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상한’ 변호사의 이름은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똑같은 우영우여야 했을까. 주인공이 자기소개를 할 때마다 회문(回文) 혹은 팰린드롬(palindrome)의 개념을 상기시키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2020년 2월2일에 방영됐다면 더 근사하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드라마의 영문 제목은 ‘strange’나 ‘odd’가 아닌 ‘extraordinary’로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우영우(박은빈)를 설명한다. 문자 배열의 특수성 때문에 긍정적인 주목을 받는 회문처럼, 우영우의 장애는 그가 사건을 해결해갈수록 결함이 아닌 차별화된 개성으로 인정받는다. 일견 천재성에 국한돼 미디어에서 재현되던 자폐인 캐릭터 계보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캐릭터로 비칠 수도 있지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대상화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흥미로운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착한 드라마’, ‘힐링 드라마’로 압도적인 호평을 받던 초반보다 최근 에피소드들의 태도가 그렇다.
문지원 작가의 전작 <증인>에는 “자폐인은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는 단정적인 대사가 나온다. 이같은 접근은 자칫 장애인을 타입화하는 우를 범할 수 있지만, 작가는 전작의 한계를 넘어 후속작에서 우영우가 거짓말을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의식적인 노력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보다 풍부하게 서술한다. “(비자폐인) 사람들은 나와 너로 이루어진 세계에 살지만 자폐인은 나로만 이루어진 세계에 사는 데 더 익숙”하기 때문에 상대가 다른 의도로 사람을 속일 수 있다는 것 자체를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폐의 알려진 특성에서 출발해 거짓말의 생리를 공부로 터득해야 하는 우영우 캐릭터가 구체화되면, 소송에서 이기고 싶어 진실을 외면한 변호사의 부끄러움(5화 <우당탕탕 VS 권모술수>)은 보다 선명해지고 “너는 봄날의 햇살 최수연이야”처럼 직설적인 표현이 주는 울림은 커진다. 여기서 법정물의 주인공이 자폐인으로 설정된 이유는 약자를 품는 시혜적인 태도나 ‘먼치킨’의 천재성을 손쉽게 활용하려는 테크닉과 멀어진다. 극중 설명처럼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종류는 천차만별이지만 드라마는 이미지로 기억하고 집요하게 좋아하는 주제가 있으며 사안을 보는 시각이 독특하다는 설정을 세밀하게 제시하며 플롯의 뼈대에 살을 붙인다. 동시에 자폐인의 다름이 반드시 결과의 다름을 내포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각색의 묘사로 뒷받침한다. 코스 요리가 30만원씩 하는 식당에서 본전을 못 채우는 건 김초밥을 먹는 우영우나 배탈이 나서 게살죽을 먹는 최수연(하윤경)이나 똑같고 우영우와 재판장 모두 수치와 발음에 깐깐하다. 우영우에게는 화를 내고 재판장의 지적에는 꼬리를 내리는 장승준(최대훈)의 태도가 편협할 뿐이다.
드라마에서 현실로 이야기는 확장된다
우영우의 다름은 세상의 모든 다름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정상성의 허구에 하나씩 도전한다. ‘정상성’이란 발명된 개념은 역사적으로 인종과 젠더, 성 정체성, 장애, 계급 등에 따라 사람을 차등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사건 관계자는 유독 레즈비언, 중증 자폐인, 탈북자, 지적장애인, 해고 노동자 등 소외자가 많다. 미숙한 존재를 규정하는 시선에 의문을 품는 데서 더 나아가 보호주의를 거부하는 사상범 방귀뽕(구교환)이나 나쁜 남자도 사랑할 수 있지 않냐고 묻는 지적장애인 신혜영(오혜수)이 자신의 견해를 밝힐 시간까지 내준다. 정상성에의 도전은 자연스럽게 권력 문제로 넘어간다. 안타고니스트 권민우를 “이 시대의 차별주의자”로서, “최고의 실력을 지닌 우영우가 취업할 수 없었던 차별은 보지 못하고, 소수자에 대한 배려를 ‘역차별’이라 주장하는 권민우는 이 시대 2030 주류 남성들의 정서를 대표한다”(<한겨레> 7월23일자)고 언급한 황진미 평론가의 분석은 정확하지만, 장애와 성 정체성, 서울 중심 행정까지 넘나드는 드라마가 호명하는 권민우는 사실 세상에 가장 흔한 부류다. 장애/비장애는 물론 젠더, 성 정체성, 지역, 학벌 등 자신이 쥐고 있는 권력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배려를 유난, 심지어 역차별로 인지하는 것은 비단 ‘이대남’만의 문제가 아니다. 다름을 논하는 드라마가 선악의 이분법 대신 사회 인식 개선과 공동체 화합을 지향하는 것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데, 권민우의 갱생 여부를 놓고 쏟아지는 비난은 여러모로 현 사회의 징후를 보여준다.
