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브르 사 비>, 1962
테크니컬러에서 흑백으로 되돌아간 장뤽 고다르의 실험은 “외부에서 관찰되는 내면, 행동에 담긴 마음”을 찍는 것이었다. 그는 12개의 장을 분절하고, 심도 깊은 딥 포커스, 지속 시간이 긴 롱숏의 롱테이크, 수평의 카메라 트래킹 등으로 ‘자기만의 (파괴적) 인생’을 완성한다. 여기에 장폴 사르트르의 영향이 짙게 남아 있는 실존적 주제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소격 효과가 미학적 뼈대로 자주 언급되나, 60여년이 흐른 지금 <비브르 사 비>에서 결국 여전히 새로운 것은 카메라가 아나 카리나의 얼굴을 비추는 방법론이다. 그녀의 왼쪽, 정면, 오른쪽 얼굴 순으로 제시되는 오프닝 이미지는 크레딧에 기재되는 가장 고귀한 텍스트가 배우의 얼굴이라고 선언하며, <잔 다르크의 수난>과 교차되는 침묵 속의 클로즈업은 눈물의 스펙터클을 일깨우는 영화 역사의 희귀한 순간으로 남았다. _김소미 기자
<영화의 역사(들)>, 1988~98
영화로 영화사 쓰기, 혹은 영화사로 역사를 쓰는 작업은 영화의 아카이브와 20세기의 역사, 그리고 두 역사의 접촉과 이접을 통해 감각되는 비가시의 역사(들)를 드러낸다. 그 역사 기술의 방식은 몽타주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는 연대기적 순서로 영화들을 나란히 배치하는 일이 아니다. 고다르의 표현을 응용하자면 서로 다른 영화, 서로 다른 시공간의 구성에 속해 있던 이미지들을 오랫동안 바라보다가 느닷없이 그 이미지들을 근접시켜 불꽃 같은 섬광을 촉발하는 것이다.
세르주 다네의 말처럼 “우리가 시네마라 부르는 이미지의 세계를 향한 집요한 열정과 동의어”였던 고다르를 기억하는 문제는 영화사의 한 단위를 추적하는 일이며, 동시에 시네마를 둘러싸고 있던 열정과 희망이라는 희미한 의식의 잔존을 돕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기도 할 것이다. _김예솔비 영화평론가
<언어와의 작별>, 2013
90년대 이후부터 고다르는 자신의 떠남을 유난스럽게 드러냈다. 역사적 사건이 지나간 자리, 영화사가 이미 시작된 자리에 ‘늦게 도착한 사람’이라는 자각이 그의 영화 만들기에 중요하게 작용했던 것처럼, ‘떠날 사람’이라는 중얼거림은 그의 영화에 유난히 빈번하게 등장했다. 빈자리에만 은총이 들어올 수 있다는 시몬 베유의 말을 의식하듯이, 그 수많은 작별들은 은총의 채움을 위한 비움처럼 보인다. <언어와의 작별>은 제목이 주는 인상처럼 언어를 폐기하는 영화는 아니다. 그보다는 언어로 이미지를 설명하는 충동과의 결별에 가깝다. 그 충동의 비움으로부터 우리는 록시라는 이름의 개를, 자연을 바라보는 록시의 응시를 본다. 한편 3D로 제작된 영화의 이미지는 영화와의 (재)조우를 제안하는 것이기도 하다. ‘본다는 것’의 원초적 경험으로, 언어 이전의 언어와의 마주침으로. _김예솔비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