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칸영화제]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첫 시사 첫 반응
2022-05-25
글 : 이주현
글 : 임수연
제75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상영작 <헤어질 결심> 리뷰

5월23일,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이 칸에서 공개됐다. 제75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인 <헤어질 결심>은 박찬욱 감독이 <아가씨> 이후 6년만에 선보이는 신작으로, 탕웨이와 박해일이 각각 남편을 잃은 서래와 담당 사건의 형사 해준으로 출연한다. 6월29일 국내 개봉에 앞서, 칸에서 먼저 공개된 <헤어질 결심>의 리뷰를 전한다.

이주현

<헤어질 결심>은 암벽에서 추락해 사망한 남자의 중국인 아내 서래(탕웨이)와 이 사건의 담당 형사 해준(박해일)이 만나 서로를 관찰하고 의심하다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다. 비밀이 많아 보이는 미스터리한 여자와 직업상의 이유로 그 여자를 관찰하다 사랑에 빠지는 형사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히치콕의 <현기증> 같은 작품을 떠올리는 이도 있을텐데, 실제로 칸에서 영화가 공개된 직후엔 비밀, 의심, 관찰 등의 요소를 유려한 스타일에 녹여낸 점에서 히치콕 영화를 연상케 한다는 외신의 평도 많았다. 그런데 무엇보다 <헤어질 결심>은 사랑 이야기다. 그것도 박찬욱 감독이 만든 로맨스 영화. 폭력적이고 불편한 상황 묘사에서는 멀어진 대신, ‘헤어질 결심’을 하게 되는 인물들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웃기고 슬프고 절절하게 그려진다. 절묘한 단어 선택과 미묘한 뉘앙스의 대사들, 위트 넘치는 상황 묘사는 이 영화를 고차원의 코미디로 둔갑시키기도 하며, ‘마침내’ 도달하는 결말에선 <아가씨>와 <박쥐>에 버금가는 방식으로 사랑의 게임에 마침표를 찍는다.

탕웨이는 <만추>와 <색, 계>를 이을 대표작을 만난 느낌이다. 한국어를 드라마로 배운 중국인 여성 캐릭터 서래는 그간 박찬욱 감독이 탄생시킨 그 어떤 여성 캐릭터들과 비교해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복잡다단하고 주도면밀한 캐릭터를 꼿꼿이 연기하는 탕웨이의 아우라는 박찬욱의 스타일에 아름답게 흡수된다. 한국영화 속 형사 캐릭터의 진화를 보여주는 해준 역시 배우 박해일의 상투적이지 않은 연기를 통해 깊고 투명하게 표현된다. 나와 같은 종족의 숨소리에 박자를 맞추고 가만히 사랑의 본질을 생각하게 되는, 박찬욱 감독의 새로운 마스터피스가 탄생했다.

임수연

나이 많은 한국 남자와 결혼한 중국인 여자. 그런데 절벽에서 남편이 떨어져 죽었는데도 그리 슬퍼하지 않는다. 심지어 경찰서에서 살짝 웃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 최연소 경관에 오르며 경찰로서 능력을 인정받은 해준(박해일)은 완벽하게 정갈한 남자다. 매사에 흐트러짐 없는 그는 서래(탕웨이)가 블랙 위도우(교미 후 수컷을 잡아먹는 암컷 거미. 돈 때문에 남편을 죽이고 과부가 된 사악한 여자를 일컫는 별칭)일지 모른다고 의심한다. 설정과 장르를 놓고 보면 알프레드 히치콕의 <현기증> <서스피션> <이창> 그리고 히치콕의 누벨바그적 계승자 클로드 샤브롤의 <도살자> 등 여러 고전들이 떠오르지만, 박찬욱 감독은 매 필모그래피마다 그의 인장을 스크린에 찍어내는 독보적인 시네아스트다. 초밥 간장이나 인공 눈물처럼 지극이 일상적인 소품도 그의 카메라에 들어가면 기괴한 오브제가 될 수 있는 독창적인 눈을 갖고 있다.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남북한어, <친절한 금자씨>에서 영어와 한국어 사이의 간극을 발판 삼아 오히려 독특한 리듬을 직조하던 박찬욱 감독은 <헤어질 결심>에서 이질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솜씨를 한차원 더 진화시킨다. 번역을 거쳐야 하는 한국어와 중국어의 관계로 로맨스나 서스펜스의 미묘한 질감을 만드는 기술이 감탄스럽다. 그리고 <헤어질 결심>이 궁극적으로 관객에 전달되는 것은, 조금 이상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사랑 이야기다. (물론 처음 다루는 소재는 아니다. 이따금 박찬욱 감독이 “나는 언제나 로맨틱 코미디를 만들어왔다”고 농담 같은 진담을 한 것처럼, <사이보그지만 괜찮아> <박쥐> <아가씨> 등 그는 언제나 로맨스와 가까운 사람이었다.)

사랑은 애틋하고 아름답기만 한 게 아니다. 누군가는 사랑 때문에 병적인 집착을 할 수 있고, 누군가는 사랑 때문에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사랑이 가학과 피학에 대한 욕망과 함께 가기도 한다. 우리가 사랑 영화에 기대하는 것은 결국 애정의 역학 관계, 그를 구성하는 재료와 화학식을 면밀히 탐구한 끝에 가능한 정동이 아니었던가. <헤어질 결심>은 일반적이라 할 수는 없을 해준과 서래의 사랑 방식을 결국 관객의 감각에 아로새긴다. 박찬욱 감독에게 기대할 법한 특유의 스타일은 견지하되(단, 수위 높은 정사나 과도한 폭력 묘사는 없다.) 그것이 담고 있는 내용과 비주얼이 유기적으로 연결됐다는 점에서 성공적인 로맨스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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