7월26일 열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기자간담회에서 문지원 작가는 “만약 우리 사회를 조금이라도 더 살 만한 곳, 나은 곳으로 만드는 것이 있다면 이 드라마 자체보다는 드라마를 계기로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이야기들”이라는 말을 전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 당사자들과 그의 가족들이 본 드라마를 시작으로 정신과 의사와 법조인 등 유관 업계 종사자들의 리뷰, 인권 운동가들이 바라본 드라마의 의의 등 사회 각계에서 쏟아진 반응은 작품을 넘어 사회를 더 다층적으로 이해하는 매개가 됐다. 그사이 현실에서는 ‘텃밭에서 농사를 짓고 시낭송을 즐기는 여성 인권 운동가들’의 세계를 모르는 이들이 유튜브를 중심으로 엉뚱한 모티브를 주장하는 음모론을 제기했고, 수족관 돌고래 21마리는 극중 우영우가 그토록 바랐던 대로 바다로 돌아갔다. 우영우처럼 남다른 계산 능력을 가진 이가 아니라면 회문을 알아차릴 때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잠시 시간을 내어 기준을 뒤집고 다름을 사유할 기회를 주는 점에서 팰린드롬과 닮았다. 그리고 기러기, 토마토, 스위스, 인도인, 별똥별에 이어 ‘역삼역’까지 떠올렸던 우영우처럼, 희귀하지만 여전히 더 발굴될 여지가 남아 있는 회문처럼, 우리는 이 드라마가 던진 쟁점에 대해 보다 난한 지점까지 적극적으로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베스트 에피소드 3
4화 <삼형제의 난>거짓말에 넘어가 불공정한 각서에 도장을 찍은 명백한 피해자도 법의 구제를 받기 어렵다. 피고의 기망행위를 증명하기 어렵기 때문에 승소가 어렵다는 현실적 한계는 천재 변호사의 기지로 보기 좋게 뒤집힌다. 증거가 없지 않냐고 내내 발뺌하던 피고측이 원고의 가족이 증여를 해제할 수 있는 조건(범죄행위, 극중에서는 동동삼(정석용)과 동그라미(주현영)가 고의로 당한 폭행)을 일부러 유도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자 우영우는 회심의 일격을 가하곤 뿌듯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그렇다는 증거 있습니까?” 드라마가 뭔지 아는 작가와 감독, 배우다.
10화 <손잡기는 다음에>지적장애인이 주체적으로 ‘사랑할 권리’가 성적 자기 결정권이 부족한 약자를 향한 악의적 범죄와 충돌할 때 우리는 어떻게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을까. 지적장애인을 노린 현실의 범죄를 생각할 때 미디어가 지적장애인도 나쁜 남자를 사랑할 권리가 있다는 목소리를 거듭 대변하는 것은 위험하다, 장애인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제대로 논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보호 대상으로 가두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장애인은 스스로를 지키는 힘이 약하기 때문에 법의 보호가 필요한 것이다…. 방송 이후 다양한 찬반 견해와 담론이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장애인의 섹슈얼리티에 대해 이토록 많은 이들이 고민하고 의견을 얹은 때가 또 있었던가? 장애 여성이 사랑한 비장애인 남성이 무고하게 묘사되거나 장애 여성이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전개였다면 훨씬 안전하게 갈 수 있었을 것이다. 세상을 더 낫게 만드는 건 무해함보다는 불편한 질문이 촉발하는 생산적인 논쟁이다. 한계가 있을지라도 도전을 피하지 않은 제작진을 지지한다.
12화 <양쯔강 돌고래>대형 로펌 한바다에서는 때때로 정의롭지 못한 일도 감수해야 한다. 변호사의 본분을 고민하는 우영우 앞에 한바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유형의 인권 변호사 류재숙이 나타난다. 변호사의 내적 갈등과 중심 사건의 시의성을 맞물리며 법정물과 성장 드라마, 사회적 메시지를 고르게 담았다. 1999년 농협 구조조정을 비롯해 다양한 성차별적 해고 사건이 주 모티브가 됐고, 23년 전 소송 당시 공동변호인단 중 주 변호사였던 김진 변호사가 여성 인권 변호사로서 걸어온 궤적과 일부 에피소드가 겹치면서 화제를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