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기획] 영화 ‘성덕’ 대담 ④ ‘주주 정체성’이 크게 심화되며 팬으로써 느끼는 복잡한 감정
2022-09-30
글 : 임수연
사진 : 최성열
정리 : 이다혜
'성덕' 오세연 감독, 김다은 조감독, 강은교 연구자, 최지은 작가와의 대담

K팝이 글로벌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면서 한국 팬덤 문화의 긍정적인 면을 조명하는 분석이 부쩍 늘어났다. 그런데 과연 그렇게 좋기만 할까. 오세연 감독은 <성덕>에서 2016년 J의 성추행 기사를 최초 보도한 기자를 원망했던 일기장을 발견한 후 이를 반성하는 메일을 기자에게 보냈다. 좋아하는 연예인이 위기에 처했을 때 이를 부정하기 위해 메신저를 공격하는 거다. 한편으로 팬들의 요구가 다양해지면서 아이돌의 감정 노동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오세연 2016년 당시 미투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동시에 ‘거짓 미투’를 의심하는 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기자를 비하하는 ‘기레기’라는 욕이 널리 퍼지기도 했던 시기다. 당시엔 무혐의 판결을 받은 사건을 기사화해서 사람을 괴롭히는 게 나쁘다고 생각했다. 나는 일기만 썼지만 다른 팬들은 박효실 기자님을 조직적으로 공격했다고 알고 있다. 우리는 J의 팬이기 때문에 기자를 공격해도 된다고 정당화하는 거다. 나중에는 팬덤보다 일베쪽에서 오는 공격이 더 심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강은교 예전의 아이돌 팬덤은 ‘허브홈’에 모여 놀았는데, 지금은 회사가 만든 시스템 안에서 놀아야 한다(하이브에서 만든 팬 커뮤니티 플랫폼 위버스를 떠올리면 된다.-편집자). 플랫폼을 팬덤의 새로운 영토로 의미화하는 시도도 분명 있지만 팬 커뮤니티가 사유화되면서 공유지는 거의 남아 있지 않게 됐다. 그렇게 K팝은 돈을 내야만 팬덤에 속할 수 있는 산업이 되어가고 있다. ‘커리어 하이’를 달성할 초동 판매량에 힘을 보태고 팬 사인회에 가기 위해서는 앨범을 수백장씩 사고, 버블이나 프라이빗 메시지처럼 친밀성을 파는 서비스(좋아하는 연예인 계정을 유료 구독하면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앱)도 등장했다. 산업적으로 팬덤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그들의 행위가 얼마나 전복적인 실천을 하고 있는지 강조하는 연구가 나오고 있다. 지금은 10대부터 40대까지 모든 연령의 팬덤이 “내가 이만큼 돈을 썼는데 네가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 한다. 가령 아이돌이 말실수를 하면 팬들이 버블에 원망 가득한 말을 쏟아내고, 심지어 올해 대선에 누굴 뽑았는지 하트색으로 티를 낸 것 같다며 피드백을 요구한 사건도 있었다. 이제는 팬들이 버블에서 해명을 요구하는 ‘총공’(‘총공격’의 줄임말로, 온라인상에서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단체 행동을 하는 것)을 하면 반나절 만에 아이돌이 사과한다. 그러면 다시 ‘효자’가 된다. 그리고 이 주기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그동안 여성 팬덤이 오해받고 무시당한 역사가 길었다는 이유로 이런 문제를 언급하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좋은 면만 포장하는 게 여성의 행위성을 존중하는 것이라 볼 수 없고, K팝 산업이 소비를 부추기는 환경을 만들었기 때문에 이게 팬덤의 문제만도 아니다. 플랫폼을 매개해 사람을 마이크로 매니징해도 되는지 비판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최지은 고도로 자본주의화된 산업 안에서 팬덤이 성장하면서 팬의 소비자 정체성이 강화됐다. 특히 <프로듀스 101> 이후 “내가 투자한 만큼 너도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는 ‘주주 정체성’이 크게 심화되면서 팬이 원하지 않는 행동을 하면 안된다는 마인드가 강해졌다. 과거엔 연예인이 숭배하는 대상이었다면, 지금은 숭배하는 한편 통제하고 혐오하는 등 좀더 복잡한 마음이 공존한다.

오세연 돈의 논리가 아이돌 팬 문화를 지배하게 됐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앨범 사고 콘서트 가는 데서 끝났다면, 지금은 산업 자체가 커지면서 돈을 쓸 곳이 너무 많아졌다. 그렇게 소비한 만큼 권리를 요구하는 분위기가 강해지면서, 가령 내가 버블에서 유료 구독하는 연예인이 글을 자주 남겨야 한다고 압박한다. 매달 4500원어치에 해당하는 메시지 수, 접속 빈도가 정해져 있지 않은데도 그런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생겼다.

최지은 팬들은 오빠가 우리와의 소통을 노동으로 여기지 않기를 바라니까. 과거에는 콘서트나 앨범 발매, 방송 출연이라는 이벤트적인 스케줄을 통해 팬들을 만났다면 이제는 버블을 통해 상시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을 준다. 스타에게도 휴식권이 필요하지만 팬들 입장에서는 그들이 상시적 연결을 원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으면 속상한 거다.

강은교 요즘 아이돌은 아침, 저녁으로 메시지를 남긴다. 재밌게 해준다고 소문이 나면 팬이 아닌데도 구독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그렇게 친밀성 서비스 자체가 보편화되면서 스포츠 스타나 배우들도 버블이나 프라이빗 메시지를 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모든 팬덤이 K팝화되고 있다. 요즘 영화 시사회 무대인사에 가면 배우들도 적극적으로 손하트를 날리고 팬들이 준비한 머리띠를 쓰고 열심히 악수를 해준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K팝 아이돌들이 하던 일들이다.

김다은 사실 나는 주인 의식보다는 동료 의식이 강한 팬덤 문화를 접했던 케이스다. 배우의 모든 인터뷰를 읽고, 닮고 싶은 가치관이 담긴 구절을 메모해서 갖고 다녔다. 영화 학교를 다닐 때 일부 사람들이 상업영화와 독립영화 신을 철저히 분리하는 것에 반감을 갖고 오히려 독립영화 신을 찬양하며 다녔다.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본 작품의 감독, 배우들이 전부 내게 스타였다. 그래서 프로그램북을 들고 가서 사인을 받았다. 지금 촬영팀으로 일하는 상업 작품 현장에서 함께 일하는 분들이 예전에 작업한 단편영화를 내가 봤던 경우가 정말 많다. 다들 그 작품을 어떻게 아느냐고 신기해하고 나를 좋게 봐준다. 덕질이 삶의 원동력이 되어 아주 좋게 승화된 것이다. 하지만 이제 활동적인 덕질은 그만둔 상태다. 좋아하는 마음 덕분에 꿈을 이룰 수 있었던 건 맞지만,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내가 줬던 사랑이 누군가에게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걸 실감하면서 예전처럼 사람 그 자체를 좋아하는 덕질은 하지 못하게 됐다. 오늘 유료 소통 서비스 얘기를 들으면서 충격받았다. 구독료만큼 메시지를 보내지 않는다고 화를 낸다면, 사랑이 아니라 사랑에서 이상하게 파생된 혐오가 아닐까. 요즘 젊은 사람들의 연애관도 비슷하다. 우리가 일상에서 너무 많은 패배를 하기 때문에 내가 주는 사랑에 그만큼 보답받아야 한다는 심리가 강해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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