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의 참혹함 앞에서 글자는 눈앞에서 허물어내리고 시조차도 다 무슨 의미인가 싶을 때, 시집을 닫으며 마지막 문장을 어루만진다. “저는 이것을 시로 쓸 수 없었습니다, 라고 시가 써질 때 이해가 넘쳐흐르고 있다 당신과 내 인생 바깥으로.”(조용우, <어려운 시>)
문학과지성사가 해마다 젊은 시인들의 시를 묶어 내는 <시 보다> 시리즈의 2022년 출간작에는 신이인, 임유영, 안태운, 임지은, 윤은성, 조용우, 윤혜지 7명 시인의 시가 실렸다. 이 시들은 2021년 문지문학상 시 부문의 후보작들이었고 <시 보다 2022>에는 기존 발표작 4편과 함께 신작 시 2편, 시인들의 산문이 수록되었다. 젊은 시인들의 최근작을 읽으며 이들이 보는 현재의 세상을 더불어 본다. 시인의 눈에 세계는, 지금은, 한국은 밤을 헤매듯 가혹하고 조금은 다정하고 얼마쯤은 서글프다. 연약한 마음을 가진 내가 그보다 더 약한 사람들과 어깨를 기대고 함께 걷고, 술을 마시고 외로움을 나눈다. 어떤 여름은 뜨겁게 타버리고, 겨울은 고양이 발자국으로 기억된다. “최선을 다했다 그러니까/ 최선을 다해 밝기를 올리고/ 뜨겁다면 그냥 타버려도 돼/ 눈부시다면 눈이 멀어도 상관없지.”(신이인, <외로운 조지-Summer Lover>)
시를 읽을 때 감정이 구체화되는 것을 느낀다. 망가져가는 세상에서, 이건 그냥 치료받아야 할 나쁜 우울인가 생각되다가도 시를 읽을 때면 그런 슬픔의 언어가 시인에게, 우리에게 남아 있어 다행이라 생각한다. 이 책에 실린 윤은성 시인의 산문 <환대를 기억해두려는 마음>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고통을 공유하는 공동체. 공동체란 말을 여기에 이렇게 써봐도 되겠지요. 저는 고통을 함께 나누는 감수성에 고민하는 시간이, 사실 부정적인 사안들로부터 출발한 것이기에 역설적인 것임에도, 참 좋습니다. 네, 저는 일상에서 시를 읽기 위해, 고통을 읽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중략) 그리고 당분간, 계속 애통해 할 일이 남아 있다는 것을 체감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52쪽
무해함
살아가며 살아가게 하는 / 살아가게 하면서 살아가는
생물들을 응원할 수 있다고
그러면서 나는 무엇을 할 수 / 있을까
지구에 최대한 해를 덜 / 끼치려고 노력하면서
조금이라도 쓰임과 효용이 / 되고 싶었는데
<안태운, 생물종 다양성 낭독용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