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 그리고 꼿꼿함 - <토니 에드만>
- 연기에 관해 말하자면 <토니 에드만>의 잔드라 휠러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너무너무 좋았다! <토니 에드만>을 보고 어떻게 저런 배우가 있을 수 있나 싶었다. 그에 관해 더 잘 알고 싶은데 생각보다 잔드라 휠러에 관한 정보나 인터뷰가 한국에 잘 전해져 오질 않는다. 어쨌든 <토니 에드만>을 본 뒤에 잔드라 휠러에게 완전히 사로잡혔다.
- 특히 어떤 부분에 사로잡혔나.꼽을 수 없다. 영화 전반에 드러난 그의 연기 변화와 흐름이 너무 좋았다. 후반부에 아버지의 권유로 노래할 때, 이네스(잔드라 휠러)가 처음부터 끌고 온 감정이 없었다면 그의 노래가 그렇게 특별하지 않았을 거다. 이네스가 어떤 마음으로 아버지를 견뎠고 어떤 심정으로 그 공간에 있는지를 휠러가 정말 잘 보여줬다.
- 이네스와 아버지 빈프리트(페테르 시모니슈에크)는 언젠가 화해할 수 있을까. 혹은 절대 만나지 않는 평행선을 끝없이 달릴까.
그래도 가끔은 만나지 않을까. 나 역시 가족이라는 존재를 마냥 예뻐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래서 <토니 에드만>의 이야기가 너무 좋았고, 빈프리트가 꼴보기 싫으면서도 사랑스러웠다. 내가 빈프리트가 보여준 것과 같은 유머를 지닌 사람이 되고 싶은 이유이기도 한데, 아무리 밉고 질려도 그런 상대에게 한번쯤 농담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관계는 결국 얼마나 노력하고 노력할 의지가 있느냐에 달렸다. 지금으로선 방향이 틀렸다 한들 빈프리트가 그렇게 노력하고 있으니 딸이 원하는 대로 궤도를 조금씩 수정해나간다면 언젠간 서로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 다시 잔드라 휠러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지난해 크게 호평받은 <추락의 해부>와 <존 오브 인터레스트>가 연이어 개봉했다. 둘 다 관람했나.
잔드라 휠러가 나온다기에 챙겨봤고 특히 <추락의 해부>가 정말 좋았다! 너무 쉽거나 암호처럼 이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게 아닌, 한두 시간이면 파악 가능한 메타포가 성공한 메타포라고 여기는데 <추락의 해부>가 내겐 그런 작품이었다. 사건을 전부 목격한 강아지는 말을 할 수 없고 말을 할 수 있는 아들은 시각장애로 앞을 보지 못한다. 어떻게 이런 스토리를 구상했을까. 어떤 의미에선 내가 당사자가 아닌 세상의 모든 일에 적용할 수 있는 구조이지 않나. 그리고 법정 신에서 휠러가 보여준 대사와 연기가… (박수 치며) 진짜 미쳤다! 그 장면을 본 관객 중 죄책감이 들지 않은 이가 있다면 그와 대화하고 싶지 않다. (웃음) 그럴 정도로 정말 모두를 반성하게 하는 힘이 있었고 그 힘은 휠러의 연기에서 비롯된 거라 생각한다. “서래씨는요, 몸이 꼿꼿해요”(<헤어질 결심>)라는 말처럼 휠러에게도 쉽게 굽혀지지 않는 굳건함이 있다.
아름다운 감정, 아름다운 대사 - <조 블랙의 사랑>
- <조 블랙의 사랑>은 어떤 순간에 꺼내보는 작품인가.가끔 한없이 유치한 영화가 보고 싶은데, <조 블랙의 사랑>이 그렇다. 어린이들에게 ‘그땐 그랬대’라며 들려줄 법한 동화와 다름없는데, 내겐 가끔 그런 허무맹랑한 영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게 사랑 이야기라면 더할 나위 없다. 인간인 조 블랙(브래드 피트)에겐 죽음이 잠시 머물렀다 떠나는데, 수잔(클레어 폴라니)은 그의 눈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그 사실을 알아챈다. 어떠한 장치 없이도 그냥 아는 거다. 사랑하니까. 그 순간이 너무 영화적이라 느껴졌다. 브래드 피트는 인간 조 블랙과 죽음이 깃든 조 블랙을 1인2역처럼 연기하는데 죽음이 깃들었을 때의 분량이 훨씬 크다. 인간 조 블랙은 영화 초반에 짧게 등장하지만 그럼에도 그가 무척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보였다. 죽음 역이 중요하다고 해서 인간 조 블랙을 대충 그리지 않는 걸 보면서 연출자가 사랑이 많은 사람이구나 싶었다. 언젠가는 이런 작품을 해보고 싶다. 너무 순수하고 유치해서 영화로밖에 보여줄 수 없는 이야기를 보는 사람이 한치의 의심도 없이 믿을 수밖에 없게 연기하고 싶다. 그런 연기를 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 <조 블랙의 사랑>을 보고 그런 생각을 했다.
