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와 똑같이
<사도>의 영조, <한산: 용의 출현>의 이순신, <올빼미>의 인조까지 배우의 얼굴 위로 수많은 위인의 얼굴을 입혀온 조태희 분장감독에게도 안중근 의사의 얼굴을 구현하는 것은 큰 숙제였다. “안중근 의사는 헤어스타일과 수염 없는 인중이 포인트다. 그 당시에 볼 수 있는 스타일이지만 수염 없는 인중이 자칫 낯설게 보일 수 있어 고민이 많았다.” 분장팀의 모든 제안을 수용하겠다고 한 안중근 의사 역의 정성화 배우는 1차 컨셉 회의 당시 제안한 대로 체중을 감량해 나타났다. 사진으로 남아 있는 안중근 의사의 모습과 흡사한 인상을 만들기 위해 분장팀은 3개월간 배우와 수많은 테스트를 진행했다. “배우의 기존 구레나룻도 현대적인 스타일이라 분장을 붙여서 끊긴 바리캉 자국을 없애고 당시 스타일에 맞는 구레나룻을 표현했다.”(조태희 분장감독) 안중근뿐 아니라 독립군 동지들과 이토 히로부미 캐릭터도 남아 있는 사진을 바탕으로 실제 모습과 닮게 구현했다. “이토 히로부미(김승락)의 눈썹, 코 옆의 점, 넓은 이마 등 특징적인 면을 반영해 실물과 흡사하게 분장했다.”(조태희 분장감독) 김승락 배우는 실제보다 30여년 나이 많은 얼굴을 표현해내느라 촬영 날마다 4~5시간씩 분장을 받아야 했다.
블루와 레드, 태극 컬러의 활용
분장이 100% 실제 모습을 구현하는 데 집중했다면, 의상은 캐릭터나 관계성이 돋보이도록 연출했다. “고증대로 가다보면 의상이 무채색으로 흐를 것 같았다. 실루엣이나 디자인 요소는 당대 복식사 자료를 토대로 고증해나갔고 색감의 경우 캐릭터나 신의 감정에 따라서 변화를 줬다.”(심현섭 의상감독) 대표적인 요소로 안중근과 독립군 의상에 태극의 색이 활용됐다. “안중근 캐릭터의 기본 컬러는 블랙이었지만 상황에 따라 태극을 연상할 수 있는 블루와 레드 요소가 더해졌다. 하얼빈역에서 안중근은 실제 검은 코트를 입고 있었지만 영화에서는 네이비 컬러 코트에 레드 컬러 니트를 착용했다. 독립군의 의지나 단결된 모습을 표현할 때도 블루와 레드 컬러를 활용해, 동지들끼리 안거나 격려할 때 태극 컬러가 더해지는 모습으로 단결을 표현해내기도 했다.”(심현섭 의상감독)
1900년대 풍경을 생생하게
옛 간판이 사라지고 현대식 건물로 가득한 모스크바나 블라디보스토크에선 1900년의 흔적을 찾기 어려웠다. “류승완 감독의 <베를린>과 강제규 감독의 <마이웨이> 촬영지였던 라트비아가 떠올랐다. 라트비아에서 예정한 지역으로 이동하려고 했으나 비행기가 갑작스럽게 취소되어 수도 리가에서 하룻밤 묵었다. 다음날 아침 산책길에 나선 조감독님이 여기서 찍으면 되겠다며 헐레벌떡 뛰어오셨다.”(전민 PD) 높은 첨탑이 있는 세인트 피터 교회와 역사 지구인 올드 리가의 풍경이 1900년대 초반 러시아의 건축양식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다. 추격 신 중 지붕 위 장면만 세트장에서 촬영했고 우덕순(조재윤)이 담배를 파는 광장, 안중근이 연설하는 장소, 독립군의 사격 연습 장소 등이 라트비아 현지 로케이션이었다. “진주(박진주)가 마지막 노래를 부르는 골목 장면도 라트비아에서 촬영했다. 라트비아가 러시아 근처라 겨울 날씨가 몹시 추웠는데 그 와중에도 배우들이 극적인 감정을 끌어올려 노래했다. 어려운 상황에서 해낸 촬영이라 기억에 많이 남는다.”(전민 PD)
손때 묻은 벽, 온기 가득한 만둣가게
“화면에 분명하게 잡히지 않는 소품이지만 안중근이 사용한 총과 총알 등도 고증을 거쳐 표현해냈다. 하얼빈역 의거 장면도 관련 기사를 찾아 이토 히로부미가 당시 몇 번째 칸에 타서 누구와 함께 내렸는지 등의 동선을 찾아냈다.” 양홍삼 미술감독은 꼼꼼하게 찾은 자료를 바탕으로 단순히 과거의 것을 재현하는 수준의 고증을 넘어 과거의 시간과 분위기까지 스크린에 옮기고자 노력했다. “사형 장면의 배경이 되는 흰 벽도 에이징 작업을 통해 손때 묻은 흔적과 세월의 질감을 자연스럽게 표현하고자 했다. 영화 속 블라디보스토크의 만둣가게는 세트를 지어 촬영했지만, 내부에서 벽난로를 피우고 불을 사용해 만두를 찔 수 있게 했다. 실제 재료를 활용해 따뜻하고 사람 냄새나는 공간이 되도록 설계했다. 라이브 녹음으로 현장감을 살리는 데는 주변의 앰비언트도 중요하기 때문에 공간을 구성할 때 음향적 요소도 고려했다. 만둣가게의 연기나 돌로 된 벽에 부딪혀 나오는 소리까지 만들어내려고 했다.”(양홍삼 미술감독)
절제된 빛으로 물들이다
조상윤 촬영감독과 신태섭 조명감독이 공통적으로 꼽는 명장면은 오프닝의 <단지동맹> 신이다. 극중 시간을 새벽으로 설정하고 “독립군들의 피가 눈밭을 물들일 때 붉은 아침 해도 동시에 떠오르게 설정”함으로써 “이 순간만큼은 리얼리티보다 극적인 색감을 강조해 피와 붉은 해가 동시에 눈밭에 확 퍼지는 느낌을 준 것이다.”(조상윤 촬영감독) “결의와 희망이 동시에 감도는 장면으로 보여주고 싶었다.”(신태섭 조명감독)
안중근의 사형 장면에선 윤제균 감독이 “암전에 가깝게 어두운 상태에서 안중근 의사 위로 환한 핀 조명 하나만 떨어지고, 그 앞으로 목줄이 떨어지는 연극적 세팅을 주문”(신태섭 조명감독)했다. 스크린을 차지하는 암부의 비중이 매우 큰 과감한 세팅을 밀어붙인 또 다른 장면으로는 안중근이 하얼빈으로 떠나기 직전, 촛불 하나에 의지해 기도하며 <십자가 앞에서>를 부르는 순간이다. “실제로 아무런 조명을 설치하지 않고 촛불 하나만 켜놓고 찍은 버전이 따로 있을 정도로 배우와 노래의 힘을 믿고 화면의 기교는 최소화하려 했다.”(신태섭 조명감독)