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등 뒤에 서 있다가 어느샌가 성큼 다가왔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이준호(강태오)는 우영우(박은빈)를 서포트하는 팀원이었지만 영우와 가까워질수록 시청자와의 거리도 급격하게 좁혀졌다. 영우와 연인이 되어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는 준호의 대사가 인터넷 기사의 제목이 되고 ‘짤’로 확산될 만큼 화제다. 올여름 가장 주목받는 배우 강태오를 만났다. 극중 준호는 바다 앞에서 하염없이 돌고래를 기다리지만, 배우 강태오는 직접 물에 뛰어들어가 돌고래도 얼러 데려올 것 같은 명랑한 에너지로 가득했다.
= 그게 중요한 장면이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섭섭한데요”가 이렇게까지 사랑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럴 줄 알았으면 더 열심히 했을 텐데. 물론 그때도 최선을 다했다. (웃음)
-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준호의 비중이 높아진다. 작가의 고민과 애착이 많이 느껴지는 캐릭터다. 이준호 캐릭터를 어떻게 이해하고 접근해나갔나.= 준호는 초반에 얼굴을 자주 보이진 않는다. 있는 듯 없는 듯 영우 뒤에서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대본에도 대사보다 지문이 많았다. ‘준호의 표정’, ‘준호, 순간 바라본다’ 이런 식이었다. 액션보다는 리액션이 많아서 찰나의 표정과 눈빛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준호는 처음엔 동료로서 친절을 베푸는 정도였다가 영우가 웨딩드레스를 입은 모습을 보고 이성적인 호감을 느낀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때부터는 영우를 향한 관심 속에 어떻게 사랑 표현을 자연스럽게 녹일 수 있을까 고민했다.
= 최대한 절제하려고 애썼다.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대사를 세게 치거나 어떤 인상을 남기지 않으려고 했다. 항상 저기 있었지 싶은 듬직한 나무 같은 사람이 되려고 했다. 손짓이나 눈빛으로 분위기를 좌지우지하지 않도록 감독님 디렉팅에 따라 이렇게 저렇게 다양하게 많이 찍으며 맞춰나갔다.
- 예술을 하거나 카페에서 일하는 등 자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는 캐릭터를 종종 연기했다. 그런데 반듯한 사무직도 잘 어울리더라.= 어려웠다. (웃음) 특히 준호의 말투가 나와 너무 달랐다. 직업도 그렇고 캐릭터 컨셉도 그렇고 반듯한 프레임 안에 있는 느낌이잖나. 지금까지 연기한 캐릭터는 대개 유하고 둥글둥글해서 어떻게 연기해도 그럴 수 있지 싶은 느낌이었는데 준호는 조금만 다른 행동을 해도 준호 같지 않았다. 최대한 노멀한 표현을 위해 많은 것을 억눌렀다.
- 자폐 스펙트럼을 다룬다는 데 대한 우려와 부담도 있었을 것 같다.= 조심스러운 부분이지만 최대한 다른 이야기와 차별을 두지 않고 접근하려고 했다. 우영우라는 한 사람에 집중했고 처음에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내가 느꼈던 힐링을 고스란히 살리고자 했다.
- 에피소드형 법정 드라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ATM 관련 사건을 다루면서 영우가 처음으로 변호사라는 직업에 관한 딜레마에 빠진다. 변호사의 일이 선과 악의 구분 없이 변호하는 일이라 윤리적인 딜레마를 겪지 않을까 생각해본 적이 있어서 영우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많이 공감했다.
= 준호로서 선을 넘지 않는 선에서 애드리브로 리액션을 하기도 했다. 영우가 새로운 공간에 들어가기 전에 1, 2, 3초를 세곤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같이해도 되겠다 싶어 뒤에서 따라 센 적도 있고 영우가 손이 닿지 않아서 애쓰고 있으면 슬쩍 가져다주는 식으로 계속 영우를 지켜보면서 자연스럽게 리액션했다.
- 준호는 영우와의 관계를 발전시켜나가는 과정에서 두 사람간의 어려움도 있지만 외부의 시선과 반대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 혹시 준호처럼 모두가 반대하는 일을 밀어붙인 경험이 있나.= 준호만큼 큰일은 아니지만 부모님이 내가 연기하는 걸 심하게 반대하셨다. 예고도 가고 싶었고 연기 학원도 끊어달라고 했지만 안된다고 하셨다. 결국 가족 몰래 소속사 오디션을 치러 합격한 후에 통보했다. “저 합격했습니다. 우리 회사에 이렇게 유명하고 대단한 선배님들이 계십니다”라고 했더니 어머니가 그제야 받아들이고 밀어주시기 시작했다.
- 무명 시절 하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을까. 워낙 에너지가 넘쳐서 그때도 씩씩했을 것 같다.= 알아봐주는 사람이 없던 때도 무명 시절이라기보다 조금씩 계속 성장한 시간처럼 느껴진다. 예전엔 지금보다 어렸기 때문에 더 혈기 왕성하고 파이팅이 넘쳤다. 이건 성격이다. 힘든 일이 있어도 자고 나면 다음날 리프레시된다. 긍정적인 생각도 많이 하고 최대한 좋게 생각하고 넘기는 편이다.
- 데뷔 10년 차다. 그동안 배우로서 배운 것이 있다면.= 연기로 많은 경험을 했지만 연기를 일로 하면서 여러 가지 감정을 느꼈다. 행복하기도 했지만 화가 나기도 하고 슬프고 창피한 적도 많았다. 그게 다 배움이었다. 내 감정의 폭을 넓혀준 경험이었고 나중에 연기할 때 쓸 재산이지 않을까 싶다. 20대는 일만 하면서 달려왔다. 30대도 그럴 것 같긴 하지만 시야를 더 넓혀서 건강도 챙기고 하고 싶은 일도 하면서 성장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