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덕>에 참여한 인터뷰이들은 예전에 성범죄자를 좋아했다는 이유로 죄책감을 느끼고, 남자 연예인이 구설수에 오르는 케이스가 훨씬 많다는 것을 상기하며, 마음 놓고 연예인을 좋아할 수 없게 됐다고 고백한다. 사실 여자 연예인과도 무관한 문제가 아니다. 소비 행위를 통해 유해한 산업에 일조하고 있다는 자괴감이 들 때가 있다. 과연 우리는 계속 덕질을 할 수 있을까.
오세연 지지난해부터 여자 아이돌을 보는 게 취미가 됐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들의 무대를 보는 데 눈물이 났다. 그들이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버틴 시간을 상상하다 보니 슬퍼졌다. 한국에서 아이돌이 되려면 단지 노래와 춤을 잘하는 것을 넘어서 산업이 요구하는 완벽한 인간이 되기 위해 그 틀에 자신을 맞춰야 한다. 내가 이 사람들을 좋아하는 게 실은 이들에게 좋은 일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까지 들더라. 그냥 스쳐 지나갈 것 같았던 남자들에게 계속 관심을 주는 내 자신도 너무 답답하다. 아무래도 이건 헤테로의 저주다. (웃음) 예전처럼 “내가 좋아하는 이 사람은 달라!”라는 순수한 마음을 100% 가질 수는 없게 됐지만 가끔 한번만 더 믿어보고 싶을 때가 있다.
김다은 그러다 <성덕2>를 찍게 될 수도 있다. (일동 폭소)
오세연 누군가를 좋아하는 게 죄는 아니지만, 연예인이 사고를 치면 좋아했다는 마음 자체로 죄책감을 갖게 된다. 그런데 앞으로 누구도 좋아하지 말자고 강요할 수 없는 문제다. 결국 그 사람들이 똑바로 살면 되는 건데, 우리끼리 이 문제를 놓고 토론하는 것도 조금 슬프다. (웃음)
김다은 예전엔 현장에서 분리수거하고 쓰레기 줍는 사람을 보면 반했다. 그렇게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모여서 좋은 영향력을 주는 콘텐츠를 만든다고 믿었는데, 사실 현실이 꼭 그렇지는 않다. 이 업계는 이상을 만드는 곳이라서 실제 현장을 겪고 더 쉽게 마음이 추락할 수 있다. 그 감정이 실패한 덕질과 비슷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덕질을 그만뒀던 것처럼 방어적인 태도로 사람을 만났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나의 DNA에 사랑이 있다는 것을, ‘Lovesick Girls’로 태어났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웃음) 예전에는 좋은 선배님들과 좋은 영화를 작업하고 싶다는 게 꿈이었다면 지금은 내가 먼저 분리수거를 하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예전의 덕질 경험이 지금 내가 살아가는 방법을 만들어줬는데 왜 후회하기만 해야 하나. 많은 여성들이 실패한 덕질에 자괴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과 시스템을 탓해야지 우리는 그냥 사랑이 많았던 거다. 연애 서사를 ‘똥차 가고 벤츠 왔다’는 식으로 묘사하는 모습을 많이 본다. 그러지 말고 사랑이 많은 사람들이 직접 벤츠가 되면 어떨까. 나의 사랑으로 너의 혐오를 이겨버리겠다는 마음으로 살고 싶다.
강은교 나도 ‘Why not?’이라고 생각한다. 여성들의 행위성을 키우고 아이돌에게 헛짓거리를 못하도록 압박을 가한다고 해서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사고를 떠나서 내 마음이 정말 편해지느냐를 반문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팬 스스로를 괴롭히는 일이 될 수 있다. 여성 팬들에게서 나오는 언어가 “내가 이만큼 돈을 썼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냐”는 것들로만 남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지금보다 더 좋은 방식의 팬질을 할 수 있다. 어쨌든 문화를 바꿀 수 있는 것도 팬밖에 없다. 이렇게까지 시간을 내서 무언가 바꾸려고 투신할 사람은 또 팬들밖에 없으니까.
최지은 <성덕>이 가진 중요한 의의 중 하나는, 여자들이 갖고 있는 집단적 고통과 딜레마를 세상에 공개적으로 알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섹슈얼리티가 밀접하게 연관된 엔터테인먼트 산업 안에서 우상을 사랑할 때, 특히 여성들은 불안감을 크게 갖게 됐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갑자기 ‘학폭’이 터지면 어떡하지? 얘가 오늘까지는 이상한 소리를 안 했지만 내일 실언을 하면 어떡하지? 예전에는 아이돌 팬이라는 게 부끄러워서 ‘일코’(‘일반인 코스프레’를 줄여 이르는 말로, 주위의 시선이 두려워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취미 생활을 감추고 드러내지 않는 일)를 했다면, 지금은 “남자 연예인의 팬질을 하다니 위험하다”며 일코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 같기도 하다. <성덕>에서도 “오빠가 범죄를 저지르면 결국 그 사람을 좋아했던 나를 싫어하게 된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이처럼 여성들은 안전하고 무결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벗어나기가 참 힘들다. 욕망은 남들이 말린다고, 개개인의 의지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을 그냥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누군가에게 과몰입해서 팬질을 하고 있다면, 그럴 수밖에 없는 어떤 이유가 있기 때문일 거다. 불안이나 결핍, 혹은 사랑하고 싶지만 현실에서는 만날 수 없기에 애정을 쏟을 대상이 필요해서일 수도 있다. 다만 팬질을 할 때 어느 정도 거리두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나의 소비가 상대를 인격체가 아닌 사물로 대하는 건 아닌지, 내가 사인회에 가기 위해 앨범을 수십장에서 수백장씩 사는 행위가 내 통장과 환경오염에 미치는 영향을 가끔 생각해보자는 거다. 모순되지 않는 욕망은 없다. “이렇게 문제 많은 콘텐츠를 소비하다니 나는 페미니스트도 아니”라고 괴로워하지 말고, “나는 그냥 이런 약점도 있는 사람”이라고 받아들인다면 덜 괴롭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