시작한다. “왜 이렇게 우울하고 슬퍼지는 건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배우로서 자신의 일과 극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삶이 절망뿐이었기 때문일까.” 연기를 그렇게 사랑한 데이가 너무 힘들게 살았으니까…. (눈물이 가득 고인 눈으로) 갑자기 왜 슬퍼지지? “가발을 벗고 경극 화장만 한 그의 얼굴과 눈이 정말 경이로울 정도로 깊고 슬펐다. 우희 역을 빼앗기고 혼자 남은 데이에게 주샨(공리)이 옷을 걸쳐주는 장면에서 눈물이 울컥 나왔다.” 지금도 그때의 감정이 그대로 느껴진다. 데이가 역할을 사랑하는 마음, 역할을 뺏겼을 때의 슬픔이 느껴져 마음이 너무 아팠다. 단순히 연기를 잘했다 못했다는 말로 단언할 수 없는, 자신을 전부 갖다바친 사람만의 흔들림 없는 확신이 느껴져서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잘하고 싶은 마음조차 둘 자리가 없을 정도로 자신의 마음과 정신을 다 내준 확신이란 건 어떤 걸까. 그런 마음으로 연기를 하면 어떨까. 무척 궁금해졌다.

- 배우 전소니는 지금 어떤 마음으로 연기에 임하고 있나.

연기나 영화에 관해 대화하는 걸 정말 재밌어한다. 해도 해도 할 이야기가 너무 많은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곤 한다. 일단 연기나 잘한 뒤에 이런 말을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이것보단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싶은 아쉬움과 간절함이 매 순간 있고 아마 다른 배우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장국영에겐 강한 자기 확신과 배짱이 느껴졌다. 그건 아무나 가질 수 없다. 본인을 믿었기에 그렇게 대담하게 연기할 수 있었을 텐데 나는 아직 그런 용기를 갖고 싶은 사람 정도다. 나는 내가 연기하는 인물과 나를 떼어놓고 바라보는 편이다. 맡은 인물들을 너무 사랑해서 그를 떠올리면 행복하고 그러다 보면 이유 없이 미안해진다. 그래서 어느 날 촬영하고 돌아와 편지를 쓰기도 한다. ‘너를 더 알지 못해서 미안해.’ 많은 관객과 만나지 못했을 때도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유치하고 어린애 같지만 그래도 이 마음을 계속 지키고 싶다. 그래야 이 일을 오래 할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