- 만약 조 블랙의 몸에 죽음이 들어오지 않았다면, 카페에서 보여준 그 모습 그대로 수잔과 재회했어도 두 사람이 사랑에 빠졌을까.
내겐 운명론자 기질이 있어서 단 하나만 달라져도 모든 것이 바뀐다고 생각한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평행세계처럼 말이다. 만의 하나 인간 조 블랙과 수잔이 사랑에 빠질 수 있었다 할지라도 그럼 죽음이 너무 불쌍해서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다.
- 윌리엄(앤서니 홉킨스)도 조 블랙만큼이나 애틋한 로맨스를 보여준다.
그가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를 처음 만난 순간에 관해 들려줄 때, 아주 오래된 이야기인데도 그의 옷차림부터 디테일하게 설명한다. 당시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얼마나 선명하게 바라보고 있는지가 그대로 느껴졌다. 앤서니 홉킨스처럼 아름다운 감정, 아름다운 말을 지닌 역할을 맡은 배우들이 부럽다.
- 조 블랙과 윌리엄 중 누굴 더 연기해보고 싶나.당연히 조 블랙이다. ‘사랑을 경험한 죽음’이라는 건 너무나 특별한 캐릭터이지 않나. 죽음은 너무 대단한 존재인데 영화에선 하찮게 그려진다. 정말 매력적이고, 재밌게 연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시절의 브래드 피트는 어쩜 그렇게 예쁜지. 두눈에 순수함이 가득하다. 하지만 그때 그 시기의 그 배우였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연기가 있다. 브래드 피트가 다시 온다 해도 얼굴도 눈도 그때와 달라졌기에 그 장면은 다시 재현될 수 없다. 너무 늦지도 빠르지도 않은 시기에 자신에게 잘 맞는 역할을 만난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부러워해도 소용이 없다. 그걸 알기 때문에 샘이 나도 버티는 거다. 언젠가 내게도 그런 순간을, 그런 얼굴을 보여줄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럴 수 있길 바란다.
1. 재개봉 촉구작
극장 밖에선 보기 어려운 필름영화들을 보고 싶다. 현재로선 클로드 샤브롤 감독의 <초콜릿 고마워>가 떠오른다. 지금 개봉했다면 관객들에게 질타를 받았겠지만 남들이 동의하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태도로 밀고 나가는 힘이 느껴지는 영화다. 관객에게 휘둘리지 않는 도전적인 작품들에 속절없이 마음을 빼앗기곤 한다.
2. 지구 멸망의 날 보고 싶은 영화
<소울메이트>.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한 너무너무 행복한 시간이 담긴 작업이다. (출연작을 잘 보는 편인가.) 예전엔 그랬는데 요즘엔 갈수록 어려워진다. 작품이 한두개였을 때는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말할 수 있었지만 이제 시간도 많이 흘렀고, 남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 <소울메이트>는 설사 그 안의 내 연기가 부끄러울지라도 현장에서의 시간이 더없이 즐거웠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그 기억을 되돌아보고 싶다.
3. 나만 해봤을 것 같은 극장 경험
서울아트시네마가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기 전에 <5시부터 7시까지 클레오>를 보러 갔다. 그런데 극장에 들어서는 길에 우연히 대학 동기를 만났다. 학교 다닐 땐 작품도 같이하고 곧잘 붙어다녔는데 아무래도 연출 전공하는 친구들은 현장에서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5~6년 만에 영화관에서 만나다니, 너무 낭만적이었다. 흑백영화를 야외에서 보는 순간도 좋아한다. 까만 밤하늘에 별이 보이고 나무들이 흩날릴 때 영화를 보는 순간이 정말 아름답다. 지금은 ‘별빛영화제’라는 이름이 생겼지만 과거에는 특별한 이름도, 시간표도 없이 에무시네마에서 여름마다 옥상에서 야외상영을 했다. 그때 각자 나눠준 헤드폰을 끼고 <쥴 앤 짐>을 봤는데 그 순간이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어느 여름, 친구를 보러 뉴욕에 갔을 때도 브라이언트 파크에서 큰 스크린으로 흑백영화를 틀어주던 풍경을 우연히 마주했다. 공원뿐 아니라 건너편의 도서관 계단과 난간에 사람들이 둘러앉아 영화를 보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떠올